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마음은 왜 이럴까?] 독심술이 없는 사람은?

[내 마음은 왜 이럴까?] 독심술이 없는 사람은?

네 줄 요약
1. 인류는 오래전부터 타인의 마음을 읽는 능력을 진화시켰다.
2. 이러한 사회적 공감능력은 언어와 문화를 꽃피우는 인지적 토대가 되었다.
3. 그러나 동시에 인류는 체계적 도구 사용과 분석 능력도 진화시켰다.
4. 공감적 인지능력과 체계적 인지능력은 모두 인간성의 중요한 두 측면이다.

어린 시절 꿈꾸던 초능력 중의 하나가 바로 독심술입니다. 상대방을 보기만 해도 무슨 생각을 하는지 읽는 능력이죠. 중고차 매장에서 흥정을 할 때나 카드 게임을 할 때, 아주 유용할 것입니다. 특히 마음에 두고있는 이성 앞에서는 누구나 독심술을 간절히 원하게 되죠. “저 새침한 여성은 혹시 속으로 나를 좋아하는 것은 아닐까?” 네. 물론 (대개) 아닙니다.

그런데 사실 인간은 상당한 수준의 독심술을 이미 가지고 있습니다.

인류가 가진 독심술, 마음 이론

1978년, 아주 흥미로운 연구가 발표됩니다. 심리학자 데이빗 프리막과 구이 우드러프는 침팬지들이 상대의 의도를 간파한다는 사실을 깨닫습니다. 침팬지는 인간에 비해서 언어 기능이 대단히 조악한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로의 마음을 어느 정도 읽어낸 것이죠. 알란 레슬리는 이 현상에, 마음 이론(Theory of Mind)라고 이름 붙이게 됩니다. 바로 인간, 그리고 일부 고등 영장류에서만 발견되는 ‘독심술’입니다.

마음 이론이란 정확히 말하면 ‘마음의 기전에 대한 이론(The theory of mind mechanism)’을 줄여 부르는 말입니다. 즉 타인이 무엇을 알며 어떻게 믿고 있는지를 내가 안다는 것이죠. 예를 들어 책상 위에 사과가 있다고 하죠. 그러면 ‘사과가 책상위에 있다는 사실’은 1차 표상입니다. 그리고 ‘영희는 사과가 책상 위에 있다고 생각한다’는 2차 표상입니다. 이 2차 표상이 바로 마음 이론의 핵심인데, 흔히 M-표상이라고 합니다.

이러한 2차 의도성, 즉 상대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아는 능력은 점점 더 발전합니다. ‘내가 이렇게 믿고 있다고, 네가 생각한다는 것을, 내가 알지’라면 3차 의도성입니다. ‘영희가 철수를 좋아한다고, 철수가 믿는 것을, 영희가 눈치챘을 것이라고 철수가 짐작하는 것을, 사실 영희가 벌써 알고 일부러 새침한 표정을 짓는다고, 철수가 생각하고 있다’라면 6차 의도성이죠. 보통 성인은 5~6차 의도성을 어렵지 않게 파악합니다. 

독심술을 하는 남자. 독심술은 종종 마술쇼나 공상만화에 등장하는 소재다. 하지만 모든 인류는 상당한 수준의 독심술, 즉 마음 읽기 모듈을 가지고 있다. - Russell-Morgan Print 제공

독심술의 진화

1999년, 진화심리학자 바론 코헨은 이러한 마음 이론이 약 4만년 전에 진화했을 것이라고 주장합니다. 물론 침팬지도 약간의 마음 이론을 가지고 있으니, 아마 최초의 시작은 그보다 더 오래되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인간다운’ 수준의 마음 읽기 능력은 대략 수만 년 전에 진화했다는 것인데, 그 무렵부터 수많은 동굴 벽화나 장신구 등 예술품이 나오기 때문이죠.

인류의 마음 읽기 능력은 언어 능력과 밀접한 관련이 있습니다. 우리는 표정이나 태도를 보고도 상대의 마음을 짐작하지만, 결국 언어를 통해서 아주 정확하고 자세한 마음 읽기를 할 수 있습니다. 소설책 읽기를 좋아하시나요? 사실 소설은 모두 ‘거짓말’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언어의 조합을 통해서, 소설가의 의도와 감정을 읽고, 같이 웃고 또 슬퍼합니다. 소설가는 독자들이 어떤 반응을 보일지 미리 예측합니다. 문자 언어를 통해서, 서로 독심술 대결을 펼치고 있는 것입니다.

일부 학자는 이러한 마음 이론이 영장류의 지능 발달을 주도한 핵심 동력이라고 주장합니다. 이를 ‘사회적 뇌 가설 혹은 마키아벨리적 지능 가설’이라고 합니다. 즉 인류의 조상은 서로의 마음을 읽으면서 집단적인 협력과 경쟁을 할 수 있게 되었는데, 이러한 협력적 (가끔은 배신하지만) 능력의 적응적 이득이 엄청났기 때문에 점점 더 복잡한 사회적 지능을 가지게 되었고, 뇌도 덩달아 커졌다는 것입니다(반대로 체계적 도구 사용 능력이 뇌 진화의 원동력이라는 주장, 즉 ‘기술적 뇌 가설’도 있습니다).

개코 원숭이의 기만 행위 해석. 일부 영장류는 초보적인 수준의 기만 행위를 할 수 있는데, 이는 마음 읽기 능력을 기반으로 한다. - D. Bygott 제공

마음 읽기 능력의 차이

우리는 모두 동일한 염색체를 한 쌍 가지고 있습니다. 하나는 아버지, 하나는 어머니로부터 물려받은 것이죠. 각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유전자가 한 몸이 된 것이죠. 그러니 이제 이들은 새로 탄생한 생명체의 복리를 위해 서로 협력할까요? 대개는 그렇습니다만, 반드시 그런 것은 아닙니다. 이는 게놈 각인(genomic imprinting, 혹은 게놈 봉인) 현상과 관련되어 복잡한 양상으로 전개됩니다.

과거에는 (그리고 지금도 약간은) 아버지를 모르는 자식들이 많았습니다. 부성확실성, 즉 태어난 아기의 아버지가 누구인지 확신할 수 있는 정도는, 모성확실성보다는 상당히 낮습니다. 어머니는 아기를 직접 낳으니, 갓 태어나 품에 안긴 아기는 100% 자기 자식입니다. 그러나 아버지 입장에서는 조금 애매합니다. 안된 말씀입니다만, 내 자식이 아닐 수도 있죠.

따라서 형제 자매들도 알고 보면, 아버지가 다를 가능성이 꽤 있습니다. 따라서 부성 유래의 유전자는 형제 자매 간의 협력을 도모하기 보다는 보다 이기적인 쪽으로 발현되는 편이 유리합니다. 반대로 모성 유래의 유전자는 보다 협력적인 방향으로 발현되는 편이 유리하죠. 형제 자매의 모성 유전자를 공유할 가능성이, 부성 유전자를 공유할 가능성보다 높으니까요.

일부 학자들은 이러한 사회적 공감능의 일부가 X 염색체에서 조절된다고 생각합니다. 따라서 양쪽 부모로부터 X 염색체를 물려받는 여성은 하나의 X 염색체를 각인해버리지만, 남성은 무조건 어머니의 X 염색체를 가지게 됩니다. 남성과 여성의 서로 다른 공감능, 그리고 자폐장애나 조현병처럼 마음 모듈과 관련된 인지 장애가 바로 X 염색체의 상이한 게놈 각인에 의해서 일어날 수 있다는 것이죠. 자세한 것은 좀 어려우므로 넘어가겠습니다. 

X 염색체가 단 하나만 있는 경우를 터너 증후군이라고 한다. 해당 여성의 X염색체의 유래에 따라 XpO, XmO로 나누는데, 각 아형의 임상 양상은 유전자 각인 현상과 깊은 관련이 있다. - National Human Genome Research Institute 제공

독심술이 없는 사람?

1943년 볼티모어의 개업의사 레오 카너는 비슷한 증상을 보이는 환자들을 묶어 새로운 진단명을 제안합니다. 자폐증(Austism)입니다. 처음에는 카너 증후군이라고도 했죠. 이러한 자폐 장애 환자들은 대부분 마음 읽기 능력의 심각한 장애를 가지고 있습니다. 다른 사람의 의도를 잘 파악하지 못합니다. 엄마 눈에서 물이 떨어져도 왜 그런지 모르죠.

그런데 이러한 자폐증은 남성 환자가 여성보다 거의 4~6배 많습니다. 그래서 자폐 장애가 게놈 각인에 의해 일어난, 과시스템화된 뇌의 극단적 형태라는 주장도 있습니다. 체계적 인지 능력을 보이는 유전자와 공감적 능력을 가진 유전자의 상대적 발현 정도에 따라서, 각 개인이 얼마나 공감적인지 혹은 체계적인지 달라진다는 것이죠. 실제로 일부 자폐증 환자는 엄청난 단위의 숫자 계산을 척척 해내거나 혹은 복잡한 지도를 단 번에 외우기도 합니다.

이러한 극단적 양 측면, 즉 엄청난 공감 능력과 고도의 체계성은 모두 ‘인간성’의 한 측면입니다. 골고루 있으면 좋지만, 한쪽이 조금 더 강해도 괜찮습니다. 다른 이의 표정만 봐도 감정과 의도를 척척 알아내지만, 맨날 다니던 길도 헤매는 사람이 있습니다. 반대로 복잡한 도면을 한 눈에 읽고 기계의 작동 원리를 소상히 파악하지만, 애인의 마음은 잘 읽지 못해서 쩔쩔매는 사람도 있죠. 세상에는 이런 사람도, 저런 사람도 있습니다. 다 같이 서로 도우며 살아갑니다. 

다니엘 태멋(Daniel Tammet). 영국 태생의 자폐증 환자이자 작가. 그는 서번트 증후군(일부 자폐증 환자가 보이는 경이적인 인지능력)을 가지고 있다. 2만2514자리의 원주율을 외우며, 1주일만에 아이슬란드어를 거의 완전하게 익히기도 했다. - jurvets 제공

에필로그

브루노 베텔하임이라는 정신분석가는 자폐 장애의 원인이 ‘냉장고 엄마’, 즉 너무 냉담한 어머니 때문에 생긴다고 주장했습니다. 이후 수많은 자폐증 환자의 어머니가 무고한 죄책감에 시달렸습니다. 정신의학의 흑역사죠. 실제로 자폐증은 가장 유전성이 높은 정신 장애입니다. 어머니의 양육 방법과는 거의 무관합니다.

얼마전에 혼자 밥을 먹는 혼밥족은 사회적 자폐라고 말해 구설수에 오른 칼럼리스트가 있었습니다. 제가 ‘독심술’을 통해 판단해 본 결과, 나쁜 의도로 말한 것은 아닌 것 같습니다. 정신의학에 밝지 않아 생긴 말실수입니다. 물론 자폐 환자들은 보통 같이 어울려 식사하기를 즐기지 않습니다. 하지만 혼자 밥을 먹는다고 해서 자폐라고 할 수는 없습니다.

저도 혼밥을 좋아합니다. 몇 시간이나 외래를 보며 다른 이의 마음을 듣다 보면, 식사 시간만은 ‘마음 읽기’ 회로를 끄고 싶거든요. 아마 다른 분들도 대개 이러한 이유때문에, 혼밥을 택할 것입니다. 네. 홀로 드셔도 괜찮습니다.

※ 필자소개

박한선. 성안드레아병원 정신과 전문의. 경희대 의대 및 대학원을 졸업하고 이대부속병원 전공의 및 서울대병원 정신과 임상강사로 일했다. 성안드레아병원 정신과장 및 이화여대, 경희대 의대 외래교수를 지내면서, 서울대 인류학과에서 정신장애의 신경인류학적 원인에 대해 연구 중이다. 현재 호주국립대(ANU)에서 문화, 건강 및 의학 과정을 연수하고 있다. '재난과 정신건강(공저)'(2015), ‘토닥토닥 정신과 사용설명서’(2016) 등을 저술했고, '행복의 역습'(2014), ‘여성의 진화’(2017)를 번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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