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피를 마시면 속이 쓰린 이유

커피를 마시면 속이 쓰린 이유

이런 얘기를 하기는 뭐하지만 필자가 프리랜서 작가로 생계를 유지하는데 커피가 큰 역할을 하는 것 같다. 아침과 점심을 먹고 한 잔씩 마시는 커피가(저녁에 마시면 잠이 안 온다) 정신의 활력소가 되기 때문이다.

수년 전 위염으로 한 동안 고생한 뒤 뭔가 밸런스가 깨지면 종종 위염 증세가 나타나는데 그럴 땐 별 수 없이 커피를 삼간다. 이렇게 커피를 마시지 않은 날에는 오전에 책이나 논문을 읽을 때 꾸벅꾸벅 조느라 진도가 안 가고 낮에 노트북을 앞에 두고 앉아도 글이 잘 안 써진다.

커피의 각성효과는 카페인 때문이다. 그런데 왜 카페인은 위가 안 좋은 사람에게 증상을 더 악화시키는 부작용을 보이는 걸까. 과학자들은 수십 년 전 이에 대한 답을 내놓았는데 카페인이 위산의 분비를 촉진하기 때문이다. 안 그래도 위산분비의 밸런스가 깨져 속쓰림이나 심하면 역류성식도염 증상까지 보이는데 카페인까지 힘을 보태니 설상가상의 상황이 된다는 것이다.

위에도 쓴맛수용체 있어

학술지 ‘미국립과학원회보’ 7월 25일자에는 카페인이 위산 분비를 촉진하는 메커니즘을 밝힌 논문이 실렸다. 오스트리아와 독일의 공동연구자들은 카페인이 위벽의 세포 표면에 존재하는 쓴맛수용체와 달라붙어 위산을 분비하라는 신호를 전달한다고 설명했다. 참고로 커피의 쓴맛은 주로 카페인에서 온다.

쓴맛수용체는 다섯 가지 기본맛 가운데 하나인 쓴맛을 감지하는 수용체 단백질로 사람의 경우 25가지가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런데 맛수용체는 혀에 존재하는 것 아닐까. 2000년대 들어 맛수용체 유전자가 알려지면서 맛수용체가 혀뿐 아니라 몸의 다른 기관에서도 존재한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쓴맛수용체의 경우도 위와 장(그래도 여기까지는 이해가 된다), 기관지, 심지어 뇌에서도 발견된다.

이처럼 쓴맛수용체가 다양한 기관에 분포하지만 혀에 있는 쓴맛수용체만이 자극을 받았을 때 쓴맛이라고 인식하는 뇌 부위에 신호를 보낸다. 즉 다른 곳에 있는 쓴맛수용체는 설사 카페인 같은 분자가 달라붙어도 이쪽으로 신호를 보내지 않기 때문에 우리가 느끼지 못한다. 쓴 약을 가루로 먹을 땐 얼굴을 찌푸리지만 캡슐로 먹으면 모르는 이유다. 만일 위에서 쓴맛을 느낀다면 수 분 뒤 속이 굉장히 쓸 것이다. 그렇다면 맛의 정보로 주지 않는데 왜 위에 쓴맛수용체가 있을까.

쓴맛은 경고의 표시다. 즉 맛이 쓴 음식은 우리 몸에 독이 될 수도 있다는 뜻이므로 동물들은 쓴 걸 입에 넣으면 바로 뱉는다. 설사 삼켰더라도 위나 장에 존재하는 쓴맛수용체가 다시 한 번 쓴맛을 감지해(물론 이때는 우리가 의식하지 못한다) 대응을 한다. 기관지에 쓴맛수용체가 있는 것 역시 숨을 들이쉴 때 들어온 독소를 감지해 배출하거나 중화시키는 방식으로 대처하기 위함이다.

연구자들은 이런 관점에서 카페인이 위산분비를 촉진하는 것 역시 위벽의 세포표면에 존재하는 쓴맛수용체가 관여한 해독반응의 하나라고 가정했다. 그리고 이를 입증하는 실험을 설계했다. 즉 카페인이 쓴맛수용체에 달라붙는 걸 방해하는 물질인 호모에리오딕티올(homoeriodictyol, 이하 HED)을 함께 섭취했을 때 위산분비촉진 작용이 억제된다면 쓴맛수용체를 통해 작용한다는 뜻이다.

카페인이 쓴맛수용체를 통해 위산분비에 미묘하게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이 최근 밝혀졌다. 카페인 캡슐을 복용할 경우 위의 쓴맛수용체에만 작용해 위산분비를 촉진한다(가운데). 카페인 수용액을 머금다 뱉을 경우는 혀의 쓴맛수용체에만 작용해 위산분비를 억제한다(오른쪽). 카페인 수용액을 마실 경우 혀의 쓴맛수용체와 위의 쓴맛수용체에 모두 작용해 위산분비촉진효과가 어느 정도 상쇄된다(왼쪽). ⓒ 미국립과학원회보

입에서는 억제, 위에서는 촉진

연구자들은 먼저 위벽의 세포에서 발현하는 쓴맛수용체 유전자를 조사했다. 그 결과 25가지 유전자 가운데 22가지가 발현하는 것으로 나타났고 특히 카페인에 반응하는 다섯 가지(TAS2R 7, 10, 14, 43, 46)는 모두 발현했다. 카페인의 쓴맛이 위에서도 어떤 작용을 할 가능성이 입증된 셈이다.

실험참가자들은 세 가지 방식으로 카페인과 접촉한다. 한 그룹은 커피를 마시듯 카페인이 녹아있는 물을 마신다. 즉 혀의 쓴맛수용체와 위의 쓴맛수용체 모두가 반응하는 경우다. 두 번째 그룹은 카페인 가루가 들어있는 캡슐을 물로 삼킨다(위의 쓴맛수용체만 반응). 세 번째 그룹은 카페인이 녹아있는 물을 한동안 머금다가 뱉는다(혀의 쓴맛수용체만 반응). 한편 대조군은 그냥 물만 마신다.

위는 평소 수소이온지수(pH)가 1 내외인 강산 상태다. 연구자들은 위산분비효과를 보기 위해 먼저 제산제로 널리 쓰이는 약알칼리성 물질인 중탄산나트륨 용액을 먹게 해 위를 중성으로 만든 뒤 5분 뒤 카페인을 섭취하게 하고 위가 다시 pH1을 회복하는데 걸리는 시간을 쟀다(위의 pH는 캡슐형 장치로 원격측정한다).

그 결과 물 150ml를 마신 대조군의 경우 평균 23분 걸렸다. 커피에 해당하는 카페인 수용액의 경우 물만 마신 대조군에 비해 평균 8분 더 걸린 반면 캡슐로 카페인을 섭취한 그룹은 평균 5분 더 걸렸다(이 경우 유의적 차이는 없다). 카페인 수용액을 입에만 머금다 뱉은 그룹은 평균 20분이나 더 걸렸다. 그런데 카페인이 위산분비를 촉진한다면 대조군에 비해 시간이 덜 걸려야하는 것 아닐까.

흥미롭게도 위산분비에 미치는 카페인의 효과는 부위에 따라 다르다. 즉 입안에서 작용할 때는 위산분비를 억제하는 효과를 내고 위에서 작용할 때는 촉진하는 효과가 있다. 이는 입에서 쓴맛을 감지할 경우 뱉어낼 걸 예상해 소화를 억제하는 신경신호가 전달된 결과로 보인다. 반면 위에서 감지한 경우는 물질이 몸 안에 들어온 상태이므로 소화해 없애려는 해독 반응이다. 한편 카페인은 섭취하고 30분 정도 지나야 위산분비촉진 효과가 나타난다.

결국 제산제의 효과가 30분을 가지 못하기 때문에 카페인 캡슐이 위의 쓴맛수용체를 자극해 위산분비를 촉진하는 효과는 볼 수 없었다. 한편 카페인 수용액을 입에만 머금다 뱉을 경우 혀의 쓴맛수용체를 자극해 위산분비를 억제한 결과 평균 20분이나 더 걸린 것이다. 그리고 커피에 해당하는 카페인 수용액의 경우는 혀와 위의 작용이 상쇄돼 평균 8분이 걸렸다고 해석할 수 있다.

위염이 있어도 커피는 여전히 향기롭다!

다음으로 연구자들은 카페인이 쓴맛수용체에 달라붙는 걸 방해하는 물질(HED)을 함께 섭취했을 때 위산분비에 미치는 작용을 알아보기로 했다. 먼저 혀의 쓴맛수용체에 미치는 영향으로 참가자들은 먼저 제산제를 복용하고 5분 뒤 카페인 수용액을 마신다.

그 결과 앞의 실험과 마찬가지로 위의 pH가 정상으로 돌아오는데 맹물을 마신 대조군에 비해 평균 8분 정도 더 걸렸다. 그런데 카페인 수용액과 HED를 함께 먹을 경우 대조군과 차이가 없었다. 즉 HED가 카페인이 혀의 쓴맛수용체와 결합하는 걸 방해해 위산분비억제 효과가 나타나지 않은 것이다.

다음으로 HED가 위의 쓴맛수용체에 미치는 영향을 알아보는 실험을 설계했다. 이 경우 카페인 캡슐을 먼저 먹고 25분 뒤에 제산제를 복용하고 pH가 정상으로 돌아오는데 걸리는 시간을 측정했다.

그 결과 카페인 캡슐을 복용한 그룹은 물을 먹을 대조군에 비해 정상으로 돌아오는데 걸리는 시간이 평균 23분이나 단축됐다(제산제 복용 시간 기준 16분 뒤). 반면 카페인 캡슐과 HED를 같이 먹을 경우 단축 효과가 사라졌다.

두 실험으로 카페인이 쓴맛수용체를 통해 위산분비에 영향을 미침을 이중으로 입증한 셈이다. 연구자들은 다음으로 쓴맛을 내는 여러 물질에 대해서도 실험을 했고 카페인과 같은 결과를 얻었다.

연구자들은 이번 발견이 역류성식도염이나 위궤양 같은 위산분비교란 질환을 치료하는데 쓴맛과 쓴맛억제제를 이용한 치료법으로 응용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즉 쓴맛이 나는 액체를 입에 머금고 있거나(혀의 쓴맛수용체 자극) 쓴맛억제제를 복용할 경우(위의 쓴맛수용체 억제) 위산분비를 줄일 수 있기 때문이다.

앞으로 위염이 재발할 경우 커피를 끊는 대신 입에만 머금어 향기를 음미하며 치료에도 도움을 줘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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