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도와 마쓰시마 - 송도의 '송도' 는 일제식민잔재


▲ 경제자유구역으로 조성 중인 '송도국제도시'의 전경 ⓒ 인천일보

인천광역시가 지난 6월 15일 행정자치부의 승인을 얻어 연수구 앞 갯벌을 매립하여 조성중인 신도시의 법정동 명칭을 '송도동'으로 확정했다. 시는 그 명분으로 첨단도시로서의 브랜드 가치와 대내·외적인 인지도가 높기 때문에 관습적으로 불러왔던 '송도(松島)'라는 지명을 그대로 확정하게 되었다고 한다. 

그러나 이 지명은 일본제국주의 식민통치의 대표적인 잔재다. 

'마쓰시마'라는 일본 지명의 한자표기인 '송도(松島)'는 일제가 조선을 강점한 이후 의식적으로 사용하기 시작한 '언어의 쇠말뚝'이다.

이 지명의 연원인 '마쓰시마(松島)'는 일본 미야기 현 중부 센다이만 연안에 산재한 크고 작은 260여 개의 섬들을 총칭하는 지명이다. 계절에 따라 그 아름다움이 변화무쌍하여 일본 삼경(三景)의 하나로 꼽히는 '마쓰시마'는 이를테면 우리나라의 금강산과 같은 일본인이 자랑하는 명소이자 국가 상징에 버금가는 곳이다.

이곳에는 일본 선종 사찰의 하나인 '즈이간지' 절(瑞巖寺)이 있을 뿐만 아니라 일본의 국보와 중요문화재가 산재하고 있으며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유적 간란테(觀瀾亭)까지 보존되어 있다(<日本地名大百科>, 小學館, 1996, p.1065).
 

▲ 일본 마쓰시마에 있는 토요토미 히데요시의 유적 '간란테'

ⓒ 일본관광진흥기구


이 일본인들이 좋아하는 명승의 지명을 따서 동북아의 관문도시를 표방한 신도시에 붙일 수는 없다. 조선시대의 고지도나 읍지를 찾아보아도 인천 지역의 지명에 '松島'란 지명은 찾을 수 없기 때문이다.

특히 현재'송도'라고 불리는 지역은 섬도 아닌 뭍에다 붙인 억지 지명이다. 일본 제국주의 세력은 조선을 강점한 이후 저들의 명승지인 '松島'라는 지명을 여러 곳에 마구 갖다 붙였다. 1913년 부산에서 일본 거류민들이 '송도유원주식회사'를 설립하고 부산시 서구 진정산 동쪽 해변을 송도해수욕장으로 개발하면서 이 명칭이 처음 사용된 듯하다.

포항에서는 일본인 지주 대내치랑(大內治郞)이 분도(分島)의 백사장을 대여받아 소나무를 심어 가꾸더니 1920년대 들어서는 분도라는 고유지명 대신에 아예 '송도'로 지명을 바꾸었다고 한다. 1931년 이곳에 해수욕장이 개장하면서 오늘에 이르고 있으니, 포항 '송도해수욕장'이 바로 그곳이다.

인천의 '송도유원지'도 마찬가지다. 국내에서 처음으로 인공백사장이 만들어져 널리 알려졌던 '송도유원지'는 1937년 일본 자본인 동경철도주식회사가 경기도의 미곡을 수탈하고 일본인의 내륙 진출영역 확대를 위해 부설한 수인선 개통과 함께 새로 개설한 유원지다.

1936년 4월 12일 200만원의 자본금을 가지고 창립총회를 개최한 '송도유원주식회사'는 부천군 문학면 옥련리 일대를 '송도'라 부르며 50만평의 부지에 해수풀과 조탕·식탕·보트장·아동유희장·경마장·스케이트장 등을 갖춘 근대식 유원지로 개발하여 1937년 7월 20일 정식 개장하였다(<동아일보> 1936. 4. 15 / <매일신보> 1937. 7. 4).

그런데 송도유원지의 핵심시설인 송도해수욕장이 개설된 곳은 <인천부읍지>에 기록되어 있는 능허대 유적이 있는 곳이다. 백제가 인천 지역을 통해 중국과 통교할 때 드나들던 해안이 바로 능허대였으니 일제가 제작한 송도해수욕장 사진엽서는 유일하게 남은 능허대 유적의 옛 모습이기도 하다.

▲ 백제 유적지인 능허대를 일제가 유원지로 개발한 송도해수욕장

ⓒ 이희환
그러나 송도유원지가 생길 무렵인 1930년대 중반 이전까지 발간된 각종 지도에서도 '송도'라는 지명은 보이지 않는다. '송도'가 지명으로 처음 나타나기 시작한 것은 바로 유원지 조성 무렵부터다. 그러니 인천의 '송도'라는 지명은 총독부의 행정기관인 인천부까지 나서서 심어놓은 노골적인 '언어의 쇠말뚝'이었다. 1936년 10월 인천부의 행정구역을 확장하면서 부천군의 일부였던 옥련리를 인천부에 편입시키고 그 지명을 '송도정(松島町)'이라 바꾼 것이다. 개통한 수인선 인근 역명이 '송도역'으로 되었음은 물론이다.

'송도'라는 지명에 얽힌 역사적 실상이 이러함에도 불구하고, 이 오욕의 지명을 새로 조성하는 국제도시의 법정동 명칭으로 그대로 사용하는 것이 과연 타당한가? 일본 시마네 현 의회가 2월 22일을 '다케시마(竹島)의 날'로 정하고 일본 위정자들까지 나서 독도를 자기네 땅이라고 우기고, 역사를 왜곡한 우익 교과서를 둘러싸고 치열한 역사전쟁이 벌어지고 있다.

이런 판국에 그들이 심어놓은 '언어의 쇠말뚝'을 대한민국 정부가 국책사업으로 추진하는 '경제자유구역'의 법정동 명칭으로 사용해서야 되겠는가.

▲ 해방직후 인천지명위원회의 왜색 지명 일소를 보도한 <대중일보> 1945년 12월 23일자 기사

ⓒ 이희환
8·15 해방 직후인 1946년 인천시 지명위원회가 왜색 동명을 우리말로 고치면서 '송도정'을 '옥련동'으로 바꾸었다(<대중일보> 1945. 12. 23). 그러나 오늘날까지도 '송도'란 지명은 우리의 의식과 관습 속에 그대로 살아 있어서, '송도유원지'에서 '송도'지역으로 그리고 이제는 '송도국제도시'와 '송도동'으로 되살아나고 있다.

지명에는 역사와 관습, 생활이 깃들기 마련이다. '송도'라는 지명이 광복 60년이 되도록 살아 있는 것은 식민지배의 왜곡된 역사가 아직도 청산되지 않고 살아 있음을 의미하며, 이를 청산하지 못하고 '브랜드 가치'만을 좇는 우리 시대의 무지몽매한 타성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것이다.

잘못된 것을 알았다면 빨리 고쳐야 한다. 그리고 법정동 신설을 추진하는 바로 지금이 그 기회다. 천혜의 갯벌을 매립하여 외국 자본에 봉사하고자 건설하는 연수구 앞 신도시가 과연 장밋빛 선전대로 귀착될 것인지도 걱정이다. 하지만, 그 지명마저 오욕의 지명인 '송도'로 타락해서는 안 된다. 그 일대를 지칭하는 고유의 지명으로 '먼우금'이라는 아름다운 지명이 있다. 이를 포함하여 인천시는 전문가에게 묻고 전체 시민여론과 '시지명위원회'의 검토를 거쳐서 국제도시를 지향하는 이곳의 지명을 슬기롭게 다시 결정해야 할 것이다.

이 기회에 일제가 박아놓은 '언어의 쇠말뚝'을 뽑아내는 일을 비단 인천의 '송도동'이라는 법정동 명칭에 국한하지 말고 전국으로 확대해야 한다. 좀더 정교하고 치밀하게 조사해 부산, 포항의 유원지명에 박혀 있는 '송도'가 일본세력이 박아놓은 '언어의 쇠말뚝'이라면 이 또한 올해 8·15를 계기로 뿌리 뽑아야 할 것이다.

지난 2월 말 녹색연합이 발표한 백두대간의 '창지개명(創地改名)' 조사에서 드러났듯이 지천에 식민잔재가 남아있다. 이 기회에 전국에서 민관이 합동하여 식민통치의 의식잔재인 일제 지명을 조사하여 바로 잡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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