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택시운전사’는 송강호가 연기하는 만섭이 ‘단발머리’를 흥얼거리며 택시를 모는 장면으로 시작된다. 신나게 서울 시내를 누비던 그는 데모 행렬과 마주치자 인상을 찌푸리며 노련하게 차를 돌린다. “저것들은 데모하려고 대학 갔나. 싹 잡아다가 사우디에 보내서 고생 좀 시켜야 해. 그래야 우리나라가 얼마나 살기 좋은 나라인지 알지”라는 대사처럼, 만섭은 1980년대는 물론 2017년에도 존재할 법한 어떤 기성세대의 모습이다.
그러나 ‘단발머리’를 부르던 만섭은 영화의 클라이막스에서 ‘제 3한강교’를 부르며 흐느낀다. 그 사이 시위를 폄하하던 택시운전사는 광주의 현실을 목격하고, 광주를 빠져나가던 차를 돌린다. 두시간 정도의 시간동안 인간의 극적인 변화를 보여주는 사람. 배우가 원래 그런 직업이라고 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택시 운전사’가, 이전의 ‘변호인’이 보여주듯 송강호는 현실에 흔히 있을 것 같은 사람의 얼굴로 그 넓은 변화의 폭을 보여준다. 평범한 택시 운전사가 광주의 비극 속으로 뛰어들고, 그저 돈을 많이 벌고 싶어했던 변호사가 권력의 불의에 정면으로 맞선다. 무엇이 그를 도망치지 않도록 하는가.
송강호는 그 행간을 생각지도 못한 방식으로, 놀랍도록 복합적이게 단 한 순간에 표현해낸다(‘스포츠한국’)”고 말했다. 그는 작은 움직임일지라도 자신이 연기하는 캐릭터가 정말 살아서 할 것 같은 모습을 보여주면서,관객이 캐릭터의 선택을 공감하지 않을 수 없게 만든다. 아들을 죽인 왕 영조를 연기한 영화 ‘사도’에서마저, 그는 단 한 번 뒤주너머 아들에게 자신의 심정을 토로하며 그의 심정을 이해하게 만들었다.
지난 20일 ‘택시운전사’는 천만 관객을 돌파했다. 송강호의 세 번째 천만 관객 영화다. 그 전에는 ‘변호인’과 ‘괴물’이었다. 세 작품 모두 그는 어디서나 있을 것 같은 사람의 모습으로, 영화가 그리는 시대 속에 존재할 것 같은 인간을 표현했다. 관객은 그의 모습에 공감하다, 어느 순간 그가 변화하는 모습까지 받아들이게 된다.
평범한 얼굴로 잊을 수 없는 순간을 만들어내는 연기. 배우가 해야할 일일 수도 있다. 다만, 그 배우들 중에서도 송강호가 가장 잘 하는 것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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