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라리아의 역사와 알제리아

말라리아의 역사와 알제리아

알제리아, 하면 무엇이 떠오릅니까? 축구? 잘하지요. 2014년에 브라질에서 열린 FIFA 월드컵에서 16강에 올랐습니다. 하지만 그 외에는…?

땅 넓이로 세계 10위(85%는 사막)인 큰 나라이고 산유국입니다. 프랑스 샹송가수 엔리코 마르시야스의 고향도, 카뮈의 소설 <페스트>의 배경인 오란(Oran)도 모두 알제리아입니다. 정신과 의사로 혁명가로 이름을 날린 프란츠 파농은 알제리아 혁명에 가담했습니다. 말라리아 원충을 처음으로 발견한 곳도 알제리아입니다. 이렇게 보니 알제리아는 의학과도 밀접한 관련이 있는 나라네요. 오늘은 알제리아 혁명을 다룬 영화 <알제리아 전투>를 통해 식민지와 열대의학에 대해 알아볼까요.

지금으로부터 60년 전인 1957년 10월, ‘알제리아’의 수도 ‘알제’에 있는 프랑스 공수부대. 군인들의 고문에 못이긴 저항군 조직원이 마침내 지도자 ‘알리’의 은신처를 털어놓고, 공수부대원은 재빨리 알리의 은신처를 포위합니다. 그리고 투항하면 공정한 재판을 받도록 해주겠다고 회유를 벌입니다. 벽장 속에 숨은 알리는 지난 3년간의 투쟁을 회고합니다.

1954년 알제의 카스바(성채란 의미로 원주민이 거주하는 구(舊)시가를 부르는 말. 우리 식으로 하면 ‘4대문 안’)에서 야바위꾼으로 살던 알리(Ali Ammar; 1930~1957)는 프랑스인을 폭행한 죄로 수감됩니다. 복역 중 독립지사 한 사람이 ‘알제리아 만세!’를 외치며 단두대에서 참수되는 장면을 봅니다. 알리는 출소 후 비밀 결사조직인 ‘알제리아 민족해방전선(FNL)’에 가담해 행동대원이 됩니다.

FNL은 먼저 민족의 정신을 좀먹는 알제리아인들을 숙청하여 카스바의 기강을 바로 세웁니다. 그 다음에 프랑스에 대한 무력 투쟁을 시작하는데 먼저 식민지 경찰을 공격합니다. 그러자 식민지 총독은 보복으로 카스바를 봉쇄하고, 의약품과 병원까지 통제하여 부상당한 조직원들을 색출하려 합니다. 철조망 너머로 고립된 카스바의 풍경은 제2차세계대전 중 나치가 유대인들을 가두어 두었던 ‘게토(ghetto)’를 연상시킵니다. 나치와 맞서 싸웠던 레지스탕스의 정신을 이어받은 그 프랑스가 맞는지 의아스럽습니다.

이 와중에 프랑스 거주민들이 한밤 중에 사제폭탄으로 카스바의 주택을 폭파시켜 많은 알제리아인들이 죽거나 다칩니다. 이 사건은 알제리아 주민들을 자극하여 민간인들마저 격렬시위에 나서고, 가족과 친지를 잃은 알제리아 여성들도 폭탄 바구니를 들고 프랑스인들이 모이는 카페, 살롱, 항공사를 공격합니다. 심각한 민족 갈등으로 알제 사태가 걷잡을 수 없게 되자 프랑스의 정예 공수부대가 프랑스인들의 환영 속에 알제로 진공합니다. 알제리아인들은 7일 간의 총 파업으로 맞섭니다.

원주민이 노동력으로 꾸려지던 도시, 알제는 순식간에 도시 기능이 마비됩니다. 공수부대 사령관은 파업에 가담한 주민들을 적으로 규정하고 카스바로 진입하여 생필품 상점을 약탈하고, 주민들을 불법적으로 체포하여 조직원들을 색출하기 위해 무자비한 고문도 서슴지 않습니다. 이 과정에서 많은 조직원들과 지도자들이 체포되거나 살해됩니다.

결국 지도자들 중 마지막으로 살아남았던 알리마저 프랑스군에 포위되었고, 투항을 거부하고 폭사합니다. 하지만 이것으로 알제리아의 독립 투쟁은 막을 내리지 않았습니다. 투쟁은 계속되었고, 마침내 1962년에 프랑스인들이 떠나고 알제리아인들이 130년 만에 독립 국가를 세우는 것으로 영화는 끝납니다.

알리 암마르. ⓒ 위키백과

인류의 역사가 시작된 대륙 아프리카, 고대 그리스-로마인들도 찬탄해 마지않던 찬란한 문명이 꽃을 피운 땅, 아프리카는 중세 유럽인들에겐 관심 밖의 세상이었습니다. 가난과 질병, 전쟁으로 제 앞가림하기에도 빠듯했으니 외부세계로 눈 돌릴 여유가 없었지요. 하지만 15세기가 되면 그들도 아프리카를 다시 봅니다. 이슬람제국이 가로막은 ‘인도로 가는 길’을 찾기 위해서였지요.

1415년, 포르투갈은 지브롤터를 건너 북아프리카 세우타(Ceuta)를 정복하는 것으로 아프리카에 첫발자국을 들입니다. 이후로 그들은 조심스럽게 해안을 따라 남쪽으로 내려가서 30년 만에 서아프리카의 기니까지 진출합니다.

15세기 말에 아메리카대륙이 발견되고 스페인과 포르투갈이 신세계로 침탈해 들어갑니다. 처음에는 아메리카 원주민의 강력한 제국을 만나 고전을 면치 못했지만 본의 아니게 그들이 달고 들어간 병원미생물들이 면역이 없는 아메리카 원주민들을 공격하여 궤멸시킵니다. 덕분에 스페인과 포르투갈은 어렵지 않게 아메리카 대륙을 정복합니다(65화 <컨텍트> 참고).

유럽인들이 아메리카에서 단기간의 큰 성공을 얻은데 반해 먼저 진출한 아프리카에서는 진척이 없습니다. 아메리카에서는 엘도라도를 찾아 아마존의 열대우림을 과감히 돌파해 들어갔지만, 아프리카에서는 언감생심입니다. 유럽인들은 여전히 아프리카의 해안에서만 빙빙 돌기만 합니다. 왜요? 정글 속으로 들어가는 족족 유럽인들이 몰살당하니까요. 원주민들은 멀쩡한 말라리아에 걸려 유럽인들은 죽어나갑니다. 유럽인들도 마셔야 하는 강물에는 이질과 장티푸스균이 우글거립니다. 이 열대병과 수인성 전염병에 대해 유럽인들은 대책이 없었습니다. 그들이 아메리카에서 얻은 성공의 비결이, 아프리카에서는 반대로 장벽이 되어 그들 앞을 막아선 것이지요. 그래서 400년 가까이 그들은 정글로 들어갈 엄두를 내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거대한 장벽은 19세기에 들면서 하나 둘 허물어집니다. 아메리카 원주민으로부터 전수받은 말라리아 치료제 ‘기나피’를 쓸 수 있었고, 1850년이 되면 기나피의 후손인 ‘키니네’를 널리 사용하면서 말라리아를 이겨냅니다. 이제 정글 속으로 군대를 보낼 수 있게 된 것이지요. 아울러 기관총이 개발되자 수적으로 불리한 식민지 군대가 원주민을 일당백으로 상대할 수 있게 됩니다. 400년 만에 그들은 아프리카에서 힘의 우위를 얻습니다.

프랑스의 상황도 비슷했습니다. 1830년에 프랑스는 북아프리카의 지중해 지역인 알제리아를 침공합니다. 무자비한 살육과 초토화, 대량학살, 강간, 잔학행위를 통해 이 땅을 정복한 후 1848년에는 프랑스 식민지로 편입시킵니다.

식민지를 무력으로 지배하기 위해서는 군대를 상주시켜야 했고 덕분에 프랑스군은 말라리아에 노출됩니다. 프랑스 군의관들은 1820년에 자국의 약리학자인 펠레티에(Pierre Joseph Pelletier)와 카방투(Joseph Caventou)가 키나나무(Cinchona)에서 분리한 말라리아 치료의 유효성분인 자국산 키니네(quinine)를 아주 열심히 처방합니다.

당시 키니네를 먹으면 귀에서 소리가 나는(耳鳴) 부작용이 있어 의사들이 처방에는 소극적이었는데, 알레지아에서는 예외였습니다. 덕분에 알제리아 주둔 프랑스군에서는 단 한 명도 말라리아로 죽지 않습니다. 본의 아니게 약효 임상실험을 한 셈이지요.

새를 루이 알폰스 라베랑. ⓒ 위키백과

1879년에는 알제리 주둔군의 군의관인 라베랑(Charles Louis Alphonse Laveran; 1845~1922)이 말라리아로 죽은 병사의 혈액을 현미경으로 관찰하다가 말라리아를 일으키는 원충을 처음으로 발견합니다. 초승달 모양으로 채찍 같은 편모를 이용해 스스로 움직이며 적혈구 속에서 성장하여 적혈구를 파괴하는 기생충이었지요. 하지만 이 획기적인 대발견은 무시됩니다. 당시 의학에는 아직 미생물학이 없던 시절이었기 때문이지요. 대미생물학자 코흐(Robert Koch)는 라베랑의 허무맹랑한 주장을 믿는 사람은 자신에게 배울 필요가 없다고 쏘아붙였을 정도입니다.

하지만 작은 미생물들이 인간의 몸 속에서 병을 일으키고 옮긴다는 사실이 속속 밝혀지고 미생물학이 자리를 잡자 라베랑의 주장은 뒤늦게나마 인정을 받았고, 1907년 노벨 생리학·의학상으로 보답 받습니다. 그러니 말라리아의 역사에서 알제리아를 빼면 안되겠지요?

적혈구들 사이에 보이는 말라리아 원충. ⓒ 위키백과

영화는 알제리아 독립 5년 만에 만들어졌습니다. 당시 저항군의 지도자도, 시민항쟁에 가담한 시민들도 영화에 등장합니다. 그래서 당시의 독립 열기가 자연스럽게 영화에 녹아있습니다. 영화라기 보다는 다큐멘타리 같은 이 영화는 1966년에 베니스영화제의 대상인 황금사자상을 받습니다. 진실의 힘이 상상력을 압도한 경우입니다.

우리처럼 식민지 고통을 받았고, 항거했고, 무자비한 탄압을 받았던 동병상련의 알제리아인들의 독립운동사를 그린 영화,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친 호국 영령들을 기리는 유월을 보내기 전에 한번 챙겨볼 만한 영화라 생각합니다.

사족으로, 영화 제목은 <알제리 전투>이지만 <알제 전투>로 고쳐야 합니다. 영화가 다루는 이야기는 알제리아 독립전쟁(the Algerian War; 1954~1972) 중 수도 알제에서 벌어진 전투(the Battle of Algiers; 1956~1957)게릴라전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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