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천 영화] ‘지구를 지켜라!’

# 영화 ‘지구를 지켜라’

감독: 장준환
출연: 신하균, 백윤식, 황정민
장르: SF, 스릴러
상영시간: 1시간 57분
개봉: 2003년 4월 4일
관람등급: 청소년 관람불가


개봉 당시 ‘지구를 지켜라!’ 포스터 / 개봉 10주년 기념 포스터 - (주)싸이더스, 한국영상자료원 제공

최근 SF 영화 ‘컨택트’가 관객들에게 좋은 반응을 얻기 전에 앞서, ‘인터스텔라’의 대대적인 흥행이 있었다. ‘인터스텔라’가 천만 명의 관객을 동원하기 전에는 ‘그래비티’에 대한 열광적인 반응이 있었다. 그리고 ‘그래비티’가 개봉하기 10년 전인 2003년, 우리나라에서도 야심만만한 SF 영화가 혜성처럼 나타났으니… 오늘 소개하려는 영화는 바로 신하균, 백윤식 주연의 영화 ‘지구를 지켜라!’다.

물론 이 영화를 보지 않았더라도 영화에 대한 정보를 알고 있는 사람들은 많을 것으로 짐작한다. 그 정보라는 것이 대부분 시대를 앞서간 비운의 걸작(이라지만 별로 안 보고 싶은)이라는 얘기거나, 영화 마케팅의 실패 사례를 언급할 때 항상 첫 손가락으로 꼽는 작품으로 등장한다는 게 문제겠지만. 말도 많고 탈도 많아 보이는 이 영화의 정체가 무엇인지 차근차근 살펴보자.
(*아래에는 ‘지구를 지켜라!’에 대한 스포일러가 있을 수 있습니다)

# 안드로메다 PK-45 행성에서 지구로 건너온 ‘꾸오아악떼꾹(quoaaktekguk)’를 잡아라!


(주)싸이더스 제공

살면서 스스로를, 혹은 다른 누군가를 ‘별종’이라고 생각해본 적이 있는가? 다른 별에서 건너온 종(種), 그러니까 외계인 말이다. 강원도 어느 산골에서 벌을 기르며(별이 아니다) 부업으로 마네킹을 만드는 주인공 ‘병구’(신하균 분)는 정말 그렇게 생각한다. 평화로워 보이는 지구에 사실은 외계인이 살고 있고, 그 외계인은 지구에 엄청난 재앙을 몰고 올 거라고. 그래서 병구는 지구를 지키기 위해 외계인 납치 계획을 세운다.

병구가 나름대로 철저하게 조사한 바에 따르면 안드로메다의 행성 PK-45에서 건너온 외계인 중 한 명이 바로 경찰청장의 사위이자 유제화학의 ‘강사장’(백윤식 분)으로 위장하고 있다. 이 외계생명체의 본명은 ‘꾸오아악떼꾹(quoaaktekguk)’. 머리카락으로 텔레파시를 하는 그의 종족은 전기에 강하고 의외로 물파스에 약하다. 그 이유는 물파스 속에 들어있는 성분인 “말레인산클로르페니라민이 몸 속에 침투하면, 신경전달물질인 트란스크리산테메이트에 협착하게 되고 트란스크리산테메이트는 트랄트란과 레스메트린 이 두 가지 물질로 파괴”되어 힘을 못 쓰기 때문이다.


(주)싸이더스 제공

강사장을 몰래 납치한 병구는 자기 집 지하실에 그를 감금한다. 그리고는 여자친구 ‘순이’ (황정민 분)와 함께, 그를 고문하고 밖으로 나가지 못하도록 막는다. 인생에서 누군가에게 한 번도 져본 적이 없는 강사장은 병구의 손에서 달아나기 위해 발버둥친다. 한편, 경찰은 납치 당한 강사장을 구하기 위해 점차 수사망을 좁혀온다. 병구의 주장대로 개기월식이 나타나는 날, 지구를 멸망시키러 저 멀리 안드로메다 PK-45 행성에서 외계인들이 찾아올까? 과연 병구는 지구를 지킬 수 있을까?

# 우주로 뻗어나간 자유분방한 상상력


(주)싸이더스 제공

영화의 첫 대사는 순이와 대화하는 병구의 말이다. "내가 미쳤다고 생각할 지도 몰라". 영화를 보고 어떤 관객은 미친 사람은 병구가 아니라 이 영화를 만든 감독이 아닐까, 혹은 안드로메다에서 건너온 것은 강사장이 아니라 감독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충분히 합리적인 의심이다. ‘지구를 지켜라!’는 이 영화가 처음 출현했던 2003년 당시는 물론, 지금까지도 한국영화계에서 이런 종류의 영화는 찾아보기 힘들다고 말할 수 있을 만큼 별종에 가깝다.

감독은 어떻게 이런 영화를 만들 생각을 했을까? 단순히 이야기가 기발한 수준을 넘어, 이 영화는 범상치 않은 캐릭터 설정과 터무니없어 보이는 세계관을 끝까지 밀어붙이고, 타협 없이 저돌적으로 표현한다. 또한 이 한 편의 영화에 SF의 요소는 물론, 액션과 스릴러와 공포, 멜로 등 다양한 장르적 개성을 총망라한다. 감독은 이를 위해 수많은 명작 영화 속 익숙한 장면들을 적극적으로 차용하기도 한다.

무엇보다 충격적인 사실은 이 영화가 연출을 맡은 장준환 감독의 장편 데뷔작이라는 것이다. 개봉 당시 영화의 최종 관객 수가 7만3132명이었다는 사실이 무색할 정도로 “2000년대 가장 인상적인 한국영화 감독 데뷔작”(이동진 평론가), “기존의 상식을 깨고, 자기만의 세계를 선언하는 진정한 데뷔작의 패기와 열정이 ‘지구를 지켜라!’에는 시퍼렇게 살아 있다”(김봉석) 등 평론가들의 극찬을 받았다. (물론 평론가들의 호평이 영화의 흥행을 보증하진 않는다. 절대로!) 그리고 정확히 10년 뒤 ’화이: 괴물을 삼킨 아이’ 나올 때까지 감독은 다음 작품을 만들지 않았다.

# 폭력의 역사를 고통스럽게 돌아보다


(주)싸이더스 제공

그렇지만 마냥 재밌게 볼 수 있는 영화는 아니다. 영화는 많은 관객들이 상업영화에 기대하는 요소 대신에, 사람들이 불편하게 느낄 수 있는 내용들도 가감 없이 보여준다. 예를 들면, 병구가 납치한 강사장을 갖가지 방법으로 고문하는 장면이 영화 속에 자주 등장하는데, 강사장을 연기한 백윤식은 인터뷰에서 “연기생활 30년 넘도록 별의별 상황을 다 겪었지만 이렇게 집중적으로 장시간 동안 고통을 겪은 건 처음이자 마지막이 될 것”이라고 밝히기도 했다.

여기엔 나름대로 이유가 있다. 영화 속 병구가 아무 이유 없이 미친 사람이 아니라는 점을 표현하려 했기 때문이다. 병구가 강사장을 납치, 감금, 고문하는 장면이 등장한 뒤에는, 지독하게 현실과 맞닿아있는 이야기들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어린 시절부터 외부의 폭력에 노출되어 살아왔던 병구는 학교에서는 친구들과 선생님에게, 교도소에서는 교도관에 의한 폭력의 피해자로 살아간다. 그리고 성인이 된 후 강사장의 회사인 화학공장에서 엄마, 여자친구와 함께 일하게 되지만 공권력의 파업 진압 과정에서 그들마저도 잃게 된다.


(주)싸이더스 제공

“고통이라는 건 절대 익숙해질 수 없다”고 말하는 병구는 고통을 이겨내기 위해 끊임없이 향정신성 의약품을 훔쳐 복용하고, 그 부작용으로 과대망상에 사로잡힌다. 이렇듯 SF의 외피를 두른 이 영화는 현실의 폭력을 있는 그대로 표현해 관객들에게 고통스럽게 다가오기도 한다. 특히 병구와 강사장의 관계는 가학적으로 묘사되고, 병구의 집 안에서 자주 목격되는 마네킹, 인형 등을 포함해 영화에는 신체 절단의 이미지들이 여러 차례 반복해서 등장한다.

# 실패해도 괜찮아, 그래도 다시 한 번!


(주)싸이더스 제공

‘지구를 지켜라!’는 앞서 언급한대로 관객들의 호불호가 많이 갈리는 영화다. 혹자는 시대를 앞서간 걸작이라고 하지만, 누군가는 과대평가된 영화라고 비판하기도 한다. 또한 영화의 흥행 실패가 단순히 마케팅의 문제였다고 판단하기에는 냉정하게 말해서 의구심을 지울 수 없는 것도 사실이다. 극단적으로, ‘지구를 지켜라!’의 마케팅 방향을 바꿔 가까운 미래에 재개봉한다고 한들, 평단의 극찬을 받은 만큼 흥행하리란 보장은 없으니 말이다.

개봉 당시 영화 관계자들의 낙관적인 예상이 빗나가며 흥행에 참패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에 열렬한 지지를 보냈던 관객들도 있었다. 게다가 2008년에는 지난 10년간의 개봉작 중 다시 보고 싶은 영화에 대한 설문조사에서 당당히 1위를 차지했다. 이후에도 개봉 10주년 기념 상영회가 열렸고, 작년에는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20주년 특별전에 초청되었으며 샤이니의 키(Key)가 출연한 연극으로 재탄생했다.

돌아보면 2003년은 ‘지구를 지켜라!’를 비롯해서, 박찬욱 감독의 ‘올드보이’, 봉준호 감독의 ‘살인의 추억’, 김지운 감독의 ‘장화, 홍련’, 그리고 배우 장진영의 ‘싱글즈’까지, 여전히 회 되는 다양한 한국영화들이 만들어졌던 시기였다. 작년도, 올해도 한국영화가 개봉하면 관객들의 꾸준한 발길이 이어지고 있지만, 비슷한 공식을 따르는 기획영화들이 매년 등장하는 현상을 보면 오늘날 영화계는 과거처럼 창작자들이 상상력과 창의력을 자유롭게 발산할 수 있는 풍토는 아닌 것 같다.

누구나 좋아할 수 있는 영화는 아니겠지만 기상천외한 상상력과 개성으로 무장한 ‘지구를 지켜라!’가 만들어질 수 있던 것은 신인감독의 패기 넘치는 아이디어도 과감히 영화화할 수 있을 만큼 문화적 다양성이 존중받는 시대였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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