객성과 신성과 초신성

객성과 신성과 초신성

객성(客星)이 처음에 미성(尾星)의 둘째 별과 셋째 별 사이에 나타났는데, 셋째 별에 가깝기가 반 자 간격쯤 되었다. 무릇 14일 동안이나 나타났다.
- ‘세종실록’ 세종 19년 2월 5일 (1437년 3월 11일)

예전에 책(잡지)인가 TV인가에서 인상적인 인터뷰를 봤다. 1970년대 서방 기자로는 처음 북한 땅을 밟아 취재한 미국 기자 얘기였다. 이 취재 이후 이 기자는 ‘북한통’으로 언론계에서 입지를 확고히 굳혔다. 그런데 20여 년이 지난 뒤 북한 취재는 더 이상 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어느 날 문득 ‘지난 20년 동안 세상은 엄청나게 변했는데 북한은 조금도 변한 게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기 때문이란다.

지난 주말 북한의 6차 핵실험 속보를 접하며 문득 이 인터뷰 생각이 났다. 필자 나이 오십이 되도록 한결같이 비생산적이고 반(反)세계적인 행동을 되풀이 하는 북한을 보는 것도 이제 지쳤다. 우리 민족은 인류의 발전에 기여는 하지 못할망정 폐만 끼치는 존재일까라는 자괴감도 든다.

이런 기분이 들 때 떠오르는 사람이 세종대왕이다. 비록 우리만 쓰고 있지만 한글은 문자의 역사에서 기념비적인 업적이고 그밖에도 세종 시절 이룬 과학기술 업적이 눈부시다. ‘나랏말싸미 듕귁에 달아 문짜와로 서르 사맛디 아니할쎄...’로 시작하는 ‘훈민정음’의 서문을 읽으면 가슴이 뭉클하다.

격변변광성이 신성 폭발을 일으키는 메커니즘을 도식화한 그림이다. 근접쌍성계에서 적색거성 같은 동반성(왼쪽)에서 백색왜성(가운데 네모 안)으로 물질이 유입될 경우 별 표면 온도가 올라가 수소융합반응이 일어나면서 껍질이 폭발한다. 오른쪽은 백색왜성 부분을 확대한 이미지다. - 네이처 제공

질량에 따라 격변변광성의 운명 갈려

학술지 ‘네이처’ 8월 31일자에는 앞에 인용한 ‘세종실록’에 기록된 문구가 ‘신성’이라는 천문 현상을 이해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음을 보여주는 논문이 실렸다. 위의 문구에서 객성은 신성(nova)을 가리킨다. 580년 전 조선의 천문학자들이 신성을 관측해 기록한 한 줄 문구가 어떻게 최첨단 관측 장비와 컴퓨터의 도움을 받는 오늘날 천문학자들에게 도움을 줄 수 있었을까.

먼저 객성과 신성, 초신성(supernova)의 개념을 정리해 보자. 객성이란 말은 사마천의 ‘사기’에 처음 나오는데 ‘일시적으로 나타나는 별’을 뜻한다. 사용례를 보면 신성과 초신성은 물론 혜성도 포함했다. 한편 신성과 초신성은 별이 폭발할 때 빛이 나와 일시적으로 엄청나게 밝아지는 현상이다.

초신성은 그 밝아지는 정도가 신성보다 훨씬 크기 때문에 초(super)라는 접두어가 붙었지만, 폭발의 양상도 전혀 다르다. 즉 신성은 별의 껍질만 폭발하는 반면 초신성은 별 자체가 폭발해 사라지기 때문에 별의 장엄한 최후다. 따라서 한 별에서 신성 현상은 여러 차례 일어날 수 있지만 초신성은 한번 뿐이다.

한편 폭발하는 별의 유형에 따라 분류할 수도 있다. 먼저 백색왜성의 폭발로, 신성과 1형 초신성에 해당한다. 질량이 태양의 0.26~1.5배인 별은 핵융합 반응이 끝나면 수축해 크기가 지구만한 백색왜성이 된다(밀도는 지구보다 훨씬 높다). 물론 태양도 이런 운명을 맞을 것이다. 그런데 홀로인 태양과는 달리 많은 별이 쌍성계를 이루고 있다. 만일 두 별 사이의 거리가 가깝고(근접쌍성계라고 부른다) 하나가 질량이 밀집된 백색왜성이고 다른 하나(동반성)가 적색거성같이 지름이 큰 별일 경우 백색왜성의 중력이 동반성의 물질(주로 수소기체)을 끌어들인다. 

이렇게 유입된 물질이 백색왜성 주변에 원반을 이루고 백색왜성 표면에 쌓이면서 온도가 올라가 1억 도를 넘게 되면 핵융합 반응이 개시되면서 별 표면에서 격렬한 폭발이 일어난다. 이게 신성이다. 신성폭발이 일어난 뒤에도 백색왜성은 여전히 남아있고 동반성으로부터 물질이 계속 들어와 다시 폭발할 수 있다. 이런 별을 격변변광성(cataclysmic variable)이라고 부른다.

그런데 동반성에서 유입된 물질이 백색왜성에 쌓여 질량이 태양의 1.4배(찬드라세카 질량이라고 부른다)가 넘으면 백색왜성이 중력수축을 일으키며 붕괴하며 폭발하는데 이게 바로 1형 초신성이다. 한편 질량이 태양의 1.5배가 넘는 별은 동반성으로부터 물질유입이 없어도 최종적으로 중력수축에 이은 폭발을 하게 되는데 이게 2형 초신성이다.

2016년 6월 촬영한 전갈자리 성운 이미지로 6000초 노출 이미지다. 빨간 틱 마크(┒)는 현재 격변변광성의 위치를 가리킨다. 1923년 관측한 사진을 바탕으로 1437년 당시 위치를 추정한 결과(빨간 십자 마크) 성운의 2016년 중심은 파란 십자 마크, 1437년 추정 중심은 녹색 십자 마크다. 빨간 십자와 녹색 십자 마크가 거의 겹쳐 격변변광성의 1437년 신성 폭발이 성운의 근원임을 보여주고 있다. - 네이처 제공

500년 사이 신성 유형 바뀌어

한편 신성도 폭발 양상에 따라 몇 가지 유형으로 세분된다. 예를 들어 1437년 ‘세종실록’에 기록된 신성(Nova Scorpii 1437)은 ‘고전 신성(classical nova)’으로 분류되는데, 하루나 이틀 사이 최대 밝기가 평소 광도보다 7~18등급 더 올라간다. 1등급이 올라갈수록(숫자가 작아질수록) 2.5배 더 밝아진다. 따라서 설사 우리 은하에 있더라도 맨눈으로는 결코 보일 일이 없는 백색왜성이 신성으로 모습을 드러낸다. 고전 신성은 실록에 묘사된 것처럼 2주 정도 지나면 다시 사라진다.

한편 폭발력이 약해 밝기가 덜한 ‘왜소 신성(dwarf nova)’이 있다. 이 경우 최대 밝기가 평소보다 2~6등급 올라가는데 그치기 때문에 맨눈에는 보이지 않는다. 천문학 교과서를 보면 고전 신성과 왜소 신성을 별개의 신성으로 분류하고 있다. 즉 동반성에서 물질 유입이 왕성한 경우 고전 신성, 미미할 경우 왜소 신성 폭발이 일어난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번에 연구자들은 하나의 천체(격변변광성)가 폭발의 세기에 따라 고전 신성일 때도 있고 왜소 신성일 때도 있음을 보였다. 즉 1437년 강력한 폭발을 일으킨 백색왜성이 500년이 지난 1934년과 1935년, 1942년 연달아 왜소 신성에 해당하는 작은 폭발을 일으켰음을 확인했다.

1942년 일어난 격변변광성의 왜소 신성 폭발 장면이다. 4월 29일에서 5월 18일, 6월 6일까지는 점점 밝아지다가 6월 9일에는 다시 어두워졌다. - 네이처 제공

미국자연사박물관을 비롯한 6개국 공동연구자들은 2016년 칠레에 있는 스워프 망원경으로 1437년 신성 폭발의 잔해로 추정되는 게자리 성운(Scorpius nebula)의 해상도 높은 영상을 찍었다. 그런데 격변변광성, 즉 당시 신성폭발을 일으킨 것으로 추정되는 백색왜성의 위치가 성운의 중심에서 약간 벗어나 있었다. 신성 폭발이 일어나면 잔해가 사방으로 균등하게 퍼질 것이므로 격변변광성이 성운의 중심에 있어야 한다. 따라서 이 데이터만 보면 성운이 초신성 폭발의 잔해라고 해석할 수도 있다.

연구자들은 지난 100여 년 동안 밤하늘을 찍은 사진을 디지털화해서 보관하고 있는 하버드대의 DASCH 데이터베이스를 조사했다. 다행히 1923년 6월 10일 이 영역의 밤하늘을 300분 동안 노출해 찍은 사진에서 격변변광성을 확인했다. 그런데 그 위치가 2016년 위치와 살짝 달랐다. 이를 바탕으로 1437년 위치를 추정하자 지금 위치에서 동쪽으로 7.4초(여기서 초는 각도단위로 1초는 3600분의 1도) 북쪽으로 16.0도 지점에 있었을 것으로 추정됐다. 바로 성운의 중심에 해당하는 위치다. 즉 전갈자리 성운이 1437년 폭발한 신성의 잔해가 맞다는 말이다.

한편 연구자들은 DASCH의 데이터베이스에서 흥미로운 사진들을 추가로 발굴했다. 즉 1437년 고전 신성 폭발을 일으킨 격발변광성이 1934년과 1935년, 1942년 잇달아 왜소 신성 폭발을 일으켰다는 사실이 확인됐다. 이 가운데 1942년 폭발은 밝기가 12등급 가까이 올라갔고 나머지는 14~15등급이었다. 참고로 맨눈으로 보이는 한계는 6등급이다. 1437년 고전 신성은 최소한 6등급의 밝기였다는 말이다.

연구자들은 논문 말미에서 “1437년 3월 11일의 고전 신성이 497년이 지나(즉 1934년) 왜소 신성이 됐다는 건 두 가지 신성이 동일한 시스템이 다른 시기에 보이는 현상이라는 입장을 지지하는 증거”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한편 연구자들은 추가 관측 자료를 바탕으로 이 백색왜성의 질량이 태양의 1.0~1.4배 사이라고 추정했다. 만일 1.4배에 가깝다면 물질이 조금 더 유입될 경우 찬드라세카 질량에 이르러 초신성 폭발을 할 수도 있지 않을까. 

1형 초신성은 두 가지 메커니즘으로 일어날 수 있다. 하나는 신성처럼 동반성에서 물질을 받은 백색왜성이 폭발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근접쌍성계의 두 백색왜성이 서로 나선을 그리며 다가가 부딪쳐 폭발하는 것이다(그림). 최근 이 둘을 구별할 수 있는 관측결과가 발표됐다. - NASA 제공

폭발 잔해가 동반성에 충돌하며 파란빛 나와

학술지 ‘천체물리저널레터스’ 8월 20일자에는 격변변광성이 폭발하는 1형 초신성에 관한 흥미로운 관측결과가 실렸다. 앞에서 설명했듯이 동반성에서 물질이 유입돼 찬드라세카 질량에 이른 백색왜성이 중력수축을 하다 폭발한 게 1형 초신성이지만 사실 다른 시나리오도 있다.

즉 근접쌍성계의 두 별의 질량이 비슷해 비슷한 시기에 둘 다 백색왜성이 될 경우 그 어느 쪽도 동반성으로부터 물질유입을 기대할 수 없다. 그런데 둘 사이의 거리가 아주 가까울 경우 서로 나선을 그리며 다가가 합쳐지며 초신성 폭발이 일어날 수 있다. 그렇다면 이런 메커니즘의 초신성과 동반성의 물질 유입 메커니즘의 초신성을 어떻게 구별할 수 있을까.

미국 버클리 캘리포니아대의 천문학자 대니얼 카센은 지난 2010년 학술지 ‘천체물리저널’에 발표한 논문에서 이에 대한 아이디어를 제시했다. 즉 동반성에서 물질 유입을 받은 백색왜성이 초신성 폭발을 일으킨 경우 사방으로 퍼져나가는 폭발의 잔해가 동반성(적색거성)에 부딪치며 짧은 파장의 가시광선(파란빛)과 자외선을 많이 내놓게 된다는 것이다. 이를 ‘동반성-충격 모형’이라고 부른다. 즉 관측한 스펙트럼이 초신성 폭발의 에너지에서 계산한 스펙트럼과 일치하면 두 백색왜성이 충돌하며 폭발한 초신성이고 파란빛과 자외선 영역이 예상치보다 좀 더 많으면 동반성에서 물질을 받은 백색왜성이 폭발한 초신성이다.

미국 라스컴브레스천문대 등 미국과 덴마크의 공동연구자들은 지난 3월 10일 관측한, 지구에서 5500만 광년 떨어진 나선은하 NGC 5643에서 일어난 초신성 폭발 데이터를 분석했다. 24시간 전에 얻은 데이터에는 폭발의 흔적이 없었기 때문에 초신성 폭발은 그 사이에 일어났을 것이다. 

분석 결과 폭발 하루 이내 관측된 파란빛의 양이 동반성-충격 모형이 예측하는 것과 잘 맞아떨어졌다. 이에 따르면 초신성 폭발을 일으킨 백색왜성의 가까이에 지름이 태양의 56배에 이르는 적색거성이 존재한다. 다만 자외선 피크는 동반성-충격 모형이 예측하는 값에 못 미쳐 아쉬움을 남겼다. 이에 대해 연구자들은 몇 가지 가능한 설명을 제시하면서도 비슷한 관측이 더 쌓여야 이론 모형이 완벽해질 수 있다고 덧붙였다.

우리 은하에서 신성 폭발은 일 년에 수십 차례 일어난다고 한다. 이 가운데 맨눈에도 보이는 6등급 이내는 대략 일 년에 하나 정도다. 최근에 가장 밝은 신성으로는 1999년 관측된 ‘Nova Velorum 1999’로 2.6등급이었다. 한편 1604년 관측된 케플러 초신성(SN 1604)이 우리 은하에서 마지막으로 관측된 초신성 폭발이다. 이 초신성의 최대 밝기는 -2.5 등급으로 태양과 달 다음으로 밝았고 3주 넘게 낮에도 보였다고 한다.

우리 은하 정도 크기라면 대략 50년에 한 번 꼴로 초신성 폭발이 일어나는 것으로 추정되는데 케플러 초신성 이후 400년이 넘도록 조용한 건 이례적인 일이다. 1437년 신성 폭발을 일으킨 백색왜성이 동반성에서 물질을 계속 유입 받아 초신성 폭발을 일으키는 순간을 상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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