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 개보다 잘 맡는 냄새 있다?

사람이 개보다 잘 맡는 냄새 있다?

천변을 산책하다보면 개를 데리고 나온 사람들이 많은데 다들 개가 보행을 주도한다. 잘 걷다가고 개가 어느 지점에서 멈춰 코를 대고 집요하게 뭔가의 냄새를 맡는 것 같은데 주인이 개줄을 당겨 가자고 해도 말을 잘 듣지 않는다. 한참 이러다 오줌을 찔끔 누고서야 자리를 떠나곤 한다.

개의 후각이 워낙 뛰어나니 자기들끼리의 냄새정보를 얻고 남기는 과정 같은데 그 실체에 대해 전혀 감을 잡을 수 없는 사람으로서는 신기하기도 하다. 그런데 문득 이런 생각이 든다. 개가 이처럼 후각이 민감하다면 사람들이 자신의 둔감한 후각에 맞춰 피워대는 일상의 각종 냄새를 어떻게 견디는 것일까.

아무리 좋은 냄새라도 강도가 너무 세면 역겹기 마련인데 그렇다면 우리가 유쾌하게 느끼는 냄새 강도에 개들은 코를 파묻어야하지 않을까.

폴 브로카의 비교해부학 연구에서 편견 시작돼

학술지 ‘사이언스’ 5월 12일자에는 사람의 후각이 형편없다는 건 19세기에 형성된 신화일 뿐이라는 주장을 담은 리뷰논문이 실렸다.

미국 러트거스대 심리학과 존 맥건 교수는 논문에서 사람은 후각이 퇴화된 상태라는 오늘날 과학상식의 ‘원조’가 19세기 프랑스의 저명한 의사 폴 브로카라고 주장했다. 브로카는 두뇌 좌반구 하측 전두엽이 언어의 생성과 표현을 담당한다는 사실을 발견해 유명해졌고 이 부분은 오늘날 ‘브로카 영역’으로 불리고 있다.

19세기 비교해부학자 폴 브로카. 뇌에서 언어를 담당하는 소위 ‘브로카 영역’을 발견해 유명해졌지만 후각의 기능을 과소평가해 후각 연구를 지체하게 한 인물이기도 하다. ⓒ 네이처

브로카는 비교해부학자로서 사람과 여러 동물의 뇌를 관찰하면서 흥미로운 패턴을 발견했는데 그 가운데 하나가 유인원은 전두엽이 발달했고 특히 사람은 더 두드러진다는 사실이다.

그런데 단지 크기의 문제가 아니다. 즉 생쥐의 경우 작은 전두엽은 곧 후각신경구(olfactory bulb)라는 냄새정보를 받는 구조인데 비해 사람의 후각신경구는 커다란 전두엽 속에 박혀 잘 보이지도 않는다. 이를 토대로 브로카는 사람의 경우 후각이 퇴화된 상태라고 해석했다.

1879년 발표한 논문에서 브로카는 포유동물을 후각 의존도에 따라 두 범주로 나눴다. 즉 후각을 주된 감각으로 삼아 살아가는 후각동물(osmatic animal)과 그렇지 않은 비후각동물(nonosmatic animal)로 나눴다. 물론 사람은 유인원과 함께 후자에 속하고 기본 후각구조가 없는 고래류도 비후각동물이다.

진화론도 사람이 후각이 퇴화한 상태라는 주장에 힘을 실어줬다. 즉 영장류가 나무에서 생활하며 시각과 청각에 주로 의존하게 되고 특히 3색 시각 능력을 획득하면서 시각정보가 더 중요해지면서 후각의 필요성이 줄어들어 퇴화했다는 것이다. 사람은 나무에서 내려왔지만 직립보행을 하기 때문에 여전히 후각보다는 시각에 훨씬 더 의존한다.

2000년 인간게놈을 해독하면서 이런 가정에 더 힘이 실렸다. 즉 냄새분자와 결합하는 냄새수용체의 유전자 1000여 개 가운데 실제 작동하는 유전자는 390개 정도이고 나머지 600여 개는 기능을 잃은 위(가짜)유전자로 밝혀졌기 때문이다. 반면 생쥐의 경우 유전자가 1100여 개이고 위유전자는 200여 개에 불과하다. 이는 사람이 맡을 수 있는 냄새분자의 종류가 더 적을 것임을 시사한다.

실제 작동하는 유전자 더 될 수도    

그런데 지난해 11월 학술지 ‘사이언스’에 초파리의 냄새수용체 위유전자에 관한 흥미로운 연구결과가 실렸다. 즉 DNA염기서열만 보면 분명 기능을 못하는 위유전자임에도 멀쩡하게 기능을 하는 단백질(냄새수용체)을 만드는 예가 발견된 것이다. 즉 가짜 가까유전자인 셈이다.

한편 이보다 세 달 앞서 학술지 ‘BMC 유전체학’에는 사람의 후각조직에서 발현하는 유전자의 산물(전사체)을 분석한 논문이 실렸다.

이에 따르면 기능을 하는 냄새수용체 유전자 가운데 90%가 발현을 하고 놀랍게도 위유전자도 60%가 발현을 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따라서 사람의 냄새수용체 위유전자 가운데 상당수가 실제로는 냄새수용체를 만들 가능성이 있다. 즉 사람이 맡을 수 있는 냄새의 스펙트럼이 생쥐보다 훨씬 못한 건 아니라는 말이다.

한편 사람이 모든 냄새에 대해서 쥐나 개에 비해 후각이 둔감한 건 아니라는 사실이 밝혀졌지만 잘 알려져 있지 않다. 세관에서 마약탐지견의 활약을 지켜보면 사람과 개의 후각은 비교불가라는 인상을 받지만 냄새분자에 따라 사람이 더 잘 맡는, 즉 역치가 낮은 경우도 있다.

예를 들어 사람은 바나나 냄새의 주성분인 아밀아세테이트를 개나 토끼보다 더 잘 맡는다는 사실이 이미 1960년대 밝혀졌다. 최근에도 이런 사례가 보고되고 있는데 2012년 학술지 ‘플로스 원’에 실린 논문에서는 지방족카복실산 분자 일곱 가지를 대상으로 사람과 개를 포함한 여러 동물의 역치를 조사한 연구결과가 실렸다. 이에 따르면 이 가운데 두 분자의 경우 사람의 역치가 가장 낮았다.

이듬에 같은 학술지에 실린 논문을 보면 황을 함유한 냄새분자 여섯 가지를 대상으로 사람과 거미원숭이, 생쥐를 대상으로 역치를 조사한 결과가 실렸는데, 네 분자는 생쥐가 가장 민감했지만 두 분자는 사람이 가장 민감했다. 특히 한 분자는 사람이 천 배나 더 민감했다(역치가 1000분의 1 수준).

한편 올해 학술지 ‘지각(perception)’ 3/4월호에 실린 논문을 보면 포유류의 피 성분 가운데 하나인 데세날 계열의 분자에 대해 사람이 생쥐보다 더 민감하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즉 후각의 민감도가 종에 서열이 매겨져 있는 게 아니라 냄새에 따라서는 사람이 개나 쥐보다도 더 민감할 수 있다는 말이다.

사람들의 행동을 관찰하면 손이 자주 얼굴로 가는데 이는 무의식적으로 손의 냄새를 맡는 현상이다. 흥미롭게도 낯선 동성인 사람과 악수를 하고 난 뒤에는 악수한 손을 코 주위로 가져가는 빈도가 올라간다(아래 왼쪽 빨간색 영역). 한편 악수하지 않은 손은 빈도가 내려간다(아래 오른쪽 파란색 영역). ⓒ eLife

악수한 뒤 손에서 냄새 맡아

설사 사람이 생각보다 냄새에 민감하더라도 우리 삶에서 후각의 비중이 크지 않다는 사실은 변함이 없지 않을까. 어쨌든 우리가 행동하는데 후각은 별 영향을 미치는 것 같지 않으므로. 그런데 최근 연구에 따르면 그렇지 않다고 한다. 의식하지는 못하더라도 사람 역시 냄새정보를 통해 특정 행동을 하거나 피한다고 한다. 어떤 사람에게는 끌리고 어떤 사람은 이유 없이 싫은 것도 사실은 그 사람의 체취 때문일 가능성이 높다. 사람마다 체취가 다르기 때문이다.

2015년 학술지 ‘이라이프(eLife)’에 실린 논문에 따르면 사람들은 낯선 사람과 인사를 하며 악수를 할 경우 상대의 성별에 따라 다른 행동을 보인다. 즉 동성인 사람과 악수를 한 뒤 악수한 손의 냄새를 맡는 행동(손을 코에 가까이 대는)을 더 많이 한다. 반면 이성과 악수를 한 뒤에는 악수하지 않은 손의 냄새를 더 많이 맡는다. 이에 대해 연구자들은 동성의 경우 상대에 대한 정보를 더 얻기 위해, 이성의 경우 나의 냄새와 비교하기 위해 그런 무의식적인 행동을 한다고 설명했다.

후각이 둔감해지는 게 치매의 주요한 전조증상이라는 발견도 있다. 우리가 의식하던 못하던 사람 역시 냄새의 세계에서 정보를 주고받아야 건강한 삶을 살 수 있다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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