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스로 간지럼 태울 수 없는 이유

스스로 간지럼 태울 수 없는 이유

누군가를 짝사랑하면, 특히 늘 옆에 있을 경우, 애가 타기 마련이다. 때때로 상대가 눈치 채지 않게 바라보고 전화통화를 하는 목소리를 엿듣기도 하지만 몸에 손을 댈 수는 없다. 상대 몰래 정보를 얻을 수 있는 시각이나 청각과는 달리 촉각 정보는 양방향이기 때문이다. 물론 상대가 잠이 들었을 때는 예외이지만. 드라마를 보면 짝사랑하는 사람이 잠들었을 때 가까이에서 지켜보며 망설이다 얼굴을 만져보려는 순간 상대가 눈을 떠 어색해진 장면이 나오곤 한다.

그런데 촉각에는 또 다른 흥미로운 특성이 있다. 내가 내 몸을 만질 경우 그 강도(압력)가 실제보다 약하게 느껴진다는 것이다. 내가 나를 간지럼을 태울 수 없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왜 남이 나를 만질 때보다 내가 나를 만질 때 감도가 떨어지는 걸까.

신경과학들은 ‘감각 감쇠(sensory attenuation)’라고 부르는 이 현상이 몸 소유권(body ownership) 때문에 일어난다고 설명한다. 즉 내 소유의 몸이 나를 만질 경우 예측 가능한 행동이므로 뇌가 예민하게 반응할 필요가 없어 감각이 무뎌진다는 것이다. 반면 내 소유가 아닌 몸이 나를 만질 경우는 정신 차리고 대비를 해야 한다. 면역계의 핵심 화두인 ‘자아와 비자아’가 촉각에서도 중요하다는 말이다.

1998년 학술지 ‘네이처’에 보고돼 큰 화제가 된 고무손 착각 실험 장면이다. 참가자는 보이는 고무손과 보이지 않는 자기 손에 똑 같은 자극(붓질)을 받을 경우 고무손을 자기 손으로 착각한다. ⓒ SFB

특정 상황에서 고무손을 진짜 자기 손이라고 느껴  

학술지 ‘미국립과학원회보’ 8월 1일자에는 몸 소유권 여부가 촉각을 느끼는 강도에 영향을 미친다는 가설을 ‘고무손 착각’ 현상으로 증명한 논문이 실렸다. 즉 내 소유의 몸이 아닌 고무손을 내 손으로 착각하게 만들면 고무손이 나를 만졌을 때도 감각 감쇠가 일어난다는 것이다. 반면 진짜 내 손을 가짜 손으로 느끼게 만들면 내 손이 나를 만져도 민감하게 반응하는 것으로 밝혀졌다.

이번 실험에 쓰인 고무손 착각(rubber hand illusion)은 1998년 학술지 ‘네이처’에 처음 보고되며 몸 소유권이라는 개념을 크게 흔들어 센세이션을 불러일으킨 현상이다. 미국 피츠버그대 정신과 매튜 보츠비닉 교수와 카네기멜론대 심리학과 조너선 코헨 교수는 진짜 손과 비슷한 고무손을 만들어 기발한 실험을 고안했다.

실험참가자들은 왼손을 책상에 올려놓는데 차단막이 있어 왼손을 볼 수는 없다. 대신 차단막 건너편, 즉 참가자 앞에 고무손(왼손)을 놓는다. 참가자는 물론 이게 가짜라는 걸 안다. 연구자들은 참가자들에게 고무손을 주시하게 한 뒤 붓으로 고무손을 살살 문지른다. 이때 눈에 보이지 않는 진짜 손도 같은 방식으로 문지른다.

10분이 지난 뒤 설문조사를 하자 참가자 전원이 고무손 위치에서 붓의 촉감을 뚜렷하게 느꼈다고 대답했다. 또 고무손이 진짜 자기 손 같다고 응답했다. 연구자들은 이 결과를 바탕으로 시각 정보가 촉각 정보를 왜곡해 내 몸이 아닌 고무손을 내 소유물로 착각하게 만들었다고 설명했다. 한편 고무손을 문지를 때 진짜 손은 문지르지 않거나 붓질을 다른 방향으로 할 경우는 고무손 착각 현상이 일어나지 않았다.

그 뒤 고무손 착각에 대한 신경과학 측면의 연구가 이어졌고 고무손을 진짜 손으로 착각했을 때 뇌 전두엽의 전운동 피질이 활성화된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즉 자극을 받는 대상이 자기 소유물(내 몸의 일부)로 느껴지려면 전운동 피질이 활성화돼야 하다는 말이다.

고무손 착각으로 감각 감쇠 현상이 몸 소유권에 따른 현상임을 보인 실험이다. 위 왼쪽은 오른손 검지로 왼손 검지를 누르는 경우로 감각 감쇠에 따라 같은 세기를 느끼려면 더 세게 눌려야 한다. 위 오른쪽은 두 손이 25cm 떨어져 있어 감각 감쇠가 나타나지 않는다. 아래 왼쪽은 왼손 검지를 고무손(파란색 소매) 검지가 누르는 경우로 진짜 오른손은 25cm 떨어진 곳에 있지만 가려져 있다 이 경우 고무손을 진짜 손으로 착각해 감각 감쇠가 나타난다. 아래 오른쪽은 진짜 손으로 착각할 수 없게 고무손이 반대편에 있는 경우로 감각 감쇠가 일어나지 않는다. ⓒ 미국립과학원회보

내 손가락으로 누를 땐 더 세게 눌러야

스웨덴 카롤린스카연구소 신경과학과 연구자들은 자기가 자기 몸을 만질 때 일어나는 감각 감쇠 현상이 몸 소유권 때문이지 알아보기 위해 고무손 착각을 이용했다. 먼저 고무손을 진짜 자기 손으로 여길 때 이런 현상이 일어나는지 알아보는 실험으로 실험참가자들은 왼손 검지 끝과 오른손 검지 끝에 센서를 단다. 참가자들은 왼손 검지에 일정한 힘을 받은 뒤 오른손 검지로 같은 세기라고 생각되는 힘으로 누른다. 양손의 손가락이 겹쳐져 있을 때 예상대로 참가자들이 같은 세기라고 느낀 강도는 실제 더 큰 힘이었다. 내 몸끼리 작용을 주고받아 감각 감쇠가 일어난 결과로 몸 소유권 가설과도 부합한다.

다음으로 왼손과 오른손이 25cm 떨어져 있을 때로 오른손 검지로 센서를 누르면 동일한 크기의 힘이 왼손 검지의 센서로 전달돼 왼손을 누른다. 그 결과 양손이 겹쳐진 경우보다 25cm 떨어져 있을 경우 같은 강도로 느껴질 때 누르는 힘이 작았다. 즉 뇌는 오른손이 누르는 힘과 왼손이 눌리는 힘을 별개의 사건으로 판단한 것으로 몸 소유권 가설에 따르면 촉각 억제가 일어나지 않는다.

세 번째는 왼손 검지와 고무손(오른손) 검지가 겹쳐져 있고 진짜 오른손은 25cm 떨어져 있고 가려져 보이지 않는다. 오른손 검지로 센서를 누르면 같은 강도로 고무손 검지가 센서를 눌러 왼손 검지가 느낀다. 고무손 착각 이론에 따르면 고무손을 내 몸으로 여기기 때문에 감각 감쇠가 일어나 같은 강도에 이르려면 실제보다 강하게 누를 것이다. 실험 결과 진짜 손일 때보다는 덜했지만 확실히 그런 효과가 보였다. 끝으로 고무손이 180도 돌아 테이블 건너편에서 참가자 쪽을 향할 때, 즉 고무손을 진짜 손이라고 착각하는 일이 일어나지 않을 때는 감각 감쇠가 일어나지 않았다. 결국 몸 소유권 여부가 자신이 일으킨 촉각의 감쇠 여부를 결정한다는 말이다.

연구자들은 두 번째 실험에서 진짜 손을 고무손으로 착각하게 만들면 감각 감쇠 현상이 억제되는지 알아봤다. 이 경우 양손의 검지가 포개져 있는데 차단막이 있어 참가자들은 자기 양손을 보지 못한다. 양손에서 25cm 떨어져 고무손이 있고 눈에 보인다. 앞의 실험처럼 참가자들은 왼손 검지에 일정한 힘을 받은 뒤 오른손 검지로 같은 세기로 느껴지게 누른다. 그런데 눈앞에 고무손이 보이므로 뇌는 오른손 검지가 누르는 걸 고무손 검지가 누르는 것이라고 착각해, 즉 왼손 검지가 눌리는 건 별개의 현상이라고 판단해 감각 감쇠가 억제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착시 이미지에서 경험하듯이 착각(illusion)의 가장 큰 특징은 진짜가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되더라도 여전히 진짜로 느낀다는 것이다. 고무손 착각이 과연 얼마나 생생할지 한 번 경험해보고 싶다.

고무손 착각을 이용해 진짜 손가락으로 눌렀음에도 감각 감쇠가 억제됨을 보인 실험이다. A, B, C 세 경우는 앞의 실험과 같고 아래 오른쪽(D)은 오른손 검지로 왼손 검지를 누르는 경우이지만 가려져 보이지 않고 25cm 떨어져 있는 고무손은 보인다. 오른손 검지로 왼손 검지를 누름에도 보이지 않기 때문에 내 손으로 착각하는 고무손이 왼손과는 떨어져 있는 센서(f)를 누르는 것으로 판단해 감각 감쇠가 억제된다. ⓒ 미국립과학원회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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