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라스틱을 분해하는 애벌레가 있다고?

지난달 TV를 보다 걱정스런 뉴스를 접했다. 서해의 한 작은 섬 얘기인데 바닷가가 쓰레기로 덮여 주민들이 골치라는 얘기다. 물론 섬 주민들이 버린 쓰레기는 아니고 해류를 따라 중국에서 온 것이라고 한다. 화면을 보니 대부분 플라스틱이다.

사실 해양 쓰레기가 어제 오늘 얘기는 아니다. 매년 1200만 톤의 플라스틱이 바다로 버려지고 있는데 이것들이 5대양을 떠돌며 곳곳에 쓰레기 더미를 만들고 있다. 예를 들어 2년 전 한 해양생물학자가 생태조사차 남태평양의 작은 무인도인 핸더슨섬을 찾았다가 곳곳에 널려있는 쓰레기에 놀라 모아 무게를 달아본 결과 18톤에 이르렀다. 이 섬에서 가장 가까운 도시까지 거리가 5000km가 넘는다는 걸 생각하면 놀라운 일이다. 쓰레기 가운데는 칫솔과 자전거페달, 심지어 섹스장난감까지 있었다.

남태평양의 무인도 헨더슨섬의 해변에는 플라스틱 쓰레기가 널려있다. 아래 왼쪽은 그물이 엉킨 바다거북의 모습이고 오른쪽은 플라스틱 조각을 집으로 쓰려고 하는 소라게의 모습이다. - 미국립과학원회보 제공

플라스틱 제조 누적량은 83억 톤

학술지 ‘사이언스 어드밴시스’ 7월 19일자에는 지금까지 인류가 만든 플라스틱의 양과 현재 상태를 추정한 논문이 실렸다. 미국 산타바바라 캘리포니아대 롤랜드 게이어 교수를 비롯한 공동연구자들은 플라스틱 관련 자료를 분석한 결과 1950년부터 2015년까지 석유 같은 원료로부터 만든 플라스틱의 총량을 83억 톤으로 추정했다. 여기에 재활용으로 만든 플라스틱 6억 톤을 더하면 총 89억 톤에 이른다.

한편 2015년 현재 지구촌에서 쓰이고 있는 플라스틱은 26억 톤에 이른다. 즉 63억 톤은 쓸모가 다했다는 얘기인데 그렇다면 다들 어떻게 됐을까. 이 가운데 6억 톤(9%)은 재활용 사이클을 밟았고 8억 톤(12%)은 소각됐다. 그리고 나머지 49억 톤(79%)은 매립되거나 버려졌다. 바다가 플라스틱 쓰레기로 몸살을 앓고 있는 이유다.

여기까지는 예상하지 못한 사실도 아니었지만 플라스틱 생산량 추이를 보니 좀 충격적이었다. 1950년 세계 플라스틱 생산량은 200만 톤에 불과했지만 65년이 지난 2015년에는 3억 8000만 톤에 이르러 연평균 8.4%의 폭발적인 성장세를 보였다. 이는 경제 성장률의 2.5배에 이르는 수치다. 이런 식으로 가면 2050년에는 누적 생산량이 340억 톤으로 2015년의 네 배에 이를 전망이다.

논문에서 연구자들은 2010년 한 해 동안 배출된 플라스틱 쓰레기를 2억7400만 톤으로 추정했다. 최근 플라스틱 재활용 및 소각 비율이 좀 늘어났지만(각각 18%와 24%) 그래도 58%는 여전히 매립되거나 그냥 버려진다. 따라서 2050년까지 매립되거나 버려질 플라스틱의 누적량이 200억 톤은 되지 않을까.

값싸고 쓸모가 많은 플라스틱이 이처럼 뒤끝이 안 좋은 건 생분해가 거의 되지 않기 때문이다. 자연에는 없는 화학구조로 이뤄져 있다 보니 이를 먹이로 인식해 먹고 소화(분해)할 수 있는 생명체가 별로 없다. 특히 즐겨 쓰이는 플라스틱일수록 더 그렇다.

생산량을 보면 폴리에틸렌(PE)이 전체 플라스틱의 36%를 차지해 1위이고 뒤를 이어 폴리프로필렌(PP, 21%), 폴리비닐클로라이드(PVC, 12%), 페트(PET), 폴리우레탄(PUR), 폴리스티렌(PS) 순인데 포장지 등 주기가 짧은 제품(즉 쓰레기가 많이 나오는)에 쓰이는 삼총사인 PE, PP, PET가 모두 분해 측면에서는 악질이다.

지구촌의 플라스틱은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가는가. 1950년부터 2015년까지 인류는 석유 같은 원료에서 플라스틱 83억 톤을, 재활용을 통해 플라스틱 6억 톤을 만들었다. 2015년 현재 26억 톤이 쓰이고 있고 63억 톤이 쓰레기가 됐다. 이 가운데 6억 톤이 재활용됐고 8억 톤이 소각됐다. 나머지 49억 톤은 매립되거나 버려졌다. (단위 백만 톤) - 사이언스 어드밴시스 제공

먹는 건 확실한데 소화하는지는 아직 불분명

그런데 지난 4월 학술지 ‘커런트 바이올로지’에는 가장 골치인 폴리에틸렌을 분해하는 벌레를 발견했다는 논문이 실려 큰 화제가 됐다. 플라스틱을 분해하는 미생물(주로 박테리아) 얘기는 종종 나오지만 플라스틱을 먹는 벌레가 있다는 사실도 놀라운데다 분해속도도 미생물보다 훨씬 빠르다고 해서 더욱 주목을 받았다.

이 벌레를 발견하게 된 계기도 흥미롭다. 스페인 칸타브리아생물의학생명공학연구소 페데리카 베르토치니 박사는 취미로 양봉을 하는데 하루는 꿀벌부채명나방(학명 Galleria mellonella)의 애벌레가 벌집을 갉아먹는 장면을 목격한다. 이 나방의 영어 이름 ‘왁스 모스(wax moth)’에서 짐작하듯 애벌레는 밀랍(beeswax)을 먹고 자란다. 베르토치니 박사는 애벌레를 잡아 플라스틱봉지에 넣었는데 다음날 보니 구멍이 여러 개 뚫려 있었다.

플라스틱봉지는 대부분 폴리에틸렌으로 만든다. 참고로 우리가 흔히 쓰는 용어인 ‘비닐봉지’는 콩글리시로 영어권 나라에서 ‘vinyl bag’이라고 하면 알아듣지 못하므로 ‘plastic bag’이라고 써야 한다. 원래 ‘비닐’은 특정한 화학구조인 비닐기(vinyl group)를 뜻하는 화학용어인데 어쩌다가 우리나라에서 ‘종이처럼 얇은 플라스틱(plastic film)’을 뜻하는 말이 됐는지는 잘 모르겠다.

아무튼 베르토치니 박사는 꿀벌부채명나방 애벌레가 폴리에틸렌필름을 먹는다는 사실을 재확인했다. 즉 폴리에틸렌봉지에 애벌레 100마리를 넣고 12시간이 지난 뒤 조사한 결과 구멍이 220개나 뚫려 있었고 질량이 92mg 줄었다. 그러나 이 결과만으로는 애벌레가 플라스틱을 분해했다고 말할 수는 없다. 쥐가 나무기둥을 갉듯이 단지 갉아먹었을 뿐 소화하지는 못했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베르토치니 박사는 영국 케임브리지대의 생화학자들과 이를 입증하는 연구를 진행했다. 즉 애벌레를 통째로 갈아(추어탕을 끓일 때 미꾸라지를 갈듯이) 폴리에틸렌필름에 바른 뒤 변화를 관찰했다. 만일 애벌레가 플라스틱을 분해하는 게 맞다면 걸쭉한 애벌레 주스에 분해효소가 있을 것이기 때문에 필름 표면에 어떤 식으로든 변화가 일어난 것이다.

애벌레 주스 처리 전후의 필름 표면의 원자힘현미경 이미지를 비교해 보자 처리 후의 표면이 훨씬 거칠었다. 또 필름 질량도 13%나 줄어들었다. 그리고 적외선분광법으로 분석한 결과 폴리에틸렌이 분해됐을 때 생성된 것으로 추정되는 에틸렌글리콜(ethylene glycol) 분자의 특징적인 피크가 나타났다. 이런 데이터를 바탕으로 연구자들은 애벌레가 폴리에틸렌을 먹고 소화했다고 결론 내렸다. 다만 논문 말미에서 아직 분해 메커니즘은 규명하지 못했다고 밝혔다.

아무튼 이 연구결과가 보도되자 우리나라에서도 큰 화제가 됐다. 추가 연구가 진행해 관련 효소를 찾으면 폴리에틸렌도 생분해 플라스틱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지난 4월 학술지 ‘커런트 바이올로지’에는 폴리에틸렌 플라스틱필름을 먹는 꿀벌부채명나방 애벌레를 보고한 논문이 실려 화제가 됐다. 그러나 최근 독일의 화학자들은 이 애벌레가 플라스틱을 정말로 분해(소화)하는가가 아직 불확실하며 이를 명쾌히 입증할 추가 실험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 Federica Bertocchini, Paolo Bombelli, Christopher Howe 제공

번거롭더라도 확실한 방법 써야

그런데 ‘커런트 바이올로지’ 8월 7일자에는 ‘애벌레가 폴리에틸렌을 생분해한다고?’라는 다소 도발적인 제목의 서신이 실렸다. 독일 요하네스구텐베르크대 유기화학연구소의 화학자들은 서신에서 꿀벌부채명나방 애벌레가 폴리에틸렌을 분해함을 입증한 실험에 결함이 많아 인정할 수 없다는 입장을 밝혔다.

즉 논문의 저자들이 주장하는 분해산물인 에틸렌글리콜의 경우 논문에서 말하는 특징적인 피크 외에 다른 두 곳에서도 피크가 보여야 하는데 그게 안 보인다는 것이다. 아울러 이들은 폴리에틸렌필름에 달걀노른자를 갈아 바르거나 돼지고기를 갈아 발라 일정 시간 둔 뒤 필름 표면을 분석했는데 적외선분광 패턴이 논문의 패턴과 비슷했다며 데이터로 제시했다(필자가 보기에도 그런 것 같다). 논문에서 애벌레 효소의 작용으로 폴리에틸렌이 분해돼 나온 에틸렌글리콜 피크의 실체는 필름에 바른 애벌레 주스를 완전히 닦아내지 않아 남은 찌꺼기에서 온 것이라는 말이다. 

이들은 서신 말미에서 애벌레의 플라스틱 생분해 여부를 제대로 증명하려면 탄소13 동위원소 표지법 실험을 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즉 탄소13이 포함된 폴리에틸렌필름을 만들어 먹인 뒤 애벌레의 체내 또는 배설물에서 탄소13이 포함된 대사물(예를 들어 에틸렌글리콜)이 확인된다면 진짜 플라스틱을 먹는 애벌레란 말이다.

한편 서신에 이어 원 논문 저자들의 답신도 올라와 있는데 물론 이런 주장에 동의하지 않는다는 얘기다. 피크를 보면 뚜렷하지는 않지만 에틸렌글리콜의 특징적인 세 피크가 다 보인다는 것. 그리고 애벌레가 먹는 밀랍의 탄화수소 구조가 폴리에틸렌의 탄화수소와 비슷하기 때문에 분해하는 효소 시스템이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그럼에도 확증을 위해서는 탄소13 동위원소 표지법 같은 좀 더 명쾌한 실험이 필요하다는 데는 동의했다.

문득 2010년 ‘비소박테리아’ 논문 해프닝이 떠오른다. 당시 미항공우주국(NASA)은 정말 놀라운 연구결과를 발표하겠다고 예고했고 며칠 뒤 기자회견에서 DNA이중나선 골격에 인 대신 비소를 이용하는 박테리아를 발견했다고 밝혀 과학계를 충격에 빠뜨렸다. 그러나 오래지 않아 이를 규명한 실험방법에 결함이 많다는 지적과 함께 확실히 증명할 수 있는 다른 방법이 있는데 왜 쓰지 않았는지에 대한 의구심이 높아졌다. 그 뒤 액체크로마토그래피-질량분석기를 써서 이 박테리아가 인 대신 비소를 이용하는 게 아님을 입증한 연구결과가 2012년 ‘사이언스’에 실리면서 지금은 비소박테리아가 해프닝으로 기억되고 있다(그럼에도 ‘사이언스’는 비소박테리아 논문을 철회하지는 않았다).

당시 필자는 비소박테리아 논문을 읽어본 뒤 ‘이건 아닌 것 같다’는 예감이 들었지만 이번 플라스틱 먹는 애벌레 논문은 잘 모르겠다. 부디 탄소13 동위원소 표지법 실험에서도 폴리에틸렌을 분해하는 것으로 결론이 나오고 효소 시스템도 밝혀져 플라스틱 쓰레기 대란을 막는데 조금이라도 도움이 됐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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