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삭바삭한 햇볕이 메마른 사막에 사정없이 내리쬔다. 에어스록공항(Ayers Rock Airport)에서 막 빠져나온 사람들은 분주한 픽업차량 옆에 서서 볕을 수혈받듯 눈을 감고 하늘을 올려다본다. 지구 반대편에서 30시간 넘게 비행기를 갈아타고 왔다는 주름이 깊게 파인 노신사, 시드니에서 백팩 1개만 덜렁 메고 온 배낭여행객 모두 같은 자세다.
바닷속 퇴적된 사암이 지각변동으로 융기해 거대한 산군을 이루기까지. 약한 살점이 바람에 떨어져나간 울퉁불퉁한 암석은 세상의 중심에 모습을 드러냈다. 그리고 지하에는 보이지 않은 깊이 700미터 정도의 암반이 아직 잠들어 있다.
신이 빚어낸 붉은 영물
|
가파른 절벽과 정상의 완만한 평지가 거의 직각을 이루는 기암은 태양광의 움직임에 따라 시시각각 극적인 얼굴을 내보인다. 황갈색에서 강렬한 주황빛, 그다음에는 깊고 진한 붉은빛으로. 한시도 지루할 틈 없이 변화무쌍한 모습에 여행자는 쉽사리 시선을 거두지 못한다. 해가 뜨고 지는 자연의 섭리가 이곳에서는 신의 선물처럼 매일 바위를 향해 쏟아지는 것이다.
태고의 신비를 품은 암괴는 인류 역사를 방증한다. 황량한 대지에 박힌 바위 곁을 5,000여 년 전부터 지켜온 원주민 아난구(Anangu)족은 울루루를 영물로 여겨왔다. 이는 문명에 한참 뒤진 시대 탓만은 아닐 것이다. 바라만 보고 있어도 고결함이 느껴지는 바위의 웅장한 자태는 신의 솜씨가 아니라면 좀처럼 설명하기 힘들다.
“울루루는 남자의 영역이에요. 지금도 일부 원주민은 바위를 지키며 제를 올립니다.” 울루루 카타 추타 국립공원(Uluṟu-Kata Tjuṯa National Park) 가이드 제니(Jenny)가 붉은 암석 사이로 난 오솔길로 여행객을 통솔하며 이야기한다.
그녀의 말대로 문명과 타협을 거부한 일부 원주민은 오늘날까지 붉은 모래가 쌓인 사막을 맨발로 걸어 다니며 원시생활을 이어가고 있다. “흰색 운동화는 붉게 물들게 될 거예요. 울루루에서 가져오는 기념품이라고 생각해도 좋아요.” 울루루 가까이 다가가면 풍화와 침식, 화학 분해 등으로 단단한 암석이 깎이고 떨어져 나간 흔적이 보인다.
푸른 혀를 가진 도마뱀 사나이, 바위에 갇힌 조카를 살리기 위해 목숨을 희생한 일가의 흔적, 원주민이 주요 의식을 치를 때 나타났다는 적갈색토끼왈라비 말라(Mala)의 발자국 등. 원주민 출신 가이드가 쏟아내는 이야기는 태고의 신비를 더욱 드라마틱하게 포장한다.
아난구족은 황톳빛 바위틈을 타고 폭포처럼 흘러내린 빗줄기마저 메마른 땅을 적시는 신성한 물로 여겼다. 빗물이 고여 형성된호수를 본 원주민은 바위의 은혜와 성스러움에 또 한번 탄복했으리라. 오늘날 고고학자들은 지극히 황량하고 이질적인 울루루의 환상을 거둬내고 자연과 인류가 남겨놓은 태고의 신비를 기록한다.
1960년대 후반까지만 해도 울루루를 찾는 방문객은 연간 1,000명을 넘지 않았지만, 오늘날엔 열흘에 1,000명꼴로 이 신성한 바위를 보러 온다. 1983년 아난구족은 오랜 분쟁 끝에 국가로부터 울루루 소유권을 되찾았다. 지금은 국가에 일정 기간 대여하는 조건으로 공동 관리한다. 방문객의 입장을 공식 허가한 울루루 카타 추타 국립공원에는 울루루를 가까이 들여다볼 수 있는 트레킹 코스를 마련했다. 극소수 등반객을 위해 울루루 정상에 박아놓은 쇠말뚝은 신성한 공간에 대한 합법적 침범을 알린다.
“원주민 사이에서는 주술사를 제외하고 울루루에 오르는 것이 금기입니다. 당연히 방문객이 오르는 걸 좋아하는 원주민은 없죠. 그들은 아무도 다치지 않길 바라거든요.” 가이드 제니가 조심스럽게 당부한다. 호기심 가득한 여행객은 이를 무시하고 가파른 바위를 오르다 실족하거나 섭씨 40도에 육박하는 건조하고 무더운 사막 날씨에 목숨을 잃기도 한다.
간혹 울루루에 죽은 혼령이 깃들어 있다는 말이 주술적 의미만은 아닌 듯하다. 원주민은 등반 대신에 트레킹 코스를 따라 걷고, 한여름에는 오전 11시에 투어를 끝낼 것을 강권한다. 그리고 숨이 턱턱 막히는 사막을 걷는 동안 시간당 1리터의 물을 마시는 건 필수다. 영적인 장소에는 입장을 제한하는 표지판이 걸려 있다.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