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UC버클리 캠퍼스에는 여우 다람쥐가 수 십 마리 산다. 다람쥐들은 넓은 캠퍼스의 숲속을 누비면서 먹이를 찾고, 사람들이 먹이를 주면 재빨리 가져다가 자기들만의 저장고에 숨겨놓는다.
그런데 다람쥐는 과연 먹이를 어떻게 저장할까? 무슨 패턴이나 질서가 있을까?
오래동안 록 그룹에서 베이스 기타를 연주하다 동물행동 연구를 시작한 미켈 델가도(Mikel Delgado)는 캠퍼스를 돌아다니는 이 여우다람쥐를 본격적으로 연구했다.
그랬더니 아주 재미있는 특성이 나타났다. 여우다람쥐는 그들이 먹는 도토리를 종류별로, 품질별로 그리고 좋아하는 종류별로 다양하게 나눠 저장하는 것이었다.
로열 소사이어티 오픈 사이언스(Royal Society Open Science) 저널에 발표한 논문에서 연구팀은 다람쥐들이 ‘청킹’(chunking)이라는 인지방법을 이용해서 자신들의 노획물을 정리정돈한다는 최초의 증거를 발견했다고 발표했다.
청킹은 사람이나 동물이 공간적, 언어적, 수적 혹은 다른 정보를 좀 더 의미있는 작은 것으로 조직화하는 인지전략을 말한다. 여기에서 좀 더 의미있는 작은 것은 컴퓨터의 서브 폴더 같은 역할을 한다.
전화번호를 010-53**-02** 같은 식으로 나눠 기억하고, 수 백권의 책을 책장에 꽂을 때 과학책, 소설책, 종교서적 등으로 나눠놓으면 나중에 쉽게 찾는 것과 같은 전략이 일종의 청킹이다.
이같이 정보를 의미 있게 연결시키거나 묶어 놓으면 단기기억 용량을 확대시키는 효과가 있다.
“이번 연구는 분산저장이라는 청킹을 처음으로 보여주는 것이며, 동시에 다람쥐가 유연한 전략을 사용해서 먹이를 저장한다는 사실을 암시한다”고 주저자인 미켈 델가도 박사후 과정 연구원은 말했다. 델가도는 UC버클리 심리학교수인 루시아 제이콥스(Lucia Jacobs)와 함께 이 연구를 수행했다.
이렇게 세련되게 저장하는 기술은 다람쥐로 하여금 가장 좋은 먹이를 어디에 저장했는지 기억하기 쉽게 만들면서, 동시에 잠재적인 도둑으로부터 먹이를 효과적으로 감출 수 있게 해 준다.
이는 사람들이 식료품을 보관하는 것과 같은 방식의 ‘청킹’을 사용하는 것과 비슷하다. 사람들은 과일은 어느 칸에 넣고 야채는 다른 선반에 넣는다. 사람들은 양파를 찾으려고 주방의 모든 선반을 뒤지지 않는다.
연구팀은 2년 동안 꼬리털이 많이 달린 이 여우다람쥐가 아몬드, 피칸, 헤이즐넛, 호두 등을 UC버클리 캠퍼스의 나무 사이에 흩어서 묻는 것을 관찰했다. 연구팀은 모두 45마리의 암수 여우다람쥐를 대상으로, 어느 열매를 어느 장소에 어느 순서로 넣는지를 추적 조사했다.
예를 들어 한 실험에서 각 다람쥐는 16개의 열매를 2개의 서로 다른 조건에서 제공받았다. 어떤 다람쥐에게는 4종류의 열매를 모듬으로 나눠 모두 16개를 제공했다. 예를 들어 아몬드 다음에 피칸 다음에 헤이즐럿 다음에 호두 같은 식이다. 이에 비해 다른 다람쥐들은 무작위로 16개 열매를 줬다.
휴대용 GPS기기를 가지고 연구팀은 다람쥐의 출발지와 저장지를 추적한 뒤 열매의 종류를 나눠 저장하는 저장장소를 지동 표시했다.
미겔 델가도는 37세까지 록 그룹에서 베이스 기타를 연주하던 뮤지션으로 평소 고양이 등 동물에 깊은 관심을 가지고 있다. UC버클리 캠퍼스는 여우 다람쥐가 많이 서식할 뿐 더러 사람과도 친밀하게 지내기 때문에 다람쥐를 연구하기에 아주 좋은 장소이다.
델가도는 “우리는 다람쥐를 실험실에 가둬놓고 연구하지 않았으며, 다람쥐에게 먹이를 주기 때문에 다람쥐들도 우리를 잘 따랐다”고 말했다.
이를 바탕으로 델가도와 연구원들은 과학재단 지원금을 받아 올해 다람쥐 먹이에 일일이 마이크로 칩을 붙이고 페인트를 칠한 뒤 번호를 매겨 수 십 마리를 대상으로 추적조사를 벌일 수 있었다.
다양한 전자기기의 발전으로 데이터 수집이 용이해짐에 따라 과학자들의 탐구범위는 점차 넓어지고 있다.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