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05년 경, 로우렌티스 로리카투스(Laurentius Loricatus)라는 15살 가량의 젊은 군인이 사고로 사람을 죽였다. 그는 34년간 로마 수비아코 지역의 동굴에 살며 이를 참회했다’ (1244년에 쓰여진 양피지 문서의 내용 中)
인류의 역사는 기록에 의해 남겨진다. 우리의 조상은 나무 껍질이나 돌과 같은 자연물에 기록을 남기다가 고대 이집트 때 식물성 성분으로 만들어진 파피루스가 개발되자 이를 사용했다. 이후 기원전 190년 경 현재 터키 북서부 지역 페르가몬에서 염소나 소 가죽을 이용한 양피지가 발명됐다. 양피지는 파피루스보다 견고하고 장기간 보존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었다.
양피지는 8세기 초부터 종이가 개발되기 전까지 기록을 위해 널리 사용됐다. 하지만 양피지에게도 치명적인 약점이 있었다. 바로 양피지에 기생하는 미생물이었다.
미생물은 양피지 색을 보랏빛으로 물들이는 것은 물론 콜라겐으로 이뤄진 표면 끝을 갈라지게 만들어 글자를 알아 볼 수 없게 만들었다. 이 미생물은 기존의 세포 배양이나 전기영동과 같은 분자적 방법으로는 확인할수 없었다.
연구팀이 분석에 사용한 13세기 양피지 문서 - Tor Vergata University 제공
연구팀은 바티칸에 보관된 한 병사의 이야기가 쓰여진 13세기의 양피지를 얻어 유전자 분석을 실시했다. 양피지의 보라색으로 변색된 부분에서 1만 445개의 박테리아 유전자를 확인했고, 보라색으로 물들지 않은 부분에서 5384개의 박테리아 유전자를 찾아냈다.
여기서 어떤 박테리아가 양피지를 훼손시키는지 명확히 가리기 위해 연구팀은 588개씩 무작위로 유전자 샘플을 분리했고, 양피지에 기생하는 박테리아의 구성 비율을 확인했다.
연구팀은 또 염분을 좋아하는 프로테오박테리아 문에 포함된 ‘비브리오날즈(Vibrionales)' 종류는 흰색 부분의 샘플에서 16.4%를 차지했지만, 보라색 부분에서는 29.7%로 2배 가량 높게 나타났다.
양피지의 보라색 손상 부분과 하얀색 부분간의 박테리아 구성 비율을 그린 모식도 - Tor Vergata University 제공
미그리오레 교수는 “양피지로 된 고대 문서를 훼손시키는 주범을 찾았다”며 “향후 양피지의 훼손을 막고 이미 변색된 부분을 복원하는데 이번 연구 결과가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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