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역사영화, 무엇을 고민해야 하는가

'군함도'

[매거진M] 올여름 극장가도 한국 역사 블록버스터가 차지했다. ‘군함도’(7월 26일 개봉, 류승완 감독)와 ‘택시운전사’(8월 2일 개봉, 장훈 감독) 얘기다. 이는 비단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최근 10여 년 동안, 한국의 대형 역사영화가 흥행의 선봉에 서며 ‘1000만영화’의 기록을 갈아치운 영광을 누린 것은 물론, 매 작품이 ‘국뽕’이니, 역사 왜곡이니 하는 논란에 시달려 오고 있다. 지금 한국의 대형 역사영화에는 한국영화 산업의 성장과 그 노하우, 사회적 요구와 공감, 역사적 의미와 스펙터클의 아이러니가 고스란히 녹아 있다. ‘태극기 휘날리며’(2004, 강제규 감독)부터 ‘택시운전사’까지 그 의미와 생각할 거리를 짚었다.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이건 그렇게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영화가 역사를 담아낸다는 건 다양한 스펙트럼을 지닌다. 올해 나온 영화들만 놓고 따져 보자. ‘임금님의 사건수첩’(4월 26일 개봉, 문현성 감독)과 ‘대립군’(5월 31일 개봉, 정윤철 감독)을, 조선 시대가 배경이라는 이유로 같은 사극이라 부를 수 있을까. 예종(이선균)과 사관 윤이서(안재홍)가 콤비를 이뤄 사건을 해결하는 ‘임금님의 사건수첩’은 역사적 사실은 그다지 중요하지 않은 이른바 팩션(Faction)이자 퓨전 사극이며, 여러 장르의 요소를 결합한 영화다. 반면 ‘대립군’은 조선 시대에 남의 군역을 대신하며 먹고살았던 대립군이 임진왜란 시기 세자였던 광해(여진구)를 호위한다는 내용이다. 이 영화에선 역사적 사실이 매우 중요하다. 전란 시기 조선 왕실과 당시 민중의 현실 같은 요소가 이야기의 중심을 이루기 때문이다.

역사 블록버스터의 시대다. 주로 조선 시대를 배경으로 하는 사극이나, 일제 강점기 혹은 해방 이후의 시기를 다룬 시대극은 현재 한국 상업영화의 중심부다. 멀리 갈 필요 없다. 올여름, 제작비가 가장 많이 들어간 한국영화 두 편 ‘군함도’(순제작비 220억원)와 ‘택시운전사’(순제작비 120억원) 모두 역사를 다룬다. 최근 3~4년 동안, 더 명확히 말하면 ‘명량’(2014, 김한민 감독, 순제작비 150억원) 이후 ‘역사’는 한국영화의 키워드가 됐다.

'박열'

‘박열’(6월 28일 개봉, 이준익 감독)과 ‘군함도’는 어떤가. 일제 강점기를 배경으로 하는 두 영화는, 시대적 배경만 빼면 공통점이 거의 없다. ‘박열’은 철저히 박열(이제훈)과 가네코 후미코(최희서)라는 인물에 초점을 맞추고, ‘군함도’는 ‘지옥섬’이라 불렸던 하시마라는 공간과 그 안의 인간 군상과 스펙터클에 무게를 싣는다. 전자가 역사적 사실에 충실하다면, 후자는 상상력이 많이 들어간 이야기다.

마지막 예는 ‘택시운전사’와 ‘보통사람’(3월 23일 개봉, 김봉한 감독)이다. 두 영화 모두 1980년대 한국 현대사의 한 시기를 다룬다. ‘택시운전사’는 1980년 광주민주화운동, 그 진실을 알리기 위해 목숨을 걸었던 사람들의 이야기다. ‘보통사람’은 1987년 4·13 호헌 조치, 그러니까 당시 대통령이었던 전두환이 민주화 요구를 묵살하고 군사 독재를 유지하기 위해 개헌 논의를 금지했던 선언 즈음이 배경이다. 영화는 당시 안기부의 공작 정치와 이에 휘말리는 형사 성진(손현주)의 이야기를 다룬다.

공교롭게도 두 영화는 전두환 정권의 등장 직전과 퇴진 직전의 중요한 역사적 시기를 다룬다. 그러면서 군부의 폭력에 맞선 평범한 사람들의 이야기라는 공통점을 지닌다. 다른 점은 소재의 성격이다. ‘택시운전사’는 당시 광주의 참상을 카메라에 담았던 독일(당시 서독)의 언론인 위르겐 힌츠페터(1937~2016)의 실화가 소재다. 반면 ‘보통사람’은 당시 있을 법한 인물들, 즉 검사 출신의 안기부 엘리트(장혁)와, 여론몰이 조작 사건을 담당하는 형사, 진실을 밝히려는 기자(김상호)를 통해 구성된다. 실제 있었던 일은 아니지만, 실화로 볼 수 있을 정도로 ‘충분히 개연성 있는 픽션’인 셈이다.

역사영화와 사실의 취사선택

조선 시대와 일제 강점기와 한국 현대사를 다룬 영화 세 쌍을 비교하는 과정에서 수면 위로 떠오르는 가장 중요한 키워드는 ‘사실’이다. 요즘 유행하는 ‘이거 실화냐’라는 표현처럼, 역사를 다룬 영화에서 관객이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것은, 과거에 일어난 일을 얼마나 있는 그대로 담아냈느냐의 문제다.

이건 아이러니다. 사료나 기록 필름이나 재연 화면 등으로 구성되는 역사 다큐멘터리가 아닌 이상, 영화가 역사를 사실적으로 담아내는 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영화는 픽션이며, 여기엔 각색(역사적 사실에 대한 변형)과 창작(존재하지 않았던 일에 대한 첨가)이 반드시 개입한다.

‘택시운전사’의 경우를 보자. 사실 당시 광주엔 힌츠페터 말고도, 녹음 담당 기사인 헤닝 루모어라는 사람이 있었다. 하지만 영화는 이 인물을 등장시키지 않는다. 힌츠페터(토마스 크레취만)와, 그를 광주에 데려다 준 서울 택시 기사 김만섭(송강호)의 관계를 부각하기 위해 생략한 것이다. 역사영화에선 이런 디테일이 종종 생략되곤 한다.

그렇다면 영화와 역사는 어떤 관계에 놓이는가. 여기서 프랑스의 역사학자 마르크 페로가 큰 도움이 된다. 그는 『역사와 영화』(까치)라는 책에서 이렇게 말한다. “감독들은 예증에 필요한 사실과 특징들은 역사에서 취하고 필요하지 않은 것들은 버리지만, 왜 그런 선택을 했는지 합리화하고 정당화할 필요는 느끼지 않는다. 그는 스스로 만족을 느끼고, 또 그의 신념을 공유하는 사람들, 즉 관객에게 만족을 준다. 그렇게 감독을 옹호하는 대의가 널리 공유된다면 감독의 위신만이 아니라 비즈니스 면에서도 역시 이득이 된다. 그러나 그런 것이 꼭 역사적인 분석, 다시 말해 역사 현상들의 이해에도 유익한 것은 아니다.”

'명량'

'명량'

쉽게 말하면, 감독은 자신의 관점에서 취사선택을 한다. ‘박열’의 이준익 감독처럼 역사적 기록에서 많은 부분을 가져오는 경우가 있다. 류승완 감독은 ‘군함도’의 도입부에 “실제 역사적 사건에서 영감을 받아 창작되었다”고 밝혔다. 이런 취사선택의 기준은 관객의 호응, 즉 대중의 공감이다. 이를 좀 더 노골적으로 표현하면 흥행성이다. 영화는 엔터테인먼트이지 역사 교육용 영상이 아니다.

게다가 역사영화는 많은 자본을 필요로 한다. 물론 상업영화가 대중의 역사적 이해에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경우도 많다. 우린 ‘동주’(2016, 이준익 감독)를 통해 송몽규(1917~45)라는 인물을 알게 되었으며, ‘밀정’(2016, 김지운 감독)을 통해 황옥(1885~?)이라는 인물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하지만 이것은 결과이지 목적은 아니다.

여기서 일제 강점기를 다룬 영화들을 살펴보는 건 역사와 영화의 관계를 살피는 데 꽤 유용하다. 한국영화가 이 시대에 관심을 가진 게 최근 일은 아니다. 2007~2009년에 첫 번째 붐이 일었다. ‘기담’(2007, 정식·정범식 감독)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2008, 김지운 감독) ‘원스 어폰 어 타임’(2008, 정용기 감독) ‘라듸오 데이즈’(2008, 하기호 감독) ‘모던 보이’(2008, 정지우 감독) ‘다찌마와 리-악인이여 지옥행 급행열차를 타라!’(2008, 류승완 감독) ‘그림자 살인’(2009, 박대민 감독) 등의 영화가 갑자기 쏟아졌다. 이들은 역사를 배경으로 이용한 장르영화였다. 호러·액션·코미디·스릴러·멜로드라마 등을 펼치는 이국적 시공간으로서 (김지운과 류승완 감독은 대륙으로 가긴 하지만) 식민지 조선을 선택한 셈이다.

최근 2015년부터 시작된 두 번째 물결은 조금 다르다. ‘경성학교 : 사라진 소녀들’(2015, 이해영 감독)을 시작으로 ‘대호’(2015, 박훈정 감독) ‘암살’(2015, 최동훈 감독) ‘귀향’(2016, 조정래 감독) ‘해어화’(2016, 박흥식 감독) ‘아가씨’(2016, 박찬욱 감독) ‘덕혜옹주’(2016, 허진호 감독) ‘동주’ ‘밀정’ ‘눈길’(3월 1일 개봉, 이나정 감독) 그리고 ‘박열’과 ‘군함도’로 이어지는 영화들은 역사적 사실에 좀 더 집중한다. ‘아가씨’처럼 외국 소설을 이 시대에 접합한 영화도 있지만, 임시 정부·독립운동·위안부·징용·생체 실험·관동 대지진(1923) 같은 역사적 이슈를 전면에 내세우는 것이다.

이런 변화는 왜 생긴 것일까. 관객이 이런 이야기를 원하기 때문이다. 역사영화는 대중이 역사에 대해 원하는 것을 담아낸다. 2000년대의 일제 강점기 영화가 이국적이며 장르적인, 관객의 도피주의적 요구를 충족시켰다면, 2010년대의 관객들은 역사와 직접적으로 대면하기를 원했고 영화는 그러한 소재들을 스크린 위에서 구현하고 있다.


왜 지금 그 역사를 불러오는가

'택시운전사'

결국 역사에 대한 영화를 이야기할 때 가장 중요한 건 ‘타이밍’이다. 이것은 철저한 기획에 의해 이뤄지기도 하지만, 종종 집단 무의식의 산물처럼 다가오기도 한다. ‘1000만 영화’들을 예로 들어보자. 왜 2012년 대선 정국에서 ‘광해, 왕이 된 남자’(2012, 추창민 감독, 1232만 명)가 그토록 많은 사랑을 받았을까. ‘변호인’(2013, 양우석 감독, 1137만 명) ‘명량’(1761만 명)과 ‘국제시장’(2014, 윤제균 감독, 1426만 명) ‘암살’(1270만 명)은 어떤 이유로 그토록 많은 관객을 극장으로 끌어들였을까. 이상적인 지도자에 대한 갈망, 민주주의에 대한 열망, 반일 감정의 영화적 표현, 전쟁 이후 한국 현대사에 대한 보수적 시선, 친일 세력에 대한 응징 등 표면적 이유들을 들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분석 이전에 더 중요한 건, 왜 그 시기에 그 과거가 소환되었는가의 문제다.

이 질문은 역사영화를 과거에 묶어 두지 않고 현재로 끌어들인다. 변영주 감독의 다큐멘터리 ‘낮은 목소리-아시아에서 여성으로 산다는 것’(1995) 이후 한국영화가 거의 다루지 않았던 위안부 문제는 20여 년이 흐른 뒤 ‘귀향’과 ‘눈길’을 통해 소환됐다(더욱 흥미로운 건 두 영화 모두 과거와 현재를 오가는 구조라는 점이다). 이 영화들은 역사를 다루지만 분명 ‘현재의 영화’들이다. 일본과의 관계가 악화 일로로 치닫는 시점에 ‘명량’ ‘암살’ ‘밀정’ ‘박열’이 등장했다. 이것은 영화로 재현된 과거를 통해 현실을 극복하려는 의지다. 이 영화들에서 우린 왜군을 몰살시키고, 친일파를 처단하고, 총독부에 폭탄을 터뜨리고, 극단적으로 저항한다.

이 과정엔 이른바 ‘국뽕’의 위험이 도사리고 있다. 선악 구도로 ‘우리 편’과 ‘나쁜 놈’을 명확히 나누고, 민족주의에 입각해 이외의 역사적 디테일을 모두 증발하는 방식은 한편으론 대중 영합적인 흥행 전략이지만 궁극적으로는 역사의 단순화를 통해 심하면 왜곡으로 이어진다. 여기서 이준익 감독의 영화는 주목할 만하다. ‘동주’나 ‘박열’ 같은 영화는, 접근 방식에 따라 ‘국뽕’으로 치달을 수 있는 소재를 다룬다. 하지만 이 영화들은 고문 받는 조선인과 가해자 일본인의 구도를 넘어선다.

그의 영화에는 항상 논쟁이 있다. ‘동주’의 윤동주(강하늘)와 송몽규(박정민)는 일본인 고등형사(김인우)와, ‘박열’의 박열은 일본인 검사(김준한)와 끊임없이 논쟁을 벌인다. 이것은 역사적으로 두 나라 사이에 어떤 입장과 논리가 충돌했는지를 영화적으로 재현하는 전략이며(‘동주’와 ‘박열’뿐 아니라, ‘황산벌’(2003)부터 ‘사도’(2015)까지 모든 이준익 감독 사극의 중심에는 논쟁이 있다), 관객에게 역사를 입체적으로 접근시키는 방식이기도 하다. 하지만 여기서 주의할 것이 있다! 역사를 다룰 때 신파적 감정이나 ‘국뽕’보다 더 큰 유혹이 있다. 그것은 바로 장르화와 스펙터클의 문제다.


역사영화의 스펙터클, 그 아슬아슬한 줄타기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

최근 한국에서 사극과 시대극 장르가 번성하게 된 가장 직접적인 이유는 1년에 100억 원 이상의 대작이 여러 편 나올 수 있는 자본의 축적과 기술적 발전을 들 수 있다. 이런 조건은 과거엔 감히 상상하지 못했던 역사적 소재의 영화를 가능하게 만들며, ‘태극기 휘날리며’와 ‘국제시장’을 거쳐 ‘군함도’까지 이어지는, 르네상스 시기 한국영화의 성과이기도 하다.

규모가 커지면 영화는 자연스레 클리셰와 장르의 세계로 접어든다. 만약 ‘군함도’가 쓴소리를 들어야 한다면 이런 측면일 것이다. 이 영화에 대한 갑론을박이 있다. 이것은 평자의 관점과 그들이 보유하고 있는 사료의 범위와 가치관에 따른 것이지 절대적 진리는 아니다. 이 영화가 역사적 사실을 왜곡했다는 지적도 있지만, 큰 흐름에서 볼 때 치명적인 실수를 저질렀다고 여겨지진 않는다.

중요한 건 이 영화가 역사를 지나치게 장르화하고 있다는 점이다. ‘군함도 탈출’이라는 서사를 위해 영화엔 광복군 박무영(송중기)라는 인물이 필요하게 되었다. 그가 침투하는 근거를 만들기 위해 독립군의 자금책이었던 윤학철(이경영)이 등장했으며, 극적 긴장감을 위해 그는 배신자로 설정되었다. 액션 신을 이끌기 위해선 종로 최고의 주먹 최칠성(소지섭)이 등장하고, 위안부로 끌려온 오말년(이정현)은 그와 로맨스 라인을 형성한다. 이강옥(황정민)과 이소희(김수안)는 혈연의 정을 통해 애절한 감정을 만들어 낸다. 이런 과잉된 장르 요소는 ‘군함도’가 역사영화로서 지니는 의미를 퇴색시킨다.

언젠가부터 한국영화는 과거를 끊임없이 소환시켜 스펙터클로 만들고 있다. 프로덕션 디자인과 컴퓨터그래픽의 비약적 발전은 그 토대이며, 역사 소재의 영화는 어느새 가장 강력한 트렌드가 되었다. 하지만 역사를 ‘영화적 현재’로 불러들이는 건 아슬아슬한 줄타기 같은 작업이다. 현재의 관객들이 역사에 대해 지니는 욕망과, 영화를 만드는 입장에서 견지해야 하는 역사적 진실에 대한 관점은, 언제나 충돌한다. 여기에 자본의 압력도 상당하다. 이런 상황에서 ‘영화적 재미’를 만들어 낸다는 건 결코 쉽지 않다. 영화의 편에 설 것인가, 역사의 편에 설 것인가. 앞으로 등장할 역사영화들이 한 번쯤 생각했으면 하는 문제다.

글=김형석 영화 저널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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