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지 오웰과 결핵
그런데 최근에 <1Q84>의 일본어 발음이 <1984>와 같다는 이야기를, Q 를 소문자로 쓰면 <1q84>로 글자도 비슷해 보인다는 이야기를 듣고는 조금 당황했습니다. 하여간 그 무렵 오웰의 <1984>도 읽을 결심을 했고, 소설을 먼저, 영화를 나중에 봤습니다. 소설 속에서 모호했던 이미지들이 영화를 통해 선연해졌습니다.
충격적 미래와 디스토피아적 세계관 투영
보는 내내 초췌하고 깡마른 스미스의 모습, 시도 때도 없는 기침 발작을 하는 그의 모습은 어쩐지 원작자인 조지 오웰을 연상시키네요. 오웰은 결핵 환자였고, <1984>를 집필하던 시기는 결핵으로 발열, 땀, 그리고 살이 무려 13Kg이나 빠진 최악의 시기였으니까요.
조지 오웰(George Orwell, 본명은 Eric Arthur Blair; 1903~1950)은 1938년 3월에 결핵을 진단받습니다. 한창 나이인 35세였습니다. 당시의 결핵치료법은 눈부신 햇살과 깨끗한 공기를 마시며 잘 먹고 푹 쉬는 ‘요양법’ 밖에 없었습니다. 오웰도 요양원에 입원했고 의사의 권고를 받아 겨울 동안은 북아프리카에서 요양도 하며 조금 나았습니다.
1946년 4월에는 <동물농장>이 성공하여 작가 생활 20년 만에 경제적 곤궁을 벗어났고, 이 무렵 <1984>을 쓰기 시작합니다. 하지만 1947년 5월에 결핵이 심하게 재발하였고, 연말에는 글래스고에 있는 병원에 입원합니다. 이 무렵 오웰은 결핵의 최신약인 스트렙토마이신을 만납니다.
스트렙토마이신은 1943년 미국의 왁스먼(Selman Waksman; 1888~1973)이 개발한 결핵치료제입니다. 러시아 출신으로 흙(土壤)에 관심이 많았던 왁스먼은 흙 속에는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는 미생물들이 있지만 인체에 유해한 병원균은 없다는 사실에 매료됩니다.
심지어 우리는 병으로 죽은 사람이나 병든 동물을 산 채로 흙 속에 파묻고, 더러운 분변을 밭에 뿌리고, 결핵 환자들은 가래침도 땅에 아무렇게 내뱉습니다. 그런데도 흙 속에는 그 병원균들이 결핵균이 안 보입니다. 왁스먼은 그 이유를 알고 싶었지요(기발합니다. 발상의 전환이네요!).
혹시 흙은 병원균들에겐 지옥이나 다름 없는 곳일까? 혹시 토양미생물들은 외부침입자들이 발도 못 붙이게 ‘손’을 쓰나? 왁스먼은 그 보이지 않는 손을 찾는 연구를 시작합니다.
플레밍(Alexander Fleming; 1881~1955)은 우연히 배양접시에 내려앉은 푸른 곰팡이로부터 페니실린을 얻었지만 지저분한 흙을 뒤진 왁스먼은 토양 미생물들이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다른 미생물들을 죽이는 화학물질’을 만들고 주변으로 내뿜는다는 것을 발견합니다. 즉, 흙 속에서 몸을 움직여 적을 공격할 수 없는 미생물들이 생존을 위해 화학무기를 쓴다는 말입니다.
왁스먼은 이런 미생물들의 화학무기를 ‘anti-biotic’으로 명명했습니다. 다른 생명체(生命體; biosis)에 맞선다(對抗; anti-)한다는 합성어인데, 우리말로는 ‘항생(抗生)물질(제)’로 번역합니다. 미생물의 다양성만큼이나 천연 화학무기도 많답니다.
왁스먼은 무려 1만여 개의 항생물질을 연구했는데, 특히 스트렙토마이세스균(streptomyces )을 주목합니다. 자신이 아는 가장 뚝심 좋은 토양미생물이었으니까요. 이 녀석이라면 뭔가 있지 않을까? 왁스먼은 1915년부터 이 녀석에게 매달립니다.
1932년에 미국 결핵협회는 왁스먼에게 ‘결핵균은 흙 속에서 빨리 죽어버린다’는 속설의 근거가 있는지 조사해달라고 합니다. 왁스먼은 엄청난 결핵균조차 흙 속에서 내쫓을 균이라면 단연 스트렙토마이세스뿐일 것이라 믿습니다. 그렇다면 스트렙토마이세스의 화학무기가 결핵균에 듣지 않을까?
1940년 먼저 액티노마이신(actinomycin)이 분리됩니다. 시험해보니 결핵균에겐 영락없는 ‘쥐약’이었습니다. 하지만 사람에게도 마찬가지로 독성이 강한 지라 약으로는 쓸 수 없었습니다. 1942년에는 스트렙토리신(streptolysin)을 분리했고, 더 나아가 1943년에 스트렙토마이신(streptomycin)을 분리합니다. 먼저 동물 실험으로 결핵 치료 효능을 확인한 후, 1944~45년에 시한부 상태의 결핵 환자들에게 사용해 환자의 80%를 살려냈습니다. 놀라운 일이었습니다. 인류 역사상 처음으로 결핵치료제를 손에 넣은 대단한 일인 것이지요(덕분에 왁스먼은 1952년 노벨 생리-의학상을 받습니다). 1946년부터는 미국에서 시판이 시작되어 자유롭게 처방을 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영국에서는 사정이 달랐습니다. 정식 수입이 안되었습니다. 영국에서는 자체적으로 효능 시험을 해본 후 도입을 결정하기로 하고 1947년 초에 런던의 3개 병원에서 엄격한 임상시험을 시작합니다. 6개월 후 스트렙토마이신의 효과는 일시적이라는 실망스러운 결과를 얻습니다. 처음에는 효과가 보이지만 곧 내성균이 생긴다는 것이지요.
당시에 오웰에겐 <동물농장> 덕분에 미국에서도 들어오는 인세 수입이 있었습니다. 그 돈으로 고가의 신약 스트렙토마이신을 구입합니다(당시 가격은 1회 주사 분량인 1그램당 16달러로 지금 가치로는 200달러). 수입 허가도 받기 어려웠지만 아는 유력자의 힘을 빌어 통관도 했습니다.
천신만고 끝에 구한 스트렙토마이신을 매일 1그램씩 주사를 맞기 시작합니다. 1948년 봄에 오웰은 기력을 회복할 정도로 효과는 놀라웠습니다. 하지만 50일 만에 피부와 점막에 심한 부작용이 생겨 스트렙토마이신을 중단합니다. 그러자 결핵은 기다렸다는 듯 재발합니다. 하지만 오웰은 남은 힘을 다해 <1984>를 씁니다. 마침내 1948년 마지막 말을 며칠 앞두고 탈고합니다. 몸은 만신창이가 됩니다.
1949년 연초부터 요양원에 입원했고, 6월에 출판된 <1984>는 큰 성공을 안겨다 줍니다. 9월에는 재발되어 런던의 대학병원에 입원했고, 10월에는 <1984>의 여주인공의 모델이 되었던 브라우넬과 결혼식도 올립니다(첫번째 아내와는 사별). 그리고 희망에 찬 새해 1950년을 맞았지만 스위스 요양원으로 떠나기 며칠 전, 새벽에 심한 객혈을 한 후 숨을 거둡니다. 불과 47세였습니다.
1950년대 이후 새로운 치료제들이 쏟아져 나옵니다. 만약 오웰이 < 1984> 를 위해 생의 마지막 에너지를 불사르지 않고 몇 년만 조금 더 버텼다면, 신약들로 목숨을 구할 수 있었을 텐데 영화에 나오는 윈스턴 스미스의 초췌한 얼굴을 보면서 자꾸자꾸 드는 생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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