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속에서 만나는 전염병

영화 속에서 만나는 질병

우리는 살아가는 동안 다양한 질병을 만나게 된다. 대부분의 질병은 병원 치료만 받아도 완쾌돼 생활에 큰 지장이 없다. 하지만 여전히 발병 원인을 알 수 없는 질병과 치료제를 발견하지 못한 질병들이 존재하고 있다.

치료제가 없는 질병은 환자에게 공포 그 자체다. 더군다나 전염병이 번질 때에는 사회 전체가 공포에 빠진다. 인류를 공포에 몰아넣었던 대표적인 전염병으로는 80년대와 90년대 에이즈, 근래에는 메르스가 있다. 역사적으로는 한센 병, 결핵, 천연두, 페스트 등을 꼽을 수 있다.

한센 병, 페스트, 결핵 등은 현재 치료약이 개발되어 완치할 수 있지만, 치료약이 없었던 시절에는 감염을 막기 위해 환자들을 격리시키는 조치가 취해졌다. 그렇기 때문에 역사적으로 전염병 환자들은 치료는 커녕 음지에서 목숨만 연장했을 뿐이었다.

수많은 전염병 중에서 인류를 죽음의 공포에 몰아넣은 전염병을 꼽으라면 단연 페스트다. 흑사병으로 불리는 페스트 병은 페스트균에 의해 발생하는 급성 전염병이다. 페스트균은 숙주 동물인 쥐에 기생하는 벼룩에 의해 사람에게 전파된다. 14세기 중기 전 유럽에서 대유행을 하면서 희생자가 굉장히 많았다.

이런 현실이 명화에는 어떻게 반영되어 있을까. 페스트가 창궐한 도시를 그린 작품이 바로 푸생의 <아슈도드에서 창궐한 전염병>다.

<아슈도드에서 창궐한 전염병>-1630에서 1631년, 캔버스에 유채, 파리 루브르 박물관 소장. ⓒ 박희숙

화면 중앙에 어린아이가 바닥에 쓰러져 있는 여성의 가슴에 손을 올린 채 하늘을 보고 울고 있고, 왼쪽에는 아이가 쓰러져 있는 여성의 얼굴을 보며 누워 있다. 여성의 다리 앞에 서 있는 남자는 상체를 구부린 채 한 손으로는 입을 막고 한 손으로는 울고 있는 아이의 머리를 만지고 있다.

바닥에 쓰러져 있는 여성의 회색빛 몸은 붉은색 옷과 대비되면서 죽은 사람이라는 것을 강조한다. 온 몸이 흑색으로 표현되는 것은 바로 흑사병을 나타낸다.

가슴에 기대어 있는 어린아이는 살아있다는 것을 뜻하며, 왼쪽 바닥에 누워 있는 아이의 회색빛 몸은 흑사병으로 죽은 아이라는 것을 의미한다. 얼굴을 쓰러져 있는 여성에게 향하고 있는 것은 두 사람이 모자지간이라는 것을 암시한다.

여성의 발아래 몸을 굽힌 채 아이의 머리에 손을 얹고 있는 남자는 아이의 아버지이며 여성의 남편이라는 것을 암시한다. 오른쪽 둥근 통에 기대고 앉아 있는 남자의 몸이 검은색에 가까운 것은 그가 죽음을 앞두고 있다는 것을 암시하며, 팔로 얼굴을 괴고 있는 자세는 질병에 자포자기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니콜라 푸생<1594~1665>은 질병에 시달리는 사람, 질병을 피해 도망가는 사람들을 통해 17세기 전염병이 창궐하는 유럽의 현실을 보여주고 있다.

푸생은 전염병을 통해 유럽의 현실을 보여주면서도 개인의 운명에 초점을 맞추기 위해 화면 정면에 죽은 아내와 어린 아이, 그리고 살아 있는 남편과 우는 아이를 그려 넣었다.

벼룩이 감염시킨 쥐에 의해 페스트가 유행했지만, 페스트의 발병 원인을 알 수 없었던 시절에는 벼룩이 행운을 상징하기도 했다.

벼룩을 행운의 상징으로 여기고 있는 작품이 바로 무리요의 <벼룩을 잡는 소년(거지 소년)>이다.

<벼룩을 잡는 소년(거지 소년)>-1650년, 캔버스에 유채, 137*115, 파리 루브르 박물관 소장. ⓒ 박희숙

남루한 옷을 입은 소년이 신발도 신지 않은 채 방안 창가 옆에 앉아 고개를 숙이고 손가락으로 속옷을 잡고 있다. 바닥에는 도자기 물병과 몇 개의 사과가 담겨 있는 바구니가 놓여 있다.

남루한 옷과 신발을 신지 않고 있는 소년은 거지라는 것을 나타내며 손가락으로 속옷을 잡고 있는 것은 벼룩을 잡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소년이 햇빛이 들어오는 창가에 앉아 있는 것은 벼룩을 잘 잡기 위한 행동이라는 것을 나타낸다.

옆에 놓인 도자기 물병은 세비야의 물지게꾼이라는 것을 나타내는데 당시 물지게꾼은 하류층 사람들의 직업 중 하나였다. 기술이 없어도 물지게꾼이 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바구니에 담겨 있는 몇 개의 사과는 소년의 식사라는 것을 나타낸다. 하지만 사과의 색상이 선명하지 못한 것은 싱싱한 과일이 아니라는 것을 암시하며, 홀쭉한 바구니는 풍족하지 못한 식사를 의미한다.

소년이 혼자 벼룩을 잡고 있는 행동은 어머니가 없다는 것을 의미하는데 당시 어머니들이 아이의 벼룩을 잡아 주었으며 벼룩은 좋은 징조라고 여겼다. 당시의 민간 의학에 따르면 해충은 건강하지 않는 몸을 숙주로 삼지 않기 때문에 벼룩이 있다는 것은 아이가 건강하다는 증거로 여겼다.

바르톨로메 에스테반 무리요<1618~1682>의 이 작품에서 소년의 더러운 발이 햇살 밖에 있는 것은 그리스도의 모습을 상징한다. 당시 종교적 견해에 따르면 가난과 유년의 모습은 그리스도의 모습을 상징한다.

소년은 ‘천국은 아이와 같은 믿음을 가진 자들이 가는 곳’을 의미하며 가난은 그리스도를 상징한다. 이 작품에서 소년은 종교적으로는 축복받은 자를 상징하지만, 벼룩을 스스로 잡고 있는 것은 부모의 도움의 손길이 필요한 소년의 현실을 나타낸다.

무리요는 가난한 아이들을 소박하게 표현하고 있는 것으로 유명했는데 이 작품은 사회에서 소외되고 있는 어린 아이들을 묘사한 장르화의 초기작으로 주인공 인물에 초점을 맞추었다. 그의 작품에 등장하는 가난한 어린 아이들은 가족이나 친구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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