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스 오피스 1위 ‘택시운전사’ 위르겐 힌츠페터 ‘누구’

박스 오피스 1위 ‘택시운전사’ 위르겐 힌츠페터 ‘누구’

“진실 밝히고 싶었다” / 5·18 알린 ‘푸른 눈의 목격자’… 계엄군 해방 광주도 필름에 담아

“광주 시민과 한국인들은 1980년 5월을 잊어서는 안 되며, 다시는 그런 일이 일어나지 말아야 합니다. 모든 사람은 자유와 평화, 민주주의를 위해 숨진 사람들을 기억해야만 합니다.”

박스 오피스 1위를 달리고 있는 영화 ‘택시운전사’의 실제 주인공인 독일 언론인 위르겐 힌츠페터(1937∼2016)는 생전 인터뷰에서 이같이 강조했다. “진실을 밝히고 싶었다”는 그는 5·18 광주 민주화운동의 진실을 전 세계에 가장 먼저 알렸다.

영화 ‘택시운전사’ 실제 주인공인 독일 언론인 위르겐 힌츠페터(왼쪽 첫 번째)가 1980년 5월 광주에서 당시 상황을 찍고 있는 모습. 5·18기념재단 제공
‘푸른 눈의 목격자’로 불리는 힌츠페터는 독일 제1공영방송 ARD 산하 NDR의 일본 특파원이던 1980년 5월20일 택시 기사 ‘김사복’의 도움으로 광주를 찾았다. 그는 목숨을 걸고 계엄군의 무자비한 학살과 시민들의 항쟁을 필름에 담았다. 그날 그가 광주에서 본 것은 어린 학생들의 시체와 병원에 즐비한 관들로 대표되는 처참한 모습이었다.

힌츠페터는 일본에 날아가 광주 현장을 기록한 영상 자료를 독일로 전송했다. ‘택시운전사’에 나오는 대로 그는 만일의 상황에 대비해 필름을 쿠키 상자처럼 포장한 박스에 담았다고 한다.

1980년 5월22일 NDR방송 오후 8시 뉴스에서 힌츠페터가 찍은 광주의 영상이 전파를 타면서 5·18의 실상이 전 세계에 알려지는 결정적 계기가 됐다.

‘택시운전사’에는 나오지 않지만 그는 1980년 5월23일 광주로 다시 돌아와 계엄군이 물러가고 시민들의 자치 질서가 형성된 해방 광주의 모습도 필름에 담아 내보냈다.

지난 3일 광주 북구 광주시립묘지에 있는 위르겐 힌츠페터의 추모비 주변에 시든 국화 화분이 쓸쓸하게 놓여 있다. 연합뉴스
5·18을 “어디서도 경험하지 못한 최초의 엄청난 슬픔과 서러움”이라 했던 힌츠페터는 지난해 1월 독일에서 투병 끝에 숨을 거뒀다. ‘죽으면 광주에 묻어 달라’는 유지에 따라 그의 머리카락과 손톱이 분청사기함에 담겨 광주시립묘지(5·18 구 묘역)에 안치됐다.

한편 힌츠페터의 아내 에델트라우트 브람슈테트씨가 오는 8일 방한해 서울에서 ‘택시운전사’를 관람하고 광주를 방문할 것으로 알려졌다.

박진영 기자 jyp@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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