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여름에 떠올리는 ‘저온 물리학’

한여름에 떠올리는 ‘저온 물리학’

폭염과 열대야에 지치는 요즈음, 사람들은 서늘한 곳으로의 피서나 시원한 냉방시설 등 ‘차가운 것’을 많이 찾게 마련이고, 한겨울의 추위가 도리어 그리워질 수도 있을 것이다. 한여름에 ‘저온의 물리학’을 생각해보는 것도 나름 의미가 있을 듯한데, 일반 대중들이 생각하는 저온과 물리학에서의 저온은 큰 차이가 날 뿐 아니라 개념 자체가 좀 다르다.

즉 물리학에서 저온은 매우 독특한 의미를 지닌다. 단순히 온도가 낮은 수준이 아니라, 절대 온도 0도, 즉 섭씨 영하 273도 부근까지 온도가 내려가면, 상온에서는 보기 어려운 특이한 물리현상들이 발견되곤 한다. 도체의 전기저항이 사라지는 초전도 현상은 그 대표적 예 중의 하나이며, 그밖에도 원자, 분자 수준에서 다양하고 중요한 여러 현상들이 관측되는 경우가 많아서 고체물리학자들의 좋은 연구거리가 된다. 따라서 고체물리학자들 중에 저온을 연구하는 이들이 적지 않으며, 그중에서 노벨 물리학상의 영광을 거머쥔 이들 또한 다른 분야에 비해 많다고 볼 수 있다.

저온물리학의 연구로 1913년도 노벨물리학상을 받은 오네스. ⓒ Free Photo

저온 연구로 첫 번째 노벨 물리학상을 받은 이는 초전도 현상을 처음 발견한 하이케 카메를링 오네스(Heike Kamerlingh Onnes; 1853-1926)이다. 네덜란드 출신인 그는 레이덴 대학의 실험물리학 교수로 재직하면서 저온에서의 금속과 유체의 성질을 주로 연구하였고, 또한 저온을 만들 수 있는 실험기법을 완성하는데 주력하였다.

그는 결국 저온물리학에 대한 연구와 액체 헬륨을 만들어낸 공로를 인정받아 1913년도 노벨 물리학상 수상자가 되었다. 또한 그가 레이덴 대학에 설립한 극저온 연구소는 세계적인 저온 연구의 중심지가 되었고, 지금은 그의 이름을 딴 카메를링 오네스 연구소로 불리고 있다.

그 후 고체물리학이 발달하면서 특정 물체의 전기 저항이 극저온에서 사라지는 초전도 현상은 물리학자들의 흥미를 끌게 되었는데, 초전도 현상의 요인을 설명하는 이른바 BCS 이론을 세운 물리학자들은 1972년에도 노벨 물리학상을 공동으로 수상하였다. 즉 바딘(John Bardeen; 1908-1991), 쿠퍼(Leon N. Cooper; 1930-), 슈리퍼(John Robert Schrieffer; 1931-) 세 명의 물리학자가 그 주인공으로, BCS이론이란 그들 이름의 두문자를 딴 것이다.

저온의 물리학은 레이저 및 분광학, 전자 및 물성의 연구 등 여러 다른 분야들과도 긴밀한 관련이 있는데, 이런 측면에서 특히 1990년대 중반에 접어들면서 이들과 관련된 노벨 물리학상 수상자들이 잇달아 배출되기에 이르렀다.

극저온에서 초유동성을 보이는 액체헬륨. ⓒ Free Photo

1996년도 노벨 물리학상 수상자들은 ‘세계에서 가장 기묘한 액체’로 꼽히는 초유동체 헬륨-3(3He: 원자량이 3인 헬륨)을 발견한 미국 과학자 3명에게 돌아갔다. 초유동체란 절대온도 0도에 가까운 극저온에서 점성이 사라지면서 벽을 타고 위로 흐르거나 사방으로 흩어지는 특성을 지닌 물질을 말한다.

저온물리학의 전문가들인 세 명의 물리학자, 즉 로버트 리처드슨(Robert C. Richardson; 1937-2013), 오셔로프(Douglas D. Osheroff; 1945- ), 데이비드 리(David M. Lee; 1931-)는 헬륨의 동위원소인 헬륨-3가 절대온도 0도의 약 2/1000℃에서 초유동성을 띤다는 사실을 1972년에 밝혀냈다. 이들의 발견은 저온물리학 연구에 더욱 기여하였고 또한 우주 형성의 원리를 이해하는 데에도 도움이 되었다.

고온 초전도체 연구에도 공헌했던 스티븐 추(Steven Chu; 1948- )를 비롯한 1997년도 노벨 물리학상 수상자들의 업적 역시 저온 연구와도 큰 관련이 있다. 스티븐 추와 윌리엄 필립스(William D. Phillips; 1948- ), 클로드 코앙 타누지(Claude Cohen-Tannoudji; 1933-)는 원자와 기체를 얼리지 않고도 극저온으로 냉각시키는 방법과 기술을 각각 독자적으로 개발하고, 결국 레이저 광으로 원자를 가두어 두는 데에 성공했기 때문이다. 이들의 연구는 보스-아인슈타인 응축물이라는 새로운 물질상태를 만들어내는 데에도 기여하고, 원자 하나로 형성되는 레이저를 만드는 데에도 응용되었다.

초전도체에 의한 자기부상섭씨영하196도 ⓒ Free photo

이듬해인 1998년도 노벨 물리학상 역시 저온물리학 연구자들에게 돌아갔다. 독일 출신의 호르스트 슈퇴르머(Horst L. Stormer; 1949-), 미국 프린스턴대학의 다니엘 추이(Daniel C. Tsui; 1939-), 스탠퍼드대학의 로버트 러플린(Robert B. Laughlin; 1950-)은 극저온의 아주 강한 자기장 속에 위치한 반도체 내의 전자들이 이상한 행동을 보인다는 사실을 발견하였다. 즉 극저온의 강자기장이 걸린 상태에서는 전자들이 강하게 끌어당기면서 일종의 유체처럼 행동하므로 ‘양자 유체’라고 불리는데, 또한 이들 전자들은 마치 분수(分數)의 전하를 가진 것처럼 보인다는 것이다.

이른바 ‘분수 양자 홀 효과’라 불리는 이들의 이론은 고체물리학, 통계물리학, 입자물리학을 포괄적으로 설명할 수 있는 보다 넓은 틀을 제공하여, 현대물리학의 새로운 영역을 개척하였다는 평가를 받았다. 공동 수상자 중 한 명인 러플린은 한때 한국과학기술원(KAIST) 총장을 역임하여 우리나라에도 잘 알려진 물리학자이다.

저온의 물리학은 노벨 물리학상 수상 업적을 떠나서도, 앞으로도 고체물리학 뿐 아니라 우주론, 입자물리학 등 물리학 전반을 아우르는 중요한 단서와 새로운 이론의 전기를 제공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저온물리학의 세계적 산실이 된 카메를링 오네스 연구소. ⓒ Free photo

1998년도 노벨물리학상 수상자이자 KAIST총장을 역임한 로버트 러플린. ⓒ Markus Posse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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