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국내여행]제주 서부의 마을로 떠나다1- 제주시 한경면

인간보다 자연의 스토리가 파란만장하게 펼쳐지는 제주 서부의 숨은 마을을 찾아간다. 수만 년 전 화산 지형부터 최신 카페와 숍까지 아우르는 탐험 같은 여행.

저지리의 가정집을 개조한 프란츠스토어 내부.


“한경면이야말로 제주에서 가장 제주스러운 분위기가 남아 있는 곳이에요.” LP 플레이어에서 흘러나오는 존 콜트레인의 ‘My Favorite Things’를 들으며 프란츠스토어의 김민정 대표가 말한다. 이곳은 한라산 서북부 중산간. 제주에서 아름답기로 손꼽히는 저지오름 앞 농가 마을로 이주한 김민정 · 배민덕 부부는 마을회관 근처의 오래된 주택을 편집매장으로 개조했다. 예전에 비해 변한 것은 그리 많지 않다. 다홍색으로 칠한 슬레이트 지붕과 에메랄드빛 외벽, 붓으로 휘갈겨 쓴 듯한 작은 간판은 마을의 조용한 분위기에 자연스럽게 스며든다.

프란츠스토어에서는 주인 부부가 일본 교토에서 직접 구매해 온 소품과 미도리 문구류, 여성용 의상을 선보인다. 실내 구석구석 아기자기한 물건으로 가득하다. 집주인 할머니가 쓰던 반질반질한 서랍장 위에는 일본제 식기와 소품, 스카프 등이 가지런히 놓여 있고, 벽에는 회화 작품과 LP 앨범, 밀짚모자, 드레스가 걸려 있다. 강렬한 붉은 색채를 사용한 바스키아풍 작품은 한쪽 벽면을 전부 차지한다. 사실 제주에서 수공예 소품을 취급하는 매장은 종종 찾아볼 수 있지만, 수입품을 선보이는 곳은 그리 많지 않다. 프란츠스토어가 오픈하자마자 인기를 끈 이유도 여기에 있을 터. 그럼에도 김민정 대표는 이곳이 단순히 물건만 파는 곳보다는 서로가 이야기를 나누는 장소가 되기를 바란다고 말한다. 한때 밀감나무밭이던 넓은 뒷마당은 바로 그런 공간인 듯. 나무 그늘 아래 놓인 목조 의자는 느긋한 한때를 누리기 제격이다.


11am~5pm, 일요일 휴무, 064 772 5962, 제주시 한경면 중산간서로 3721, Instagram @franz_store

카페 저녁정원은 판포리 마을 안쪽의 단층 주택을 개조했다.

저녁정원의 현관 너머로 보이는 정원은 부부가 매일 가꾼다.

스노클링 명소로 유명한 판포포구 앞의 한적한 농가 마을. 돌담길을 따라 마을 깊숙이 들어가면 최근 인스타그래머에게 인기를 끄는 카페 저녁정원이 나온다. 50년 넘은 제주도 단층 주택을 개조한 카페다. 현관에서 실내용 슬리퍼로 갈아 신고 수십 년간 그 자리를 지켰을 목조 마루를 디디고 들어서자 여느 가정집에 초대받은 듯한 기분이 든다. 벽에는 앙리 루소와 고갱, 마티스의 그림이 걸려 있고 공중 식물이 잎을 축 늘어뜨리고 있다. 아이가 태어나고 부모가 나이 들어갔을 방 4칸짜리 집 안 곳곳에 자리를 잡은 손님은 먹다 남은 카스텔라를 내버려둔 채 책을 읽거나 낮은 목소리로 대화를 나눈다. 부엌을 개조한 카운터에 놓인 손글씨 메뉴판도 고즈넉한 분위기에 한몫한다.

수박주스와 수제 카스텔라. 저녁정원의 모든 메뉴는 대부분 제주산 식자재로 만든다.

손으로 직접 메뉴를 그려 넣은 메뉴판.

“저녁정원이라는 카페 이름대로 정원처럼 아늑한 분위기를 내고 싶었어요.” 권영진 대표가 설명한다. 그 말대로 커다란 통유리창 밖으로 뒤뜰의 대나무 숲이 보인다. 예스러운 문양의 목조 창틀 너머로는 푸른 정원이 펼쳐진다. 정원 입구에는 수령이 100년은 넘었을 법한 팽나무가 가지를 드리우고 있는데, 마을 사람 모두 아끼는 명물이라고. “농사철이면 동네 분들이 양파 같은 농작물을 던져주고 가시곤 해요.” 권영진 대표가 웃으며 말한다. 음료는 커피부터 긴가코겐(銀河高原) 맥주, 하우스 와인까지 선보이는데, 여름에는 단연 제주산 수박을 갈아 넣은 수박주스나 한라봉에이드가 인기. 주방에서 직접 굽는 카스텔라에는 합성 첨가물 대신 한라산 꿀을 듬뿍 넣는다고. “제주에서는 제사상에 카스텔라를 올리는 풍습이 있고 선물용으로도 좋지요.” 조만간 저녁정원에서는 정원의 스몰 웨딩 서비스를 선보일 계획이다.


커피 5,000원부터, 12pm~8pm, 화요일 휴무, 010 6407 5676, 제주시 한경면 판포중길 31, Instagram @evening_garden

제주의 숨은 지질학 박물관

수월봉 엉알길

제주올레 12코스의 일부인 수월봉 엉알길은 유네스코 세계지질공원으로 지정된 수월봉 어귀에서 시작한다.


제주에서 드넓기로 꼽는 고산리 들판 너머에 천연기념물 제513호로 지정된 수월봉이 솟아 있다. 1만8,000여 년 전 마그마가 폭발해 화산재가 쌓여 생긴 야트막한 오름으로, 인기 일몰 포인트기도 하다. 해발 77미터 남짓한 정상까지는 차로 올라갈 수 있다. 정상에 서면 서쪽으로는 차귀도와 와도가 바닷물에 몸을 담그고 있고, 동쪽의 고산리 들판 너머로 몇몇 오름이 더 보인다. 저 어딘가에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초기 신석기 유적인 고산리 유적이 숨어 있을 것이다. 거친 바닷바람이 머리칼을 사정 없이 흩뜨리지만, 가족과 연인은 행복한 얼굴로 망원경을 통해 바다 저편을 바라보거나 사진을 찍으며 노을이 지기를 기다린다.

수월봉 지질 트레일은 수월봉에서 당산봉까지 뻗은 해안길과 차귀도 둘레길을 포함한다. 이 중 수월봉 엉알길은 수월봉에서 북쪽으로 차귀도 선착장까지, 해안 절벽을 따라 1.6킬로미터 이어지는 길로 지질학적 보고(寶庫)나 다름없다. 수월봉 아래편의 해안 절벽으로 내려가자 70미터 두께로 쌓인 장엄한 화산재 지층이 모습을 드러낸다. 해안 절벽과 짙푸른 파도, 검은 현무암 해변이 어우러져 여름 달력 사진에 어울릴 법한 풍광을 완성한다. 짭짤한 바닷바람을 맞으며 엉알길을 걷다 보면 일제강점기에 절벽을 뚫어 만든 갱도진지와 ‘녹고의 눈물’이라 불리는, 샘물이 똑똑 흘러나오는 절벽 지형을 만날 수 있다.

안내사 해설 시간 9am~4pm, 064 772 3334, 제주시 한경면 고산리 3674-7.


파밭 앞 미니멀리즘 아파트

청수리 아파트

청수리 아파트는 투숙객 간의 교류를 위해 건물 전체를 통유리로 마감했다.


숙소 1층의 카페 아파트먼트 커피 옆에 자리한 라운지.


아파트먼트 커피의 오픈 키친에서 핸드 드립 커피를 내리는 엄태준 대표의 어머니.


곶자왈 인근 농촌 마을인 청수리의 파밭 앞에 아파트 콘셉트의 렌털 하우스가 들어섰다. 바로 건축 설계 사무소 이룩에서 디자인을 맡은 청수리 아파트다. 이곳이 빠르게 입소문을 탄 데는 1층의 카페 아파트먼트 커피의 공이 크다. 흰 소파가 늘어선 라운지 공간, 묵직한 목조 테이블, 누군가의 서재에서 옮겨 온 듯한 책상, 탁 트인 오픈 키친 등, 먼지 하나 없고 결벽증에 가까운 미니멀리즘을 보여주는 공간에서 친구에게 자랑할 만한 사진을 찍을 수 있는 것. 메뉴 면면도 훌륭하다. 카페에서 로스팅한 원두를 사용하는 핸드 드립 커피와 매일 직접 내리는 콜드 브루, 맥주와 와인, 잡곡 빵과 무화과 파이 등을 선보인다. 그중 라벤더 라테는 진보랏빛 라벤더 시럽을 넉넉히 뿌리고 콜드 브루 라테를 따른 뒤 말린 라벤더 줄기를 꽂아 내는데, 달콤한 라벤더 향과 진한 커피가 참신한 조화를 이룬다.

청수리 아파트에 투숙하면 아파트먼트 커피를 숙소 라운지로 이용하는 특권을 누릴 수 있다. 기하학적 도형이 그려진 심플한 금속 키를 쥐고 2층으로 향하자. 201호부터 204호까지 아파트 호수처럼 이름을 붙인 객실이 복도를 따라 자리한다. 객실 통유리창 밖으로 펼쳐지는 파밭과 탁 트인 하늘은 선(禪)적인 분위기마저 자아낸다. 아래층 카페를 잠식한 미니멀리즘이 객실까지 그대로 이어지고, 여기에 제주 돌담을 적용해 자연주의적 분위기를 더했다. 주방 겸 식탁 역할을 하는 바에는 무인양품 토스터와 전기 주전자가, 욕실에는 친환경 브랜드 인비아포테케의 어메니티가 놓여 있다. 조식은 아파트먼트 커피에서 제공하며, 양송이 수프와 잡곡 빵, 카야 잼, 핸드 드립 커피로 구성했다. 눈뜰 때부터 침대에 누울 때까지, 명상적이고도 편리한 하루를 보장한다는 얘기다.


1박 15만 원부터(14세 이하 숙박 불가), 조식 사전 신청 필수, 아파트먼트 커피 11am~10pm, 070 4117 4186, 제주시 한경면 청수서2길 96, blog.naver.com/daily_rental_house


제주에 상륙한 뉴욕 할머니표 비빔밥

뉴욕할망

뉴욕할망의 모든 메뉴는 재활용 가능한 테이크아웃 용기에 담아 내준다.


판포리 내륙으로 뻗은 2차선 도로를 달리다 보면 도로변에서 범상치 않은 컨테이너 박스를 마주치게 된다. 올봄에 오픈한 뉴욕식 샐러드 비빔밥 전문점 뉴욕할망은 미국 지방 고속도로 변의 카페테리아를 떠올리게 한다. 야외에 캠핑 체어와 테이블을 비치했고, 가게 안팎을 온통 ‘NEW YORK’ ‘BROADWAY’ 같은 단어를 새긴 엠블럼이나 뉴욕 사진을 담은 액자로 꾸몄다.

뉴욕할망의 이은 대표는 수년간 뉴욕에서 한식 레스토랑 셰프로 일했다. 최근 뉴요커에게 건강식으로 인기를 끌고 있는 샐러드 비빔밥은 밥이 적게 들어가는 대신 로메인, 양상추 등 채소를 풍성하게 얹는 것이 특징. “제주에 어울리게 로메인 대신 양상추와 나물을 넉넉히 넣고, 한국인의 입맛에 맞는 소스를 개발했어요. 밭일하는 분들이 단체로 주문한 적도 있죠.” 이은 대표가 말한다. ‘할망볼’이라 이름 붙인 이곳의 샐러드 비빔밥에는 불고기, 제육, 주꾸미 등의 고명이 올라가는데, 소스보다 식자재 본연의 맛을 살리는 데 주력한다. 초사이언 할망볼은 새콤달콤한 오징어 초무침이 올라가는 여름 메뉴. 주문 방식도 독특하다. 먼저 매장 내의 자판기에서 원하는 메뉴를 골라 계산한 뒤 영수증을 카운터로 가져가면 된다. 조만간 비빔국수 샐러드도 선보일 예정이라고. 해변까지 차로 불과 10분 거리니 테이크아웃해 바닷가에서 즐겨도 좋겠다.


커피 1,000원, 할망볼 8,000원부터, 9:30am~7:30pm, 화요일 휴무, 064 773 2153, 제주시 한경면 대한로 944,

책을 위한 박물관

파파사이트

홍영주 대표가 절판 도서 중 1권인 만화 을 살펴보고 있다.


북 갤러리 파파사이트는 예부터 닥나무가 많기로 유명하던 저지리 입구에 위치한다.


제주현대미술관을 중심으로 갤러리, 공방 등이 흩어져 자리하는 저지리 문화예술인마을. 최근에는 제주도립김창열미술관이 문을 열며 방문객이 늘고 있다. 마을 입구의 파파사이트는 ‘책 전시’라는 독특한 콘셉트의 북 갤러리. 배나무, 목련나무, 허브 등이 자라는 널따란 정원 안쪽에 갤러리 같은 건축물이 자리한다. 과거 박물관 전시 디자이너로 일하던 홍영주 대표는 어렸을 때부터 운명적으로 책에 이끌렸다고 고백한다. “제가 디자인한 전시 중에 책 관련 전시는 유독 기억에 많이 남더군요. 또 책이 사라진다는 사실에 이상하게 마음이 아팠어요.” 애초에 갤러리를 목적으로 설계한 건물이라 실내가 탁 트여 있고, 태권브이를 테마로 한 설치 작품 등 곳곳의 예술 작품이 갤러리다운 분위기를 자아낸다.

파파사이트는 주로 예술과 제주, 순례에 관한 책을 선정하고, 그때그때 화제에 맞춰 책 전시를 선보이기도 한다. 절판되었으나 가치가 높은 책도 부러 소개한다. ‘짝짓기 북 큐레이션’은 장르와 시대에 상관없이 함께 읽기 좋은 책 2권을 선보이는 코너다. 예컨대 크레이그 톰슨(Craig Thomson)의 그래픽 노블 <담요>와 올리버 색스(Oliver Sacks)의 자서전 <온 더 무브>를 나란히 놓는 식. 두 작가는 모두 기독교 가정에서 자랐고 아웃사이더였다는 공통점이 있다. 북 갤러리 옆 카페에서 홈메이드 호두 파이를 먹으며 방금 산 책을 읽어도 좋겠다. 7월 둘째 주에는 마을 내의 다른 문화 공간과 함께 종이 관련 플리마켓을 개최할 예정이다.


커피 3,000원부터, 11am~6pm, 토요일 3pm부터, 일 · 월요일 휴무, 070 4217 5821, 제주시 한림읍 용금로 889, papasite.blog.me

제주 해안선을 따라 섬을 1바퀴를 둘러볼 수 있는 일주도로는 이국적인 풍경을 선사하는 최고의 드라이빙 코스다. 친환경 전기차를 몰고 동쪽에서 남쪽까지 해안과 산간을 넘나들며 아기자기한 마을을 발견해보자.

현지인처럼 머무는 민박집

하도리1091

제주 전통 가옥을 그대로 살린 외관. © 김주원


하도리 1901의 게스트룸. © 김주원


갈릭새우 플레이트. © 김주원


제주국제공항에서 빠져나와 1132지방도를 따라 동쪽으로 향한다. 총 240킬로미터의 제주 해안도로는 일직선으로 쭉 이어지지 않고 11개 구간으로 나뉘어 있다. 따라서 동서일주도로를 따라가다 보면 해안도로로 빠지는 표지판이 곳곳에 눈에 띈다. 자동차를 타고 해안과 산간을 오가는 동안 창밖 풍경은 탁 트인 바다가 바짝 붙어 따라오다가 어느새 신록이 짙은 숲길로 시시각각 변한다. 내비게이션은 때때로 차선이 점점 좁아지고 차 1대 겨우 지나갈 만한 마을 골목으로 안내하기도 하는데, 그럴 땐 의심 없이 따르는 게 좋다. 운이 좋다면 하도리1091처럼 이색적인 공간을 발견하게 될 테니.

제주에 첫발을 디딘 외지인은 대체로 동쪽 마을에 마음을 뺏긴다. 오름과 숲, 바다, 돌담집이 조화를 이루는 이 지역의 마을은 ‘제주스러움’을 가장 잘 간직하고 있다. 특히 구좌읍은 이주민이 일찍이 터를 잡고 카페와 레스토랑, 게스트하우스 등을 열면서 유명해졌다. 업사이클링 건축이 각축전을 벌이듯 옛 가옥과 창고를 개조한 이색 공간이 탄생했고, 주말이면 여행객이 마을 곳곳을 휘젓고 다니는 동네로 변모했다.

서울에서 15년 동안 직장 생활을 한 안태현 씨 부부는 키 작은 돌담집이 옹기종기 모인 구좌읍 하도리에 3년 전 자리를 잡았다. “주변에 특별한 게 없었어요. 외딴 시골 같았죠.” 그가 의연하게 말한다. 해녀가 살았던 제주 전통 가옥은 ‘ㄱ’자 형태로 창고와 집이 분리되어 있었다. 부부가 들어오면서 창고는 식당, 집은 그들의 안식처이자 여행자의 집으로 탈바꿈했다. 하도리1091은 여행객의 동선에서 벗어난 한적한 마을에 홀로 있다. 물론 그 덕에 북적거리는 주문 대열이나 산만함 없이 평화로운 풍경이 펼쳐지는 창가에 앉아 여유롭게 식사할 수 있다. 올리브 오일에 푹 적신 갈릭새우 플레이트는 제주스러운 공간에서 이국적 음식을 내고 싶었던 부부가 고안한 메뉴다. 생활 공간을 나눠 쓰는 민박 또한 부부가 제주에서 꿈꿨던 일 중 하나다. 식당과 바로 붙어 있는 집에는 하루에 손님 1팀만 머물다 갈 수 있는 게스트 룸을 준비했다. 부부가 함께 쓰는 공간이기에 조용히 머물다 가는 손님을 환영한다. 이들의 경영 철칙은 뚜렷하다. 동네 깊숙한 마을까지 애써 찾아온 손님을 위해 정성스레 만든 요리를 대접하고 하룻밤 묵어 갈 수 있는 방을 내주는 것. 현지의 삶을 가까이에서 들여다보고 싶다면, 부부의 후한 인심을 믿고 머물다 가도 좋겠다.


갈릭새우 플레이트 1만7,000원, 숙박 8만 원부터, 12pm~6pm, 064 784 2062, 제주시 구좌읍 하도13길 6, blog.naver.com/zxcv3911

별난 마을 그리고 항구

별방진

별방진 성벽 위에 올라 내려다본 하도리. © 김주원


SNS상에서 제주 사진에 붙는 인기 해시태그 중 하나는 ‘하도예뻐서하도리’다. 하도리 해변으로 가는 해맞이 해안로 방향으로 핸들을 돌리면 그 이유를 알 수 있다. 제주시 김녕리에서 서귀포시 성산읍 오조리까지 조성된 약 27.8킬로미터의 2차선 도로는 이국적인 섬의 매력을 가감 없이 드러낸다. 이른 아침 뻥 뚫린 해안도로를 달리면 붉은 태양이 솟아오르는 장관이 따라붙기도 한다.

바다를 끼고 달리던 차량은 대부분 방파제 위에 걸쳐 있는 ‘Hado’라는 커다란 글자가 보이면 속도를 줄인다. 투박하게 쌓아 올린 듯 보이는 돌담 위에 성큼성큼 올라가 레고처럼 모여 있는 마을을 내다보거나 저 멀리 가없이 펼쳐진 바다를 감상한다. 최근 이곳은 여행객 사이에서 ‘인생 사진’을 남길 수 있는 포토 존으로 인기 높은데, 세월을 깊숙이 들여다보면 하도리의 역사를 품은 상징적 장소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제주에는 고려 때부터 우도에 정박한 왜선의 약탈을 막기 위해 세운 9개의 진이 있다. 별방진도 그중 하나다. 별방은 하도리의 옛 이름. 현재 남아 있는 성벽은 둘레 950미터, 높이 3.5미터의 타원형으로 남쪽에서 북쪽으로 갈수록 낮아진다. 제주특별자치도는 당시 석성을 축조한 방법과 규모를 역사적 자료로 남기기 위해 별방진을 제주기념물 제24호로 보존하고 있다. 군인이 주둔하던 성 안에는 식수로 사용했던 용천수 우물이 여전히 자리한다. 창고와 군사기지가 사라진 자리에는 미로처럼 구불구불한 길 따라 아기자기한 마을이 들어섰다. 성벽 위에 올라서면 색색으로 칠한 지붕이 그림 작품처럼 펼쳐진다. 해안도로에서 우연히 마주치는 풍경치고는 꽤 이색적이라서 성벽을 따라 걷고 항구까지 돌아보려면 오랜 시간을 할애해야 할지도 모른다.


제주시 구좌읍 하도리 3354.

자유로운 영혼의 낭만이 깃든 곳

친봉산장

축사를 개조한 친봉산장 외관. © 김주원


산장의 시그너처 메뉴인 아이리시 커피. © 김주원


붙임성 좋은 강아지 래미. © 김주원


산장지기 김현철 씨. © 김주원


평소 바다보다 산을 좋아하고 캠핑을 즐기는 남자는 제주로 적을 옮긴 후, 고민 없이 중산간 지대인 구좌읍 송당리를 낙점했다. 50년간 마구간으로 사용했던 축사를 뜯어 고쳐 자신이 꿈꾸던 공간을 만들기 위해서다. 손가락이 절단되는 극한 부상까지 입어가며 6개월간 하루도 쉬지 않고 공사한 끝에 탄생한 친봉산장은 제주에서도 유일무이한 곳이다. 산장지기 김현철 씨는 애초에 영화 <인디아나 존스>에 나올법한 트리 하우스까지 구상했다고. 마당에 자리한 비자나무와 창고를 다리로 연결하고, 나무 아래 캠핑장을 만들어 취미가 같은 이들과 자연 속 낭만을 공유하는 꿈을 꾼 것이다. 안타깝게도 공사 중 태풍으로 나무 3그루가 연달아 쓰러지는 바람에 야심 찬 계획은 무산되고 말았지만.

굵은 빗방울을 피해 투박한 손길이 느껴지는 미닫이문을 힘껏 밀고 들어서자 산장의 운치가 극에 달한다. “산장은 비가 올 때 더욱 바쁩니다. 흐린 날에는 비를 피하러, 무더운 날에는 더위를 피하러 오는 곳이죠.” 김현철 씨가 말한다. 송당리는 오름과 숲으로 둘러싸여 바람이 많이 불고 기온이 다른 지역보다 2~3도 정도는 낮아 여름에 특히 서늘하다고. 그가 토치를 이용해 카페 곳곳에 놓인 양초에 불을 붙인다. 친봉산장에는 그의 취향이 오롯이 깃들어 있다. 한쪽 벽에 매일 타고 다니는 빈티지 바이크와 어릴 적부터 모아온 기타가 전시품처럼 자리한다. 15년간 수집한 가구와 소품은 곳곳에 펼쳐두었다. 마치 서부영화 세트장에 들어선 것처럼 볼거리가 무궁무진하다. 압권은 화장실 천장에 만든 다락방인데, 그는 실제 산장에서 숙식을 해결하며 밤낮없이 손님을 맞이한다. “산장에는 항시 주인이 있어야죠. 벽난로를 끄고 저마저 빠져나가면 산장의 의미가 사라져요.” 김현철 씨가 힘주어 말한다. 산장에 잠시 머무는 사람들은 주인장이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직접 배워와 내리는 아이리시 커피를 홀짝이거나 벽난로에 바짝 붙어 수다를 떤다. 주방에서는 커다란 냄비에 비프스튜가 보글보글 끓고, 친봉산장의 마스코트 강아지 래미가 손님들 사이를 어슬렁거리며 재롱을 부린다. 이곳의 시간은 바깥보다 한 템포 느리게 천천히 흐르고 그 틈엔 낭만이 가득 들어찬 것 같다.


아이리시 커피 1만 원, 11:30am~10pm, 수요일 휴무, 010 5759 5456, 제주시 구좌읍 중산간동로 2281-3, 인스타그램 @jeju_deerlodge

미감이 넘치는 창고

달리센트

달리센트에는 감귤 저장 창고의 옛 모습이 남아 있다. © 김주원


양효신 씨가 직접 고른 다양한 소품들. © 김주원


종달리를 여행할 때는 차를 잠시 세워두고 구불구불한 골목을 천천히 걸으며 여행하길 권한다. 제주 동쪽 끝에 자리한 종달리는 지미봉을 중심으로 이루어진 마을로, 주변에 5개의 오름이 에워싸고 있다. 본래 제주 최대의 소금밭이 있었고 철새가 머무는 종달리 바다와 우도로 향하는 항구도 자리한 동네다.

종달리 출신의 양효신 씨가 지난해 문을 연 달리센트에 들어서면 사방에 뚫어놓은 창으로 지미봉, 우도, 일주도로가 그림처럼 드리운다. 잡지 에디터 출신의 그녀는 서울 생활을 접고 제주로 내려와 자신이 자란 섬을 다시 한번 천천히 둘러보았다고 한다. 누구보다 발 빠르게 트렌드를 좇았던 감각을 발휘해 1년 동안은 인근에 새로 생긴 카페와 레스토랑, 숍을 제일 먼저 섭렵했다고. “남의 공간을 둘러보면서 자연스럽게 제 공간을 구상하게 되었죠.” 양효신 씨가 말한다. 애초에 크기나 위치는 그녀에게 중요치 않았기에 마을에 외딴섬처럼 자리한 감귤 저장 창고를 택했다. 할아버지 방에서 떼 온 창틀, 어머니가 쓰던 고가구, 그동안 자신이 모아온 소품으로 꾸민 달리센트는 허름한 외관과 달리 이국적인 분위기가 물씬 풍긴다.

오래된 철문을 밀고 들어오는 순간부터 제주스러움이 모두 사라지길 바랐다는 양효신 씨의 의도가 살아 있다. 달리센트에서는 양효신 씨가 각국에서 직접 공수해온 그릇과 디퓨저, 캔들, 문구류 등을 판매한다. 손수 모은 컬렉션답게 그녀는 모든 물건에 애정을 담아 손님에게 권한다. “전에는 항상 새로운 공간을 찾아다니기만 했는데, 지금은 제 취향이 담긴 곳으로 사람들이 찾아온다는 게 기분 좋아요.” 양효신 씨가 수줍게 웃으며 말한다. 여기서 쇼핑 팁을 건네자면, 달리센트에는 새로운 물건이 시도 때도 없이 등장하기 때문에 특별한 셀렉션을 ‘득템’하기 위해서는 꾸준히 그녀의 인스타그램을 들여다보는 게 유리하다.

영업시간과 휴무일은 매일 상이하며, 인스타그램으로 공지한다. 


제주시 구좌읍 종달리 1991, 인스타그램 @dalriscent_official

한낮의 피크닉 라운지

행온

숲에 둘러싸인 행온의 피크닉 존. © 김주원


행온 입구에 들어서면 이태원이나 청담동의 라운지 바가 연상되는 모던한 인테리어가 우선 돋보인다. 그리고 뒷마당으로 가면 이곳에만 있는 특별한 피크닉 존이 나타난다. 1년 전 제주에 내려와 행온을 손수 꾸민 윤정근 씨는 미국 포틀랜드를 여행하며 창고를 개조한 바에 깊은 인상을 받았다고 한다. 제주의 레스토랑과 카페 대부분 일찍 문을 닫다 보니 나이트라이프를 즐길 수 있는 ‘어른의 공간’을 만들고 싶었다. “행온을 술만 파는 바로 한정 짓고 않고 이야기를 나누면서 취향을 공유하는 복합 문화 공간으로 꾸려나갈 예정이에요.” 혹자는 행온에 들어서면 아직 공사가 덜 끝난 것으로 착각하기도 한다.

제주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아기자기한 소품이나 장식은 일체 배제한 실내는 텅 비어 보이기도 하니까. 애초에 윤정근 씨는 행온을 파티, 전시, 공연, 웨딩 등 다양한 이벤트 장소로 확장하고 싶었기에 거추장스러운 장식을 모두 거둬냈다. 필요에 따라 다른 공간으로 변신할 수 있도록 여지를 둔 셈이다. 대신 뒷마당의 피크닉 존만큼은 감각적인 솜씨를 맘껏 뽐냈다고. 하얀 천을 드리운 나무 덱에 피크닉 매트를 깔아 놓은 뒷마당에서는 샴페인과 디저트가 담긴 피크닉 박스를 옆에 끼고 하루 종일 망중한을 즐길 수 있다. 주인장이 직접 개발한 코툰캔디 샴페인은 솜사탕에 드라이와인을 부어 먹는 이곳의 시그너처 칵테일. 꿀과 견과류를 곁들인 브리치즈 플레이트와 함께하면 한낮의 피크닉 분위기가 배

코툰캔디 샴페인 2잔 1만4,000원, 12pm~10pm, 화 · 수요일 휴무, 제주시 구좌읍 행원로 151, 인스타그램 @hang_on_jej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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