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이후의 일상이 우울하다면? 나만의 이야기를 만들어야 할 때
풍요로운 삶을 꿈꾸며, 일과 휴식의 균형을 꿈꾸며, 우리는 여행을 떠난다. 그런데 여행 중에는 삶이 뭔가 살아있는 기분인데, 왜 일상으로 돌아오면 우리는 우울해지는 것일까. 여행과 일상은 필연적으로 분리될 수 밖에 없는 것일까.
하지만 나도, 나를 주변을 둘러싼 사람도 달라지지 않는데, 여행에서 돌아와서 대단한 리프레시나 변화를 맞이할 리는 만무했다. 여행 이후의 우울함은 마치 '월요병'처럼 어김없이 찾아오던 시절이었다. 그 즈음에 남긴 일기를 보다가, 요즘 내게 고민을 털어놓는 이들의 심정과 똑 닮은 구절을 찾았다.
재미있는 일을 하려면 주변에 재미있는 사람이 많아야 한다. 근데 너무 오랜 시간 동안 재미없는 곳에만 있다보니 주변엔 온통 재미없는(근데 본인만 아닌척 '흉내'만 내는) 사람들 투성이다. 내가 '이상해지는' 그룹 말고, 내가 오히려 '평범해지는' 그룹에서 놀면서 자극받고 배우며 살고 싶다. 아직도 현실적인 이유로 재미없는 곳을 기웃거리는 내 이중성이 한심하게 느껴지는 어느 봄날. 그러다 이대로 나이들어서 진짜 재미없어 진다구. - 2011년, 블로그 일기 중에서
직업이 아닌 직장 이름으로 나를 설명하던 때, 내 주위에는 온통 나와 비슷한 삶을 사는 사람들 뿐이었다. 그래서 현재 삶의 형태 외에는 그 외의 대안을 떠올리기도 막연했다. 누군가가 내 삶을 보면서 영감을 받을 리도 없고, 나 역시 주위를 둘러보면서 '아, 저렇게 살 수도 있구나'라며 무릎을 탁 치는 일도 거의 없었다. 여행 이후의 일상이 달라지지 않는 이유 중 하나는, 닮고 싶은 롤모델이 없기 때문이기도 했다.
책 '여행이 나에게 가르쳐준 것들'의 저자 추스잉은 여행 이후가 우울해지는 이유를 이렇게 설명한다.
"어떤 사람들은 여행할때 세상 더 없이 즐거워하다가 자신이 거주하는 곳에 돌아오면 다시 우울해 한다. 그들은 자기만의 이야기가 없는 사람들이다. 그래서 이국적인 풍경으로 '일상'이라는 무미건조한 공간을 요리하려는 것이다."
'여행 이후'가 달라진 시점
작년 말 하와이 취재 중에 만난 관계자 분과의 식사자리가 문득 생각난다. 무척 쾌활한 성격의 그는 자신의 홍보 회사를 운영하면서, 또다른 직업을 갖고 있다. 바로 푸드 라이터(Food writer)인데, 까다로운 미식 취향을 가진 그는 자신의 클라이언트인 호텔과 레스토랑을 홍보하면서, 업무 중에 맛본 음식을 꼼꼼하게 평가하고 소셜미디어에 공유했다. 그렇게 성장한 그의 영향력이, 이제는 왠만한 매체보다 더 크다니 그저 놀라울 뿐이다. (얼마전 전혀 다른 곳에 출장을 갔다가, 기내지에서 그의 사진을 발견하고 깜놀) 미식 분야의 전문가로 알려진 그에게 일을 맡기는 레스토랑이 점점 늘어나는 건 당연하다. 덕업일치의 좋은 본보기를 찾았다고나 할까? 특히 눈여겨 본 지점은, 그의 주변에는 신기할 정도로 흥미로운 사람들이 많았다. 그 '흥미로운 사람들'의 네트워크가, 지역 기반인 그의 사업에 큰 도움을 주고 있음은 물론이다.
직장에선 전혀 알아채지 못했던 재능과 능력이 나의 '직업(일)'을 바꾸면서부터, 서서히 나 역시 고유의 이야기를 갖게 되었다. 직장이 아닌 직업이 생기기 시작한 시점이랄까. 그 이후, 내가 여행에서 얻는 것은 많이 달라졌다. 지금은 일 때문에 전 세계를 다니지만, 자신만의 흥미로운 스토리를 구축한 사람들과 촘촘하게 연결되고 서로 영향을 주고받게 된 것이다. 주변에 내가 닮고 싶은 사람들이 크게 늘어나면서, 새로운 직업적 목표를 갖게 된 것이 불과 몇 달 전이다.
자신의 이야기를 가진 이는 그들만의 특별한 에너지를 발산한다. 또한 그런 에너지를 가진 이들에겐, 좋은 사람들이 자연스레 모여들게 되어 있다. 혹시라도 여행 후의 일상이 지루하게 느껴진다면, 이제는 내 삶의 이야기를 새롭게 만들어야 할 신호탄으로 받아들이면 어떨까.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