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인스타그램(이하 인스타)에 자꾸 옛날 여관 사진이 올라온다. 금방이라도 허물어질 것 같은 건물에 김이 모락모락 올라오는 목욕탕 표시와 ‘여관’이라고 큼지막하게 쓴 투박한 간판 사진. 서울 종로구 통의동 ‘보안여관’의 모습이다.
그 자리에 있은 지 80년은 족히 넘은 이 여관은 요 몇 달 사이 인스타 속 나들이 명소로 떠올랐다. 보안여관 관련 게시물 수만 3600여 개. ‘보안책방’ ‘보안스테이’ ‘일상다반사’ 등 보안여관과 연결된 장소들의 게시물도 속속 올라온다. 지난 9월 15일 오후 1시쯤 소문으로만 듣던 보안여관을 직접 찾아갔다. 경복궁 영추문 맞은 편에 자리잡은 보안여관에 가기 위해서는 지하철 3호선 경복궁역에서 내리는 게 가장 쉽다. 4번 출구로 나와 청와대로 들어가는 길, 일명 ‘경복궁 담장길’을 따라 청와대 방면으로 쭉 거슬러 5분 정도 걸어 올라가다보면 통의동파출소, 대림미술관을 지나 투박한 보안여관 간판을 찾을 수 있다.
이름은 여관이지만 이곳은 예술작품을 전시하는 갤러리다. 과거 여관으로 운영되다 2004년 경영난으로 문을 닫고 수년간 버려지다시피한 곳을 2007년 당시 복합문화예술 공간을 기획하고 있던 최성우 보안1942 대표(일맥문화재단 이사장)가 사들였고, 2010년부터 갤러리로 운영하고 있다.
오래된 간판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는 갤러리 '보안여관'.
예술가들 사랑했던 옛모습 간직한 서촌 명소
2004년 여관 문 닫고 지금은 갤러리
바로 옆 '보안1942' 생기면서 SNS 핫플레이스로
경복궁 영춘문 건너편에 있는 '보안여관'(오른쪽)과 그 모습을 꼭 닮은 '보안1942'.
사실 여관일 때에도 갤러리 못지 않게 많은 문인과 화가 등 예술가들의 공간이었다. 1936년 시인 서정주가 여기서 지내며 김동리·김달진 등 동료 시인과 함께 문예동인지 ‘시인부락’을 창간했다는 이야기는 꽤 알려져 있다. 화가 이중섭이나 시인 이상도 보안여관 문지방이 닳도록 들락거리던 예술인들 중에 포함돼 있었다. 2004년 문을 닫기 직전엔 늦게까지 야근하다 통금시간에 걸린 청와대 공무원들의 잠자리로 종종 쓰이기도 했다.
보안여관에 들어서자마자 보이는 옛 여관 시절 경고푯말.
너무 낡고 헐어 골조가 앙상하게 드러난 방에는 오래된 서울의 건물 사진을 전시하는 ‘서울루나포토 2017’ 전시회가 열리고 있었다. 작품도 작품이지만 발걸음을 올릴 때마다 삐걱삐걱 소리를 내는 바닥과 이제는 생활에 사용하지 않는 옛 전구 스위치나 ‘문살짝’ 같은 푯말을 보는 재미가 솔직히 더 쏠쏠했다.
복도를 따라 열려있는 낡은 방문이 보인다.
방 안은 건물을 지탱하고 있는 골조만 남기고 벽을 철거해 공간을 틔워 전시장으로 쓴다.
보안여관 입구에 있는 전등 스위치. 이런 스위치 보는 것, 참 오랜만이다.
깔끔한 플레이팅의 쌈밥과 차, 커피를 먹을 수 있는 카페 '일상다반사'.
보안1942 2층에 있는 '한권서점'. 이곳을 지키는 개 '보안이'가 가장 좋아하는 장소다.
보안1942 지하의 '보안책방'. 오후 8시 이후엔 술집 '보안술집'으로 변한다.
일상다반사에서 시킨 자몽국화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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