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밀레종의 인신공양 설화는 사실일까?
이른바 인주(人柱)설화, 즉 제방이나 성벽 등을 쌓을 때에 사람을 기둥으로 삼아 아래에 묻으면 무너지지 않는다는 이야기가 항간에 돌았다는 기록은 고려사에도 나오는데, 이번 발굴로 이 설화가 사실일 가능성이 커지는 셈이다.
역시 신라시대에 만들어진 대표적인 문화재인 ‘에밀레종’에도 이와 비슷한 유명한 인신공양 설화가 전혀 내려온다. 종을 만드는 작업이 여러 차례 실패하여 소리가 제대로 나지 않아 모든 사람이 걱정을 하고 있는데, “그 종에 어린아이를 공양해야만 소리가 날 것이다.”라는 어느 노인의 얘기를 듣고 끓는 쇳물에 어린아이를 던진 후에야 종이 완성되었다는 이야기이다.
이 끔찍한 전설은 아마도 20톤이 넘는 거대한 종을 제대로 만들기가 너무도 힘들었을 것이므로 생긴 듯싶은데, 이번 인골 발견으로 단순한 우연이나 터무니없이 꾸며낸 이야기가 아닐 수도 있는 셈이다.
에밀레종이라는 별칭은 이 종의 여운(餘韻) 때문에 붙여진 것이고, 정식 명칭은 성덕대왕신종(聖德大王神鐘; 국보 제29호)으로서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범종이다. 성덕왕의 아들인 경덕왕이 부왕의 명복을 빌기 위하여 만들기 시작했으나 뜻을 이루지 못하였고, 다시 경덕왕의 아들인 혜공왕 대에 이르러서야 종이 완성되었으니 거의 20년이 걸린 셈이다.
커다란 종을 만드는 것은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는 외국의 사례를 보아도 잘 알 수 있다. 러시아 모스크바의 크렘린 궁에 있는 종은 200톤이나 되는 세계에서 제일 큰 종이지만, 제작 과정에서 한 쪽이 깨지면서 한 번도 쳐보지도 못하고 그냥 깨진 채로 전시되어 있다. 미국 필라델피아의 자유의 종 역시 깨친 채로 관광객들을 맞고 있다.
그에 비하면 에밀레종은 1,200년 이상을 끄떡없이 견뎌왔을 뿐 아니라, 종소리 역시 비교하기 어려울 정도로 빼어난 수준을 자랑한다. 특히 에밀레종 소리의 여운(餘韻)은 유난히 길고도 아름다운 것으로 유명한데, 그 소리가 ‘에밀레- 에밀레-’ 하면서 마치 인신공양에 희생된 어린아이가 어미를 탓하며 우는 소리 같다는 것이다. 끊어질 듯 작아지다가 다시 은은하게 이어지는 저음 역의 여운이 3분까지도 반복적으로 지속되는데, 이 역시 다른 범종들은 따라가기 힘든 수준이다.
그렇다면 과연 에밀레종의 인신공양 전설이 사실일 가능성이 있을까? 이는 종의 성분을 정밀히 조사해서, 사람의 뼈에 들어 있는 인(燐; P) 성분이 나오는지 여부로서 확인할 수도 있을 것이다. 인 성분은 합금을 만들 때 합성을 용이하게 하는 작용이 있어서, 청동불상이나 쇠붙이로 된 다른 문화재 등에도 인 성분이 포함되어 있다고도 한다.
약 40여년 전 국내 한 연구기관의 보고에 따르면, 에밀레종에서 어린아이의 유체 분량 정도에 해당하는 인이 검출되었다고 발표한 바 있다. 그러나 1998년에 다른 연구기관이 에밀레종의 여러 부분에서 시료를 채취하여 극미량 원소분석기로 분석해 보았지만, 인 성분은 전혀 검출되지 않았다고 한다.
그렇지만 에밀레종에서 인 성분이 검출되지 않았다고 해서 인신공양 전설이 완전 허구라고 단언하기는 어렵다. 용융 상태의 구리물에 인골이 들어가면 분해된 유체가 위로 뜰 것이므로, 제조 과정에서 불순물을 제거하면서 없어질 수도 있기 때문이다.
설화의 사실 여부에 관계없이, 첨단의 현대과학기술로도 에밀레종 특유의 은은한 종소리는 재현해 내지 못하고 있다. 해마다 연말이면 제야의 종을 치는 서울의 보신각종이 에밀레종을 본떠서 현대에 다시 만든 것이지만, 그 종소리는 에밀레종의 신비한 소리에 크게 미치지 못한다.
현대 과학기술은 에밀레종의 물리적, 공학적 특성 등을 밝혀내는 것은 가능하지만, 에밀레종을 그대로 복제하여 그 신비의 종소리를 재현하는 데에는 아직 역부족인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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