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천 영화] ‘허트 로커’ 이라크 전쟁의 참담한 일면

# 영화 ‘허트 로커’

감독: 캐서린 비글로우
출연: 제레미 레너, 안소니 마키, 브라이언 게라그티, 가이 피어스, 랄프 파인즈
장르: 액션, 스릴러
상영시간: 2시간 10분
개봉: 2010년 4월 22일
관람등급: 15세 이상 관람가


N.E.W 제공

(*아래에는 영화 ‘허트 로커’에 대한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 이라크 전쟁의 참담한 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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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전쟁이 벌어지고 있는 이라크 바그다드. 미군 폭발물 처리반(EOD, Explosive Ordnance Disposal)은 시내 거리를 점령하고 거리에 폭탄이 설치됐는지 원격 조종 로봇으로 체크한다. 마침 거대한 위력을 가진 폭탄 하나를 발견한다. 폭탄을 제거하기 위해 폭약을 안고 가던 로봇이 문제를 일으키자 톰슨 중사(가이 피어스 분)가 직접 방호복을 입고 폭약을 설치하러 간다. 하지만 임무 수행 중 어느 저항군의 원격 조종으로 폭탄이 터지고, 톰슨 중사는 사망한다.

EOD 팀에 새로 부임한 제임스 중사(제레미 레너 분)는 톰슨을 따르던 부하 샌본(안소니 마키 분)의 눈에는 순 미치광이다. 작전 상황에서 엄호 중인 팀원의 교신도 듣지 않고, 오히려 아군에게 연막탄을 치고 유유히 현장으로 들어가 홀로 폭탄을 제거한다. 마치 게임을 즐기듯이. 심지어 다음 작전에서는 UN 건물 앞에 주차돼 있던 현대 차에 실린 수많은 폭탄을 방호복도 없이 맨몸으로 제거한다. 제임스가 팀에 합류한 초반에는 하극상까지도 불사했던 샌본과 엘드리지(브라이언 게라그티 분)는 참혹한 전쟁의 현장에서도 기묘한 여유를 보이는 제임스에게 점차 의지한게 된다.

그러나 EOD 팀은 본국 귀환을 16일 앞두고 벌인 작전에서, 인간 폭탄으로 만들어지다가 죽어버린 이라크인 아이의 시체와 마주한다. 제임스는 그 아이가 축구를 좋아하고 미군에게 포르노가 담긴 DVD를 팔아 돈을 벌던 - 평소 친하게 지내던 - 베컴의 시체라고 생각하고 자제력을 잃는다. 그 여파로 다음 작전에서 팀을 무리하게 이끌어 부하 엘드리지를 다치게 한다. 본국으로 귀환한 제임스는 아내와 아들이 있는 집으로 돌아가지만, 제임스는 일상에 적응하지 못한다. 마약중독자가 다시금 마약에 이끌리듯 제임스는 또다시 전쟁터로 되돌아간다.

# 결코 빠져나갈 수 없는 미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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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는 7년간 지속된 이라크 전쟁을 배경으로 한다. 다소 생소할 수 있는 EOD 팀의 작전을 중심으로 극이 진행되는데, 이야기의 패턴은 비교적 단순하다. 바그다드에 주둔하고 있는 EOD 팀은 이라크 저항군이 설치한 폭탄을 발견하고, 제거한다. 예측불가능한 위험에서 아군을 보호하기 위함이다. 그리고 다음 작전에서 같은 일을 반복한다. 그 사이 하나 둘씩 죽거나 다친다. 물론 미군 사상자가 한 명 두 명 나타날 때, 이라크인은 수십 명씩 쓰러져 나간다.

미군 EOD 팀의 시각에서 도대체 어디에, 얼마만큼 설치되어 있는지 모를 폭탄을 찾고 해체하는 일은 ‘사막에서 모래알 찾기’처럼 지난하고 막막하다. 또한 창문 너머 그들을 바라보는 주변인들은 저항 세력인지, 민간인인지 알 수 없어 경계를 늦출 수 없다. 이렇듯 내내 비슷하게 반복되는 시퀀스 안에서 EOD 팀은 점점 지치고 미쳐간다.

게다가 폭탄을 해체하면 해체할수록, 그에 대한 반작용으로 폭탄을 해체하는 과정도 복잡해지고 어려워진다. 마치 사방이 벽으로 둘러싸여 결코 빠져나갈 수 없는 미로 같다. EOD 팀을 포함한 미군에게 전쟁터는 벗어날 수 없는 감옥이자 지옥이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서 제임스 중사도 풀지 못하는 ‘난제’에 이르면, 이 영화가 6-70년대의 베트남 전쟁에 이어 다시 한 번 명분도, 출구도 없는 전쟁이라는 자충수를 두고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미국에 대한 은유로 느껴지기도 한다. 이라크 침공을 비롯한 미국과 유럽 국가의 제국주의적 행태는 ‘IS’라는 더 지독하고 악랄한 부메랑으로 되돌아왔다.


영화 ‘허트 로커’로 제82회 아카데미 시상식 작품상과 감독상을 수상한 캐서린 비글로우 감독(왼쪽) - N.E.W 제공

영화는 또한 거의 다큐멘터리로 보일 정도로, 모든 장면을 최대한 사실적으로 묘사한다. 핸드헬드 촬영, 현장의 긴박함을 그대로 보여주는 듯한 불규칙한 줌과 다급한 편집 리듬을 보여준다. 영화의 감독인 캐서린 비글로우는 맥스무비와의 인터뷰에서 “최대한 사실에 가깝게 영화를 만들고 싶었다. 나의 의도는 관객들을 군인들의 군화에 넣고, 험비(미국이 개발한 고기동성 다목적 4륜 장갑 차량)에 태우는 것이었다” 고 밝히기도 했다. 덕분에 일부 평론가들은 이 영화의 감독을 히치콕에 빗댈 정도로 영화의 서스펜스가 남다르다.

# 관객과 전쟁터 사이, 좁혀진 간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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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이 영화는 픽션이다. 따라서 이 영화를 보는 관객들도 영화의 긴박감과 스릴을 오락적으로 즐길 수도 있다. 하지만 이라크 전쟁은 이미 벌어졌고,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사상자를 냈다. 때문에 “정글이 불바다가 되는 것과 당신(관객)이 사는 종로 일대가 네이팜탄의 폭격으로 쑥대밭이 되는 것 사이에 무슨 차이가 있느냐고 물어보고 싶어진다” 며 할리우드 전쟁 영화의 오락적인 측면과 이를 스포츠 중계처럼 관람하는 관객의 태도를 꼬집은 정성일 평론가의 말은 과격하게 들릴지 몰라도 충분히 숙고해 볼 만하다. 이 영화는 바로 그 점에서 전쟁을 다루는 기존 영화들보다 더 높은 현장감과 이라크 전쟁에 대한 자성적 태도 때문에, 스크린 너머로 영화를 보는 관객과 영화 속 이라크(실제 촬영지는 요르단이지만)의 거리를 가능한 한 가깝게 만든다.

영화 속에서 또 하나 주목해 볼 만한 것은 이라크 사람들의 시선이다. 미군에 의해 “테러리스트” 라 불리는 저항 세력뿐 아니라, 영화에는 민간인(으로 추정되는 사람들)이 다수 등장한다. 하지만 앞서 말했듯, 미군의 작전 현장에서 저항 세력과 민간인의 구분은 너무나 어렵다. 마지막 장면은 그러한 고통에 정점을 찍는다. 광장 한복판에서 온몸에 폭탄을 두르고 나타나서는, 미군에게 제발 이 수많은 폭탄을 제거해달라고 절박하게 외치는 이라크인은 테러리스트인가, 아닌가?

영화 후반의 또 다른 장면. 베컴을 닮은 이라크인 아이를 처참하게 죽게 만든 데에 대한 분노로 이성을 잃은 제임스 중사는 이라크인들의 밀집 지역을 홀로 찾아간다. 하지만 아이의 집(으로 추정되는 곳)에 침입했다가 거주자의 거센 반항에 쫓겨나 이라크 사람들로 가득한 거리를 거닐면서 숨막힐 듯한 공포를 느낀다. 그리고 미군 기지 입구로 돌아온 제임스는 잠깐 동안 자신을 테러리스트로 의심한 동료들에게 거친 검문을 받는다. 무장한 미군 다수가 소수의 이라크인들을 포위하고 거칠게 심문하던 초반 시퀀스와 정확히 반대되는 시점이다. 카메라는 제임스의 ‘일탈’을 따라가 관객들이 미군과 이라크인의 역전된 관계를 체험하게 한다. 이라크 저항세력이 미군에게는 ‘테러리스트’라면, 이라크 사람들에게 미군은 어떤 존재인가?

# “전쟁도 불사하겠다”는 기만


영화의 오프닝에 인용된 뉴욕타임스 특파원 ‘크리스 헤지스’의 글 - N.E.W 제공

영화 속에 비춰진 바그다드의 거리에는 다리를 잃은 길고양이가 심심치 않게 보인다. 사람도 마찬가지다. 폭격과 폭발이 끊이지 않고, 군인, 저항세력, 그리고 아이와 노약자를 포함한 민간인 가릴 것 없이 사상자가 속출한다. 작가 조해진은 단편소설 ‘빛의 호위’에서 “전쟁이 없었다면 당신이나 나만큼만 울었을 평범한 사람들이 전쟁 그 자체” 라고 썼다. 극중 제임스 중사의 대사처럼 그들의 “죽음을 책임질 인간들” 은 과연 누구인가.

2004년 이라크를 배경으로 한 영화에서 2017년 한국의 현실로 돌아오면, 시간이 갈수록 남북관계와 국제관계는 최악으로 치닫고 있다. 북한은 핵실험을 계속하고, 각국은 각자 다른 방식으로 대응하며 자국의 위치를 계산한다. 그 속에서 “전쟁이라도 불사하겠다” 고 선언하는 자들이 있다.

먼저 핵실험을 자행한 북한의 김정은이 그런 맥락의 발언을 하리라는 것은 충분히 예상가능하고 전례도 있다. 또한 미국 공화당 상원의원의 말에 따르면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지난 8월, “북한의 핵과 장거리 미사일 개발을 내버려 두느니 북한과 전쟁을 하겠다” 는 취지의 발언을 했다. 그리고 유사한 발언의 진원지는 내부에서도 발견된다. 제1야당인 자유한국당은 9월 4일 발표한 논평에서 “대화를 통한 평화는 구걸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전쟁불사의 의지가 있을 때에만 얻어낼 수 있을 것” 이라고 말했다.

8월, 트럼프 대통령은 덧붙여 “수천 명이 죽더라도 거기(한반도)에서 죽는 것이지 여기(미국)서 죽는 게 아니다” 고 말했다고 한다. 평소 과격한 화법을 구사하는 트럼프 대통령이라서 할 수 있는 말이기도 하지만, 역사 속에서 미국은 그 말에 대응하는 ‘전례’가 있다. 60~70년대 베트남에서, 90년대 이라크에서, 2000년대 아프가니스탄과 또 한 번 이라크에서. 심지어 우리나라는 이미 회복할 수 없는 전쟁의 상흔을 가지고 있다. 전쟁으로 인해 또다시 우리나라가 큰 고통을 받지 않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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