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학의 법칙들‘은 의학은 과학일까라는 물음에서 시작한다. 저자가 생각하기에 과학의 필요조건 중 하나는 보편적 특성을 기술하는 법칙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의학에는 각각의 사례들을 설명하기 위한 개별적인 규칙이 있을 뿐, ‘의학의 법칙‘이라고 부를만한 거창한 원리가 존재하지는 않는다. 의학이 과학임을 믿어 의심치 않았던 저자는 전공의 시절부터 의학의 법칙을 찾기 위한 노력을 멈추지 않았고, 마침내 법칙을 찾았다며 이 책을 통해 의학의 3법칙을 공개한다.
1법칙 - 강력한 직관은 근거가 미약한 검사보다 훨씬 힘이 세다
과학기술이 비약적으로 발전했지만 진단을 위한 검사들은 여전히 불완전하다. 모든 검사에는 위양성과 위음성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위양성이란 건강한 사람임에도 질병이 있다는 잘못된 결과가 나오는 것을 말하며, 위음성이란 질병이 있는 환자임에도 이상이 없다는 결과가 나오는 오류를 말한다.
특정 질병, 예컨대 에이즈의 유병률이 0.05%이고 에이즈 검사의 위양성률이 1%라고 가정해보자. 역으로 생각하면 99% 정확도를 자랑하는 정확한 검사이지만 이 검사에서 에이즈가 있다고 진단된 사람 중 진짜 에이즈 환자는 5%에 불과하다. 어처구지 없게도 검사가 틀릴 확률이 95%라는 것이다.
이때 필요한 것이 사전지식과 직관으로 고위험군을 선별하는 과정이다. 의사는 성생활, 주사기 사용여부, 가족력 등을 문진하여 에이즈 고위험군을 선별해낼 수 있다. 만약 선별된 고위험 집단의 유병률이 100명 중 19명 수준이라면 검사에서 양성으로 나온 사람 20명 중 1명만이 위양성 환자가 된다. 별거 아닌 것 같은 의사의 문진이 검사의 정확도를 95%로 수직상승 시킨 것이다. 각종 검사의 비중이 높은 반면 의사의 진료는 3분이 채 되지 않는 우리나라의 현실에서 특히나 짚어 봐야할 대목이다.
2법칙 - 정상적인 것들은 규칙을 가르쳐준다, 하지만 법칙을 가르쳐주는 것은 예외들이다.
어떠한 신약이 45명의 방광암 환자 중 단지 1명에게만 효과가 있었다면 대부분의 경우 그 약은 폐기처분된다. 하지만 어떤 의사는 그 예외적 1명에게 주목하여 연구를 계속한 끝에 특정한 유전자 변이가 있는 방광암에 효과가 있는 약을 개발할 수 있었다. 뒤돌아 생각해보면 그 1명은 예외적 사례가 아니라 전혀 다른 형태의 방광암에 걸린 환자였던 것이다. 2법칙이 적용되는 이러한 사례들은 의학이 아직 완성되지 않았으며 언제든지 변하고 수정될 수 있는 학문임을 상기시킨다.
3법칙 – 의학적으로 완벽한 모든 실험에는 완벽한 인간적 편향이 끼어든다.
의학연구이 중요한 특징은 연구의 대상이 수동적인 실험 참여자가 아니라 능동적인 주체라는 것이다. 실험용 쥐는 실험에 참여하든 참여하지 않든 똑같은 쥐이지만, 환자는 실험에 참여하는 순간 누구도 예상치 못한 반응을 보이곤 한다.
유방암의 원인을 밝히기 위한 연구의 일환으로 정상인과 유방암환자에게 평소 식습관을 물어본다고 해보자. 유사한 식단의 음식을 먹어왔다고 하더라도 정상인에 비해 유방암환자는 고지방 식품, 인스턴트 음식 등을 자주 섭취한다고 응답할 가능성이 높다. 이들은 무의식적으로 자신의 암의 원인을 찾으려는 성향이 있기 때문에 고지방 식품을 먹었던 사실을 더욱 선명히 기억해내는 것이다. 각종 편향들을 피하기 위해 저자는 의사들이 질병 사냥꾼이 아닌 편향 사냥꾼이 되어야 한다고 지적한다.
‘의학의 법칙들‘은 200페이지도 안 되는 짧은 책이지만 전혀 가볍지 않은 책이기도 한다. 짧은 분량 속에 다양한 내용들이 밀도 있게 가득 차있기 때문이다. 책 속에는 의학적 내용 뿐 아니라 하이젠베르크의 불확정성 원리. 베이스의 통계론 등 다른 학문 분야의 사례들이 제시되어있어 더욱 흥미롭게 읽힌다.
이제 첫 질문으로 돌아가 보자. 그렇다면 ‘의학의 법칙‘들은 의학이 과학임을 입증해주는 것일까?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사실 법칙이 존재한다고 해서 그것을 과학이라고 하지는 않는다. 가령 하나님은 전지전능하며 무한히 선하다는 법칙이 있다고 해서 종교를 과학으로 생각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어쩌면 의학의 법칙을 찾기 위해 애썼던 저자의 노력은 애초에 헛된 시도였을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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