[추천 영화] ‘봄날은 간다’..어떻게 사랑이 변하니?

영화 ‘봄날은 간다’

감독: 허진호
출연: 유지태, 이영애
장르: 멜로/로맨스, 드라마
상영시간: 1시간 53분
개봉: 2001년 9월 28일
관람등급: 15세 이상 관람가


(주)싸이더스 제공

# 아름다워서 너무나 슬픈 사랑 이야기
 


(주)싸이더스 제공

녹음실에서 일하는 ‘소리채집자’ 상우(유지태 분), 강릉 방송국의 라디오 PD이자 DJ인 은수(이영애 분)는 ‘우리의 소리를 찾아서’ 컨셉의 심야 라디오 프로그램 녹음을 위해 속초역에서 처음 만난다. 자고 있던 은수가 상우를 만나 내뱉은 첫 마디는 “근데 좀 늦으셨네요.”

자연의 소리를 담기 위해 두 사람은 대밭과 고즈넉한 사찰을 찾아 소리를 담는다. 대숲에선 하루, 사찰에선 이틀을 함께하면서 은수는 소리를 담는 상우의 모습에 호감을 느낀다. 상우도 외로워보이는 은수가 싫지만은 않다. 상우가 은수를 집까지 바래다주고 돌아서려는 찰나, 차에서 내린 은수가 외친다. “라면 먹을래요?” 두 사람은 사랑에 빠진다.

어느 날, 회식 후 술에 취한 상우가 택시를 운전하는 친구를 부른다. 친구의 택시에 올라탄 상우는 은수가 사는 강릉엘 가자고 말한다. 술에 취했지만 그 말은 진심이라는 걸 깨달은 친구는 상우를 태우고 강릉까지 달린다. 새벽닭이 울 때가 되어서야 강릉에 도착한 상우는 기다리고 있던 은수의 허리가 꺾일 때까지 꼭 껴안고는 “좋다”고 말한다.

# 한국 멜로영화사를 대표하는 작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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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7년 ‘접속’을 시작으로 한 한국 멜로영화의 중흥기에서 가장 두각을 나타낸 감독은 누가 뭐래도 ‘8월의 크리스마스’와 ‘봄날은 간다’를 연출한 허진호 감독이라고 말할 수 있다. 특히 2001년은 사람들의 기억 속에 여전히 자리잡고 있는 좋은 멜로영화가 3편(‘번지점프를 하다’, ‘파이란’, ‘봄날은 간다’)이나 개봉한 해였는데, 이중 오늘 소개하려는 ‘봄날은 간다’는 허진호 감독의 대표작으로 꼽히는 작품이다. 로맨스 덕후인 필자 개인적으로는 한국 멜로영화사에서 최고에 버금가는 영화가 아닌가 생각한다.

영화 ‘봄날은 간다’에는 엔딩 크레딧이 올라갈 때 흘러 나오는 자우림 김윤아의 노랫말처럼 ‘눈을 감으면 문득 (떠오르는) 그리운 날의 기억’을 담겨 있다. 당대의 스타 유지태와 이영애, 두 사람의 비주얼이 정점을 향해 가던 시절 찍은 작품이어서 더더욱 아름답게 느껴지기도 한다. 여기에 허진호 감독 특유의 정적이면서도 여백을 둔 연출로 잔잔하지만 깊은 여운을 주는 작품이다.

영화의 줄거리만 얘기한다면 한 문장으로도 요약할 수 있다. 서로를 모르던 두 사람이 처음 만나 사랑에 빠지고, 결국 헤어지는 내용이다. 그러나 허진호 감독의 영화가 가진 강점 중 하나인 일상성을 통해 관객들은 사랑에 행복해 하고, 이별에 아파하는 캐릭터의 감정에 깊이 공감하고 각자의 사랑 이야기를 떠올리게 된다.

# 사랑이 이만큼 다가왔다고 느끼는 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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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에는 두 개의 사랑 이야기가 등장한다. 극중 은수가 사랑에 빠지는 두 사람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다. 하나는 상우와 은수의 사랑, 그리고 다른 하나는 돌아가신 할아버지를 향한 상우 할머니의 사랑이다. 전자가 영화를 이끌어가는 주된 이야기라면, 후자는 비중이 크지 않지만 상우와 은수의 사랑에 대응하며 둘의 사랑을 가늠하는 기준이 되는 이야기다.

이를테면 이런 장면들을 통해 알 수 있다. 상우와 은수가 처음 만나는 곳이 속초역이고, 치매에 걸린 할머니가 역무원이었던 할아버지를 한없이 기다리는 장소는 수색역이다. 영화 중반, 상우가 은수를 조금씩 구속하려 하자 두 사람의 관계에 균열이 생기기 시작하고 곧바로 은수가 다른 남자에게 호감을 보이는 장면 직전에 등장한 씬은, 할아버지가 할머니를 두고 바람을 피웠던 ‘내연녀’가 상우의 할머니를 찾아오는 장면이다. 상우의 할머니가 결혼 관계에서의 지고지순한 사랑을 대표하는 사람이고, 할머니와 함께 자란 상우 역시 가족들의 성화에 못 이겨 빨리 결혼하고 싶어하는 인물이지만, 반대로 은수는 결혼에 한 번 실패한 경험이 있는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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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우와 은수의 사랑은 다름에서 출발하고, 결국 그 다름 때문에 끝이 난다. 은수는 새로운 사랑을 시작하는 데 거침이 없다. 첫 만남에서 상우에게 호감을 느낀 은수는 먼저 연락하고, 두 번째 만남에서도 상우가 좋았던 은수는 “자고 갈래요?”하고 거침없이 얘기한다. 결혼에 실패한 후(상우가 발견하는 은수의 결혼 사진에서도 은수는 슬픈 표정이다) 영원히 서로를 구속하는 관계가 아니라 자신의 일상을 새롭게 만들어 줄 새로운 사랑을 끊임없이 찾는다.

반면, 할머니의 사랑을 보고 배운 상우는 지고지순함 그 자체다. 한 사람을 사랑하면 끝까지 한 사람만 사랑해야 한다는 믿음이 있다. 눈이 쌓인 거리를 걷는 첫 장면에서 할머니를 뒤따라가는 상우의 모습에서 암시적으로 드러난다. 은수의 솔직한 모습에 매력을 느낀 상우는 관계에서 늘 은수의 뒤를 쫓아간다.

하지만 은수가 학창시절 ‘날라리’였다는 고백에 상우가 깜짝 놀라는 장면처럼, 은수가 강릉의 한 아파트에서 혼자 사는 반면 상우는 서울의 한 한옥집에서 할머니, 아빠, 고모와 함께 살아온 것처럼 두 사람 사이에는 서울과 강릉 사이의 거리만큼이나 좁힐 수 없는 간극이 있다. 둘 사이의 사랑이 끝나고 은수를(혹은 은수와의 사랑을) 잊지 못하던 상우는 “어떻게 사랑이 변하니”하며 외치지만 이미 돌이킬 수 없다. 상우는 긴 고통 끝에 이별을 받아들이게 된다.

# 봄은 또 오고, 꽃은 피고 또 지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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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중 상우가 소리를 채집하는 사람이지만, 영화 속에서 그리 중요한 장치는 아니다. ‘봄날은 간다’라는 제목처럼, 영화는 사랑을 표현하는 데 노래(백설희의 노래 ‘봄날은 간다’에서 제목의 모티브를 얻었다고 한다)와 계절감이 중요한 장치로 사용된다. 이는 영화가 상우와 은수의 사랑만큼이나 이별의 과정을 그려내는 데 공을 들이는 이유와도 관련이 있다.

영화 속에는 다양한 노래가 등장한다. 하나는 ‘미워도 다시 한 번’이다. ‘이 생명 다 바쳐서 죽도록 사랑했고 순정을 다 바쳐서 믿고 또 믿었건만 (중략) 나만이 가야 하는 그 사랑의 길이기에 울면서 돌아설 때 미워도 다시 한 번’이라는 가사가 인상적인 이 노래는 영화 속에서 상우의 아버지가 할머니에게 불러주는 노래이기도 하고, 상우가 이별의 아픔을 달래기 위해 처절하게 부르는 노래이기도 하다.

두 사람의 관계가 끝을 향하는 시점에 라디오 ‘우리의 소리를 찾아서’의 마지막 녹음을 위해 어느 노부부에게서 듣는 노래도 있다. 바로 ‘정선아라리’다. 가사가 이렇다. ‘서산에 지는 해는 지고 싶어 지나, 정 들이고 가시는 님은 가고 싶어 가나.’ 허진호 감독은 사랑의 속절없음을 가사에 담은 민족의 노래를 등장시켜 두 사람의 이어질 수 없는 사랑을 은유한다.

극중 은수가 노래하고 상우가 그 순간을 녹음한 은수의 허밍(입을 다문 채 소리내는 콧노래)도 있다. 행복했던 사랑의 순간을 녹음한 것이지만 상우가 이 허밍을 다시 듣는 시점은 두 사람이 완벽하게 헤어지고 난 다음이다. 행복한 그 순간을 녹음했지만 이별 후 추억하게 되는 순간의 아이러니. 마지막으로 자우림의 김윤아가 부른 엔딩곡 ‘봄날은 간다’는 원래 있던 곡에 김윤아가 우리말 가사를 붙인 것이다. 사실 엔딩곡이어서 영화 속에 등장한 장치는 아니지만, 영화를 곱씹는데 큰 역할을 한다.

상우와 은수는 겨울에 처음 만나 봄과 여름에 걸쳐 사랑을 하고, 헤어진다. 하지만 봄은 다시 찾아오고, 거짓말처럼 은수는 상우를 찾아온다. 그 매개 역할을 한 것은 상우가 할머니에게서 배워 은수에게 전해준 피를 멎게 하는 행동이다. 상우가 가르쳐 준 행동이 은수 스스로도 모르는 사이에 그녀의 습관으로 남은 것이다. 하지만 상우는 이미 할머니를 떠나 보낸 상황이었고, 두 사람의 사랑도 더 이상 이어질 수 없다. 벚꽃이 흐드러지게 핀 어느 거리에서 두 사람은 완벽하게 이별한다. 이별의 순간을 가장 아름답게 그려낸 한국 멜로영화의 명장면이다. 언제, 누구와 봐도 후회하지 않을 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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