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용시술의 역사를 바꾼 ‘독소’

몇년 전에 이 영화를 처음 봤을 때는 갈피를 잡을 수 없는 내용이라 어이없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감독이 관객들에게 무엇을 말하는지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하지만 몇 년이 지나서 한번 더 영화를 보니, 이상하게 마음에 와 닿습니다. 그 차이는 어디서 생겼을까 곰곰 생각해보니, 그사이에 필자도 늙었다는 것, 거기서 답을 찾았습니다.

주인공 젭 감바르넬라는 예술 평론가로 로마 사교계의 유명 인사입니다. 젊어서 소설 한 권 썼고 이후로는 인생의 별다른 목표 없이 상류 사회의 파티장을 전전하며 살아갑니다. 그러다가 덜컥, 65세 생일을 맞으며 영화는 시작됩니다.

영화의 내용을 정리하는 것은 별 의미가 없습니다. 젭이 바라보는 시선을 우리는 조용히 따라가기만 하면 됩니다. 미(美)와 추(醜), 성(聖)과 속(俗), 젊음과 늙음, 과거와 미래, 질서와 혼란… 영화는 수많은 속성들을 극명하게 대비시켜 보여줍니다. 더하여 현란하고, 파격적이고, 기괴하고, 외롭고… 그러한 삶의 단면을 보여 주며 우리에게 진정한 아름다움을 생각하게 합니다.

이 영화의 가장 큰 미덕은 호사스럽도록 화려하고 아름다운 것들의 성찬이라 할 수있습니다. 물론 이상하게도 점점 그것들이 싫증이 나기는 하지만요. 신나는 음악에 맞추어 몸을 흔드는 청춘 남녀들은 노년의 삶을 상상조차 할 수 없고, 구석 자리에 모여 앉아 이야기를 나누는 노인들은 스스로를 한없이 추켜세우지만, 사실은 돌아올 수 없는 젊은 날을 그리워합니다. 피할 수 없는 노화에서 벗어나기 위해 몸부림 치는 신세입니다.

하지만 가만히 앉아 늙어가는 것에 항복할 수는 없지요. 쭈글거리는 피부 정도는 아주 간단하게 해결할 수 있습니다. 바로 보툴니눔 독소 주사가 있으니까요.

영화는 ‘보툴리눔 독소 주사 파티’ 장면을 보여줍니다. 주사를 맞을 사람들이 모이면 의사가 현장으로 나가서 한 사람씩 돌아가며 시술을 해주는 것이지요. 영화에 등장하는 의사는 아주 그로테스크합니다. 현란한 말솜씨와 기술을 선보이면서 환자, 아니 고객들에게 날렵하게 주사를 놓아주고 현장에서 엄청난 현금을 챙깁니다.

만약 보툴리눔 독소 주사가 없었다면 부자들은 어떻게 주름을 없앴을까요? 수술밖에 없었답니다. ‘주름제거 = 보툴리눔 독소 주사’라는 공식이 우리 사회에 통용된 지는 이제 20년 정도될까요? 보툴리눔 독소 주사 덕분에 수술은 구시대 유물이 된 지 이미 오랩니다. 보툴리눔 독소가 성형 수술의 역사까지 바꾼 것이지요. 그런데 보툴리눔 독소 주사는 어떻게 미용 시술의 역사를 송두리째 바꾸었을까요?

보툴리눔 독소의 역사는 뜻밖에도 식중독에서 시작합니다. 19세기 초, 이런저런 전쟁으로 유럽이 조용한 날이 없던 시절, 독일의 스투트가르트(Stuttgart)에 식중독이 퍼졌습니다. 당시의 불결한 위생 수준임을 감안하면 식중독이 뭐 특별한 사건은 아니겠지만 이 식중독은 조금 유별났습니다. 병에 걸린 환자들이 배탈이나 설사보다는 신경마비를 일으켰고, 일부는 호흡 마비로 목숨을 일으켰으니까요. 지역의 의사인 케르너(Justinus A. Kerner; 1786~1862)는 이 기괴한 식중독이 ‘상한 소시지’를 먹어 걸린 것으로 확인했습니다(1829년).


케르너 ⓒ 위키백과

66년이 지나서(1895년), 이번에는 벨기에에서 소시지 식중독이 퍼졌습니다. 현장에서 원인을 조사한 미생물학자 에르멩겐(Emile-Pieree van Ermengen; 1851~1931)이 식중독 원인균을 찾아냈는데 일반적인 균이 아니었습니다. 병원균은 공기를 싫어하는(혐기성anaerobic이라 부릅니다) 성질이 있고(공기가 없는 곳에서만 자랍니다), 모양은 길쭉했습니다.

에르멩겐은 자신이 발견한 세균을 ‘바실루스 보툴리누스(Bacillus botulinus)’으로 부릅니다. bacillus 는 막대기 모양의 길쭉한 균(간균; 杆菌)을 일컫고, botulinus 는 라틴어로 소시지입니다. ‘소시지 중독을 일으키는 막대 모양의 균’이란 뜻이지요. 나중에 바실루스 보툴리누스 균이 일으키는 (식)중독을 ‘보툴리즘(botulism)’이라 부릅니다. 균은 나중에  ‘클로스트리디움 보툴리눔(Clostridiumbotulinum)’으로 이름을 바꿉니다. clostridium 은 ‘곤봉 모양의 균’을 뜻합니다. 여기서부터 우리가 기억해야 할 이름 ‘보툴리눔’이 등장합니다.


에르멩겐 ⓒ 위키백과

30년이 지난 1920년대 초가 되면 보툴리눔 균이 만들어 분비하는 ‘보툴리눔 독소(botulinum toxin)의 존재를 확인했고, 이를 분리 정제하게 됩니다. 하지만 아주 드문 균의 별 쓸모 없는 독소로 여겼는지 학자들의 관심을 받지는 못합니다.

1939년에 제 2차 세계대전이 터졌고, 미국은 1941년에 참전합니다. 전쟁을 위해서는 그 어떤 것이라도 전선으로 동원되는 세상이 됩니다. 사람과 물자는 물론이고 각종 화학 약품들도 징발되고, 심지어는 미생물들도 징집 영장(?)을 받습니다. 보툴리눔 균도 예외는 아니었습니다.

보툴리눔 균이 군의 부름을 받은 것은 강력한 독성 때문입니다. 보툴리눔 균의 독소는 이제까지 알려진 독 중에서 가장 강력했으니까요. 이론적으로, 4kg의 독소로 전인류를 독살시킬 수 있었습니다. ‘대량 살상무기’를 찾던 군사 전문가들의 관심을 끌 수 밖에 없었겠지요.

1944년에 미 육군 세균전 연구소의 샨츠(Edward Schantz; 1908~2005)는 극비리에 진행된 연구 끝에 보툴리눔 균을 배양해 독소를 추출합니다. 실용화 단계로 나아가기 위한 테스트를 몇 차례 진행했는데, 결과는 예상 밖이었습니다. 공중에서 독소를 뿌리자 마자 독성은 사라져버렸으니까요. 균이나 독소나 모두 산소 앞에서는 맥을 못추었습니다. 결국 무기화 연구는 포기하고 맙니다. 전쟁이 끝나자 샨츠는 보툴리눔 독소를 포기하지 않고 ‘평화적인 목적’으로 쓰기 위해 백방의 노력을 했지만 이 역시 별다른 성과를 내지 못하고 다시 잊혀집니다.

1960년대 말에 안과 의사인 스콧(Alan B Scott)이 보툴리눔 독소 주사를 이용해 ‘사시(斜視)’ 환자의 치료에 성공합니다. FDA는 1979년에 보툴리눔 독소를 치료제로 처음 승인합니다. 하지만 안과 의사들이 사용해보니 눈가풀에 저절로 힘이 들어간 눈을 뜰 수가 없는 ‘안검경련’과 한쪽 얼굴이 저절로 찌뿌려지는 ‘안면경축’ 환자들도 보툴리눔 독소 주사의 효과가 아주 좋았습니다.

초창기에 이 주사를 사용했던 안과 의사 중 쟌 캐루더스(Jean Carruthers)가 있었습니다. 그녀는 안면경축을 치료하기 위해 보툴리눔 독소를 환자의 눈 주위와 이마에 주사했는데, 환자들의 증상이 나아지는 것은 물론이고 전체적인 인상도 좋아진다는 느낌을 받습니다. 그녀는 남편에게 그 특이한 경험을 말해줍니다.

 쟌의 남편 알테어 캐루더스(Altair Carruthers)는 피부과 의사로 오래 전부터 주름살을 없애는 시술을 연구했습니다. 쟌의 말을 전해들은 알테어는 병원의 여직원에게 시험적으로 보툴리눔 독소를 주사합니다. 안면경축이나 안검경련도 없는 정상인에게 처음으로 보툴리눔 독소 주사를, 미용 목적으로 놓은 것이지요.

결과는 독자 여러분들도 다 짐작할 수 있을 것입니다. 대성공이었지요! 주름살이 싹 사라졌습니다. 1991년에 캐루더스는 자신의 발견을 세상에 알렸고, 이 때부터는 독자 여러분들도 잘 아는 이야기가 시작됩니다.

쓰면 쓸수록 보툴리눔 독소의 쓸모는 점점 많아졌습니다. 사각 턱을 없애고, 종아리를 날씬하게 만들고, 다한증도 치료하고, 목소리도 좋게 하고, 근경직을 풀고, 요실금이나 빈뇨증 환자에게도 도움을 줍니다. 최근에는 난치성 편두통에서 보툴리눔 독소 주사를 합니다.

그렇다면, 보툴리눔 독소는 어떻게 해서 주름살을 펼까요? 신경의 말단인 시냅스(synapse)에서 신경 정보 전달을 위해 분비되는 아세틸콜린(acetylcholine)의 분비를 보툴리눔 독소가 차단합니다. 만약 주름살(을 만들어주는 근육)에 주사를 하면 근육을 마비시켜 주름을 못 짓게 만드는 것이지요.

보툴리눔 독소 주사 이전에는 주름살을 없애는 방법은 수술이었습니다. 주름진 옷을 펼쳐서 펴는 것처럼 주름진 피부를 쫙 펴기 위해 두피를 절개하는 수술을 했습니다. 그래서 주름살 제거는 성형외과 의사들의 몫이었습니다. 하지만 간편하게 시술하는 보툴리눔 독소 주사의 등장으로 주름살 제거는 피부과 의사들의 손으로 넘어갑니다. 성형외과 의사들의 입장에서는 좀 서운한 일입니다. 하지만 워낙 손쉬운 시술이다 보니, 지금은 피부과나 성형외과를 가리는 것은 별 의미가 없습니다. 시술법만 익히면 누구라도 시술을 해주는 시대가 되었으니까요. 워낙 많은 이들이 부담없이 시술을 받고, 시술 받는 것도 숨기지 않는 분위기라, 우리나라는 단시간에 자발적인 보툴리눔 중독자(?)가 폭발적으로 증가했습니다.

처음에는 연예인들, 나중에는 정치인들은 물론이고 카메라에 얼굴 내미는 모든 직종을 거쳐 지금은 주부들, 학생들까지 손쉽게 보툴리눔 독소 주사를 맞습니다. 제약회사들의 치열한 시장 경쟁 덕분에 시술비가 많이 내려간 것도 큰 이유가 되겠지요.

하지만 한 가지 기억해 둘 점은, 보툴리눔 독소는 신경독입니다. 우리는 간단히 미용목적으로 독 주사를 맞지만, 우리 몸은 이 독을 처리하기 위해 항체까지 만들면서 독성을 무력화 시키기 위해 힘겨운 싸움을 벌인다는 것, 그 정도는 꼭 기억해두시길 바랍니다.


클로스트리디움 보툴리눔 ⓒ 위키백과




공지 있습니다.
개인사정으로 본 사이트는 더이상 업데이트 되지 않습니다.하지만 아래 사이트에서 꾸준히 업데이트 되고 있으니 참고 하세요.

최신 기사는 '정리해 주는 남자' 에서 고화질 사진은 'HD 갤러리' 에서 서비스 되고 있습니다.

md.sj

사건사고 오늘의이슈 주요뉴스 연예정보 상품리뷰 여행 푸드 알쓸신잡 자동차 과학이야기 HD,UHD사진 고화질바탕화면 음악소개 소프트웨어

    이미지 맵

    이전 글

    다음 글

    Economy & Life/알.쓸.신.잡 다른 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