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카바이러스로 암세포 잡는다

지카바이러스로 암세포 잡는다

오랑캐로써 오랑캐를 제압한다는 뜻의 ‘이이제이(以夷制夷)’는 후한의 지방 태수 등훈에게서 유래했다. 그가 다스린 곳은 국경 지방이었는데 휘하 장수가 강족의 우두머리들을 살해한 일이 벌어졌다. 그러자 강족은 4만여 명의 군사를 훈련시키며 복수할 날만 기다렸다.

그 지역에는 소월씨족이라는 또 다른 소수 민족이 있었다. 소월씨족은 세력이 적었지만 매우 용맹했다. 강족은 그들에게 등훈을 함께 공격하자고 제안했으나 거절당했다. 강족은 소월씨족부터 먼저 쳤는데, 그때 등훈이 군대를 보내 소월씨족을 도왔다.

측근들은 등훈의 그런 행동을 도저히 이해하지 못했다. 그들이 서로 싸우게 놓아두면 한나라에 이익이 되므로 도와주어서는 안 된다고 건의했다. 그러자 등훈이 조용히 말했다. “맞는 말이네. 하지만 소월씨족이 절멸되면 강족이 더 강대해질 것이 아닌가. 그러니 서로 싸우게 해서 균형을 맞추려는 것이네.”

모기에 의해 감염되는 지카바이러스를 이용해 뇌암을 치료하려는 연구가 시작돼 주목을 끌고 있다. ⓒ 위키미디어 public domain

최근에 등훈의 이이제이 전략으로 암을 치료하려는 시도가 활발하다. 즉, 바이러스로써 암 세포를 잡겠다는 것이다. 흔히 바이러스 하면 무서운 질병부터 떠올리기 마련이다. 에이즈를 일으키는 인간면역결핍바이러스(HIV)가 그렇고, 사스와 에볼라, 메르스 등이 모두 바이러스에 의한 질병이다.

세균보다 크기가 작은 바이러스는 스스로 물질대사를 할 수 없다. 따라서 자신의 DNA나 RNA를 숙주 세포에 침투시킨 뒤 그 세포의 소기관들을 이용해 자신의 유전물질을 복제하거나 자신과 똑같은 바이러스를 생산하는 방식으로 증식한다. 이 과정에서 숙주 세포가 파괴되기도 하며 숙주에 질병을 일으키기도 한다.

흑색종 치료제로 정식 승인

그런데 바이러스의 이 같은 특성을 역이용하면 암 세포를 사멸시킬 수 있다. 예를 들면 헤르페스 바이러스 같은 경우다. 이 바이러스 역시 인간 세포에 잘 침입하는 특성을 지닌다.

하지만 이 세포에 약간의 수정을 가해서 암세포에만 침입하게끔 만들면 자신을 증식시키는 과정에서 암세포를 파괴시킨다. 다국적 제약사인 암젠은 이 바이러스를 이용해 ‘온코벡스’라는 항암 백신을 개발했다. 2015년 미국 FDA는 온코벡스를 피부암의 일종인 흑색종 치료제로 승인했다.

바이러스 중에는 유독 박테리아에만 감염하는 종류가 있다. 박테리오파지가 바로 그 주인공. 얼마나 박테리아에 잘 침투하는지 박테리오파지가 장내에 증식하면 장내 세균의 종 다양성이 줄어들 정도다.

하지만 이 바이러스를 잘 이용하면 슈퍼박테리아를 잡을 수 있다. 슈퍼박테리아는 기존의 항생제를 처리해도 잘 듣지 않는 항생제 내성균으로서 암세포만큼이나 문제가 되고 있는 존재다. 현재 박테리오파지의 엄청난 박테리아 침입 특성을 이용해 슈퍼박테리아를 박멸하는 연구가 진행 중이다.

감기 바이러스가 면역세포를 활성화시켜 간암 세포를 공격한다는 사실도 밝혀졌다. 지난해 영국 리즈대학 연구진은 실험용 쥐에게 레오바이러스를 투입한 결과, 인터페론이 더 많이 분비돼 면역세포인 NK 세포가 활성화됨에 따라 원발성 간암 세포(간에서 시작된 암세포)를 공격한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레오바이러스는 어린이나 노약자에게 감기나 복통을 일으키는 바이러스다. 이 연구결과에 따라 원발성 간암이나 C형 간염을 치유할 수 있는 바이러스 치료제의 개발을 기대할 수 있게 됐다.

이외에도 항암 바이러스의 개발을 추진 중인 곳이 많다. 미국과 유럽, 호주 등지에서 항암 바이러스 바이오 스타트업이 활발히 결성되고 있으며, 국내에서도 다람쥐폭스바이러스를 유효성분으로 하는 암 치료제가 특허를 받는 등 관련 연구가 활발하다.

발달 중인 줄기세포만 공격하는 지카바이러스

최근엔 지카바이러스를 이용해 뇌암을 치료하려는 연구가 시작돼 주목을 끌고 있다. 이집트 숲모기 등이 매개하는 이 바이러스에 임산부가 감염되면 두뇌가 성장하지 못하는 소두증에 걸린 아이가 태어날 수 있다. 소두증 상태에서는 정신지체가 되거나 심한 경우 사망에 이른다.

영국 캠브리지대학의 해리 불스트로드 연구팀은 지카바이러스의 바로 그 같은 특성에 주목했다. 지카바이러스는 태아의 경우 중증 장애를 일으키지만 뇌가 완전히 형성된 어른에게서는 가벼운 독감 같은 증상을 보이는 데 그친다. 그 이유는 뇌에서 발달 중인 줄기세포만 공격하기 때문이다.

가장 흔한 형태의 뇌암인 ‘교모세포종’은 암세포가 발달 중인 뇌와 유사하다. 따라서 지카바이러스가 정상적인 성인의 뇌 조직은 공격하지 않고 암세포만 노릴 것이라는 추정이 가능하다.

캠브리지대학 연구진은 뇌종양을 가진 실험용 쥐를 대상으로 지카바이러스의 잠재성을 평가할 예정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 연구의 핵심은 지카바이러스가 어떻게 혈액뇌장벽을 통과해 줄기세포만 선택적으로 공격하는지 알아내는 데 있다. 그 비밀을 알아낼 경우 5년 생존율이 5%에 불과한 교모세포종을 정복할 수 있게 될지도 모른다.

20세기 초 곤충학자인 윌리엄 휠러는 흰개미를 두고 ‘초유기체(super organism)’라고 칭했다. 각각의 개미 행동이 전체적인 행동과 맞물려 새로운 집단적 행동을 창출해내는 흰개미의 집합체가 하나의 거대한 유기체와 같다고 본 것이다.

미생물에 의한 유전학 연구의 선구자인 조슈아 레더버그는 인간도 초유기체라고 정의했다. 인체에 공생하는 수많은 박테리아와 바이러스가 복잡하게 작동하는 거대한 유기체가 바로 인간이라는 의미다. 이처럼 거대한 복합체의 균형이 깨질 때 질병이라는 현상이 나타난다. 바이러스로써 암세포를 잡는 연구도 이러한 새로운 인식으로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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