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나를 찾아줘’
감독: 데이빗 핀처
출연: 벤 애플렉, 로자먼드 파이크
장르: 스릴러
상영시간: 2시간 29분
개봉: 2014년 10월 23일
관람등급: 청소년 관람불가
이십세기폭스코리아(주) 제공
# 아내가 사라졌다
이십세기폭스코리아(주) 제공
경찰은 수색을 시작하고, 닉은 뉴욕에 살던 장인과 장모를 불러 에이미 실종 기자회견을 연다. 에이미의 엄마는 동화책 ‘어메이징 에이미‘ 시리즈로 유명한 작가. 동화책 시리즈의 모델로 유명했던 에이미가 실종되었다는 사실이 알려지자 TV, 잡지 등 각종 미디어의 관심이 쏟아지고 닉과 가족들을 돕겠다는 자원봉사자들의 신청이 이어진다.
그런데 경찰이 아내 에이미가 평소에 누구를 만났고 누구와 친한지, 종일 무엇을 하고 지냈는지, 혈액형은 무엇인지 묻자 닉은 전혀 대답하지 못한다. 또한 에이미가 사라지기 전 남아있던 여러 흔적들이 오히려 닉을 궁지에 몰기 시작하고, 아내가 실종된 상태임에도 웃고 있는 닉의 사진이 미디어에 노출되면서 사람들은 닉을 의심하기 시작한다. 설상가상으로 에이미가 임신 중이었다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닉은 아내를 살해한 혐의로 용의선상에 오른다.
(*아래에는 영화 ‘나를 찾아줘’에 대한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 스릴러 장인, 데이빗 핀처 감독의 복귀작
이십세기폭스코리아(주) 제공
우리나라에는 2013년 처음 소개된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한 영화 ‘나를 찾아줘’(원제: Gone Girl)는, 원작의 작가 길리언 플린이 직접 시나리오 각색에 참여해 완성도를 높였다. 영화의 연출을 맡은 사람은 ‘에이리언 3’로 데뷔해 ‘세븐’, ‘더 게임’, ‘파이트 클럽’, ‘조디악’, ‘밀레니엄: 여자를 증오한 남자들’까지 스릴러 장르에서 천부적인 감각을 뽐낸 데이빗 핀처 감독이다. (아이러니하게도 그에게 가장 많은 상을 안긴 영화는 스릴러 영화가 아니라 페이스북 창업자 마크 주커버크의 실화를 다룬 ‘소셜 네트워크’다)
앞서 언급한 작품들의 면면을 보면 알 수 있듯, 데이빗 핀처 감독은 연출하는 작품마다 높은 완성도를 자랑하면서 안정적인 흥행까지 보장하는 보석 같은 감독이다. 그의 최근작인 ‘나를 찾아줘’ 또한 관객들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고, 덕분에 그의 작품 중 가장 높은 수익인 전 세계 3억 6000만 달러를 벌어들였다. 국내 개봉 당시에는 ‘고품격 막장 스릴러’라는 평까지 나올 정도로, 영화가 보여주는 충격적인 이야기는 상상 그 이상이다.
감독은 영화의 러닝타임이 2시간 29분이라는 사실을 잊게 만들 정도로 능수능란한 연출력을 과시한다. 영화의 오프닝부터 음산한 음악을 깔고, 텅 빈 건물과 골목을 불편하게 느껴질 만큼 빠른 리듬으로 편집해 보여주면서 관객들의 긴장감을 끌어올리기 시작한다. 이야기는 닉이 마주한 현실과 에이미의 나레이션을 따라 현재와 과거를 자연스레 넘나들고, 에이미의 실종 사건 이면에 얽힌 사연은 무엇인지, 또 그것이 진실인지 거짓인지 점점 혼란스럽게 만든다. 그러면서 장면 곳곳에 사건의 실마리를 지닌 ‘단서(Clue)’들을 촘촘히 던져놓아 사건을 쫓아가는 관객들에게 장르적 재미를 주는 한편, 종국에는 입을 떡 벌어지게 만드는 주인공의 충격적인 모습과 마주하게 한다.
# 어메이징! 로자먼드 파이크의 존재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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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영화를 설명하면서 ‘어메이징’ 그 자체인 아내 에이미 캐릭터와, 그 역할을 맡은 배우 로자먼드 파이크에 대한 이야기를 빼놓을 수 없다. 극중 행방불명되는 에이미는 태어나서 뉴욕을 벗어나 본 적 없고 하버드 대학 졸업장까지 갖고 있는 소위 ‘엄친딸’이다. 남편이 원하는 건 무엇이든 맞춰줄 수 있는 ‘쿨’한 성격을 지닌 데다 남들의 이목을 끄는 외모로 주변 사람들의 선망을 받는다. 게다가 전국적인 인기를 끈 동화책 ‘어메이징 에이미‘의 모델로 유명하다.
하지만 영화를 따라가면 따라갈수록, 에이미처럼 속내를 알 수 없는 캐릭터가 또 있었나 싶을 정도로 관객들은 커다란 충격에 빠질 수밖에 없다. 에이미는 납치를 당해서 실종된 것이 아니라, 제자와 불륜 관계를 맺고 자신을 홀대한 남편에게 그에 상응하는 벌을 주기 위해 치밀하게 사건을 준비한 장본인이었다. 심지어 자신의 완벽한 계획을 실현하기 위해 무슨 짓이든 서슴지 않고 실행에 옮긴다. 에이미 스스로가 ‘판’을 짜놨다는 사실은 영화 중반부에 에이미의 독백으로 밝혀지지만, 우리는 영화가 끝날 때까지 에이미가 어떤 말을 내뱉을지, 어떤 행동을 할지 전혀 예측할 수 없다.
# 보이는 것이 전부는 아니다
이십세기폭스코리아(주)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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닉과 에이미가 처음 만난 파티에서 닉은 에이미에게 묻는다. “에이미… 당신은 누구죠?” 그 답변으로 에이미는 여러 가지로 선택지를 던진다. 닉은 의욕적으로 정답을 맞췄고 두 사람은 서로에게 금방 빠져들었다. 하지만 결혼 후 5년이 지난 시점에도 닉은 에이미에 대해 전혀 모른다. 그래서 계속 차마 꺼내지 못하는 질문들을 홀로 되뇌인다. '무슨 생각해?', '기분 좀 어때?', '우리가 왜 이렇게 됐지?'
완벽한 커플인 줄만 알았던 두 사람의 부부 관계는 그렇게 파국으로 향한다. (자신의 쌍둥이 동생보다도) 자신과 가장 가까운 존재라고 믿었던 에이미가 어떤 사람인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알 수 없다는 닉의 불안감은 제자와의 불륜이라는 부도덕한 행동으로 번진다. 그래서 스스로 그렇게 미워하던 아버지의 전철을 밟게 된다. 닉의 불륜을 목격한 에이미는 복수심에 불타오르고, 보통 사람들은 상상도 못할 희대의 사건을 계획한다. 그도 그럴 것이, 에이미는 8년 전 자신과의 관계를 끊으려 했다는 이유로 전 남자친구를 졸지에 성폭행범으로 만들어버린 전력이 있었기 때문이다.
영화 말미, 미국 전역을 충격에 빠뜨렸던 에이미의 실종 사건은 납치범으로 몰린 한 남자의 죽음과 함께 일단락되고, 닉과 에이미 두 사람은 다시 ‘완벽한’ 커플로 되돌아간 듯 보였다. 하지만 그건 그들의 기적 같은 사랑을 찬양하는 TV쇼 인터뷰에서, 잡지의 기사 속에서만 그랬다. 세상 사람들이 무엇을 원하는지, 그리고 타인의 시선이 부부의 삶까지도 좌지우지할 수 있다는 사실을 정확하게 알고 있던 에이미는 절대 돌이킬 수 없을 것 같던 부부 관계를 겉으로나마 되돌리고 주도권까지 얻게 된다. 이 기막힌 일은 어떻게 가능했을까?
주인공 에이미를 모델로 한 동화책 시리즈 ‘어메이징 에이미’ - 이십세기폭스코리아(주)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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첼로 신동이자 배구부 간판 선수, 행복한 가정에서 사랑스러운 애견까지 키우던 동화 ‘어메이징 에이미’ 속 완벽한 모습의 에이미. 반면, 평범하고 흠 많았던 ‘진짜’ 에이미는 첼로는 진작 그만두었고 배구부에선 잘린 지 오래, 개는 키워본 적도 없다. 자신을 모델 삼아 태어난 동화 속 에이미가 승승장구하는 동안, 그와는 정반대로 빈 껍데기뿐인 삶을 살아야만 했던 에이미가 느낀 괴리감은 오랜 시간에 걸쳐 에이미의 자아를 철저히 망가뜨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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