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천 영화] ‘옥자’ 슈퍼돼지의 운명

감독: 봉준호

출연: 안서현, 틸다 스윈튼, 제이크 질렌할, 폴 다노, 변희봉, 스티븐 연, 릴리 콜린스, 최우식
장르: 액션, 어드벤처, 드라마
상영시간: 2시간
개봉: 2017년 6월 29일
관람등급: 12세 이상 관람가


NETFLIX 제공

‘살인의 추억’, ‘괴물’을 연출한 봉준호 감독의 작품이 국내에서 이만큼 ‘논란’을 불러일으킨 적이 있었나 싶다. 온라인 동영상 스트리밍 서비스 기업 넷플릭스의 제작 지원을 받아 완성한 영화 ‘옥자’가 논란의 중심에 섰다. 극장 개봉과 동시에 스트리밍 서비스를 시작하는 제작사 넷플릭스의 정책 때문에 국내 3대 멀티플렉스 체인에서 ‘옥자’를 보이콧한 것이다. 그 여파로 대중들의 뇌리에서 잊혀져 있던 소규모 개인 극장들이 주목 받게 된 웃지 못할 일도 벌어졌다.

‘옥자’의 극장 개봉 및 스트리밍 서비스 개시 후 2개월이 지났다. 현재 ‘옥자’를 상영하는 극장은 극소수이고 극장에서 ‘옥자’를 관람한 누적 관객은 약 30만 명 선이다. 아마 많은 이들은 스트리밍 서비스를 통해 봤을 것이라 예상된다. 온전한 창작의 자유를 보장받기 위해 넷플릭스의 지원을 받았다는 봉준호 감독은 이 영화를 통해 무엇을 말하고 싶었을까.

(*아래에는 영화 ‘옥자’에 대한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 산골 소녀 미자와 슈퍼돼지 옥자
 


왼쪽이 슈퍼돼지 옥자, 오른쪽이 산골 소녀 미자 - NETFLIX 제공

뉴욕으로부터 멀리 떨어진 한국 어느 지방의 깊은 산골. ‘옥자’라는 이름의 슈퍼돼지를 키우는 소녀 미자(안서현 분)와 할아버지 희봉(변희봉 분)이 산다. 옥자는 글로벌 기업 ‘미란도 그룹’에서 진행하는 ‘슈퍼돼지 프로젝트’에 선정된 26마리의 돼지 중 한 마리다. 미자는 그런 옥자와 10년 간 동고동락하며 때로는 친구처럼, 때로는 가족처럼 지낸다.

어느 날, 미란도 그룹의 마스코트인 동물학자 조니 박사(제이크 질렌할 분) 일행이 찾아와 옥자의 상태를 검사하고, 미자가 부모님의 묘소에 다녀온 사이 옥자는 그들과 함께 사라진다. 커다란 상실감에 빠진 미자는 그날 밤으로 산골에서 내려와 서울로 떠난다.

미란도 한국 지사를 찾아간 미자는 옥자를 싣고 공항으로 떠나는 트럭의 뒤를 쫓는다. 갑작스레 등장한 ALF (Animal Liberation Front, 동물 해방 전선)의 도움을 받아 미자는 옥자와 재회한다. 그러나 ALF는 옥자를 미란도 그룹의 실험실로 보내 그곳의 끔찍한 실태를 고발하고자 옥자를 다시 미란도 그룹에 넘기고, 옥자를 되찾지 못한 미자는 미란도 그룹의 CEO 루시 미란도(틸다 스윈튼 분)의 선택을 받아 뉴욕으로 떠난다. 미자는 먼 타지에서 가족 같은 옥자를 되찾기 위해 애쓴다.

# 봉준호 감독의 글로벌 프로젝트
 


영화 ‘옥자’의 봉준호 감독과 출연진, 제작진 - NETFLIX 제공

‘옥자’에는 봉준호 감독의 전작 ‘설국열차’에서 이미 호흡을 맞춘 바 있는 틸다 스윈튼을 비롯해, 제이크 질렌할, 폴 다노, 릴리 콜린스 등 할리우드의 내로라하는 배우들이 여럿 등장한다. 그뿐만 아니라 브래드 피트가 제작에 참여하고, 거장 감독들과 작업해온 촬영감독 다리우스 콘지(‘세븐’, ’미드나잇 인 파리’, ‘이민자’ 등)가 합류한 글로벌 프로젝트이다. 무엇보다 특기할 만한 사실은, 앞서 언급한 것처럼 넷플릭스가 영화의 제작비(한화 약 560억 원) 전액을 투자하면서 감독에게 100% 창작의 자유를 줬다는 점이다.

전작 ‘설국열차’가 미국 배급권을 가진 웨인스타인 컴퍼니로부터 촬영된 분량 중 30분 정도를 편집 당할 뻔했던 아찔한 기억 때문인지, 봉준호 감독은 제작비를 지원하면서도 감독의 최종편집권을 절대적으로 보장하는 넷플릭스와의 작업에 매력을 느낀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공장식 축산의 생태계를 고발하는 ‘옥자’가 영화 산업의 생태계를 교란시킨다는 논란에 휩싸이기도 했다. 관객들은 멀티플렉스의 보이콧으로 극장에서 ‘옥자’를 관람할 기회를 거의 박탈당한 셈이지만, 앞으로의 영화 관람 문화에 대한 사회적 논의를 촉진시키기도 했다. ‘옥자’는 여러 가지로 이야깃거리가 많은 작품이다.

# 이미지, 미디어, 자본주의
 


NETFLIX 제공

‘괴물’, ‘설국열차’에서 계급 사회가 낳은 부조리를 비꼬았던 봉준호 감독은 이번 영화에서 자본주의 사회의 비윤리적인 문제에 집중한다. 21세기를 선도하는 글로벌 기업의 양면성과 공장식 축산업의 비윤리성을 한 산골 소녀의 시선에서 묘사한다.

애플의 CEO 스티브 잡스가 처음으로 아이폰 출시를 발표하던 2007년, 미란도 그룹의 CEO 루시는 슈퍼돼지 프로젝트에 대한 첫 프레젠테이션을 진행한다. 루시가 발표하는 슈퍼돼지 옥자의 “기적 같은”  탄생 스토리는 이렇다. 미란도 그룹은 칠레의 한 농장에서 기적적으로 발견한 슈퍼돼지를 길러 “강압적이지 않은 자연 교미 방식으로”  26마리의 새끼를 번식시켰다. 그리고는 미란도 지사가 있는 해외 26개국의 현지 축산농민들에게 한 마리씩 분양해 최고의 슈퍼돼지를 키워내는 우승자를 가리는 콘테스트(Contest)를 실시한다.

깊은 산골에서 슈퍼돼지 새끼 중 한 마리인 옥자를 10년 간 키운 미자도 이 이야기를 철석같이 믿는다. 하지만 ALF의 리더인 제이(폴 다노 분)의 말을 빌리면 미란도 그룹의 이야기는 순전히 거짓말이다. 옥자는 미란도 그룹의 실험실에서 유전자 조작 실험을 통해 태어났다. 유전자 조작 식품(GMO)을 극도로 기피하는 사람들을 속여 자사의 돼지고기 식품 판매를 늘리기 위해 CEO 루시가 슈퍼돼지 탄생 스토리를 마케팅의 일환으로 기획한 것이다.

루시는 이것이 “선의의 거짓말” 이라고 합리화한다. 기업의 이미지가 기업의 생존을 판가름하는 21세기 자본주의 사회에서 기업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는 선택이라는 논리다. 슈퍼돼지의 친근한 이미지는 그 탄생 스토리의 진위 여부가 드러나지 않고 뉴스, 방송, SNS 등 각종 미디어를 타고 전 세계로 전파된다.


좌: 미자의 캐릭터 포스터 / 우: 루시의 캐릭터 포스터 - NETFLIX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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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자를 찾아 뉴욕으로 온 미자도 미란도 그룹의 드라마틱한 이미지를 만드는 데 이용된다. 미자는 “어리고, 예쁜 여성이자, 친환경적이고, 글로벌” 하기 때문이다. 이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기업과 미디어의 공생관계와 그로 인해 희생당하는 존재를 묘사하는 설정으로, 봉 감독은 미디어에 소개된 후 비극을 겪은 산골 소녀 영자의 이야기에서 모티프를 얻었다고 한다. 미란도 그룹의 마스코트로 이용당하고 결국 타락하는 동물학자 조니 박사도 희생양으로 그려지는 것 역시 유사한 맥락이다.

루시는 영화 후반부에 ALF의 고발로 CEO 자리에서 내려오지만, 루시를 대신하는 사람으로 그의 쌍둥이 언니인 낸시가 CEO 자리에 오른다. 미란도 그룹의 새로운 시대를 열겠다며 친근한 이미지를 전면으로 내세우던 루시와, 제품 판매는 오직 가격이 결정한다고 믿는 철저한 자본주의자 낸시는 서로를 적대한다. 하지만 틸다 스윈튼이 1인 2역을 맡아 루시와 낸시는 사실상 하나의 몸체를 구성하는데, 이는 자본주의의 양면성을 은유하는 것으로 해석해 볼 수 있다.

# 자본주의 사회에서 육식을 한다는 것


NETFLIX 제공

뉴욕으로 끌려온 옥자의 시선에서 화려한 도시는 곧 동물들의 묘지로 묘사된다. 옥자가 끌려가는 유전자 조작 실험실과 도살장은 잔혹한 포로 수용소를 연상케 한다. 옥자와 비슷한 처지의 슈퍼돼지들은 한 마리씩 도살장으로 끌려가 머리에 총을 맞고, 부위별로 분해된다. 도살을 집행하는 건 모두 외국인 노동자들이다. 극중 희봉의 대사처럼 그것이 곧 옥자가 (돼지들이) “타고난 팔자” 인 것일까.

인터뷰에 따르면, 봉준호 감독은 영화를 준비하면서 프로듀서와 함께 미국의 거대한 축산 공장을 방문한다. 하루에도 수천, 수만 마리가 도살당하는 그곳에서 충격적인 장면을 목도한 봉 감독은 한 달 정도 고기를 입에 대지 못했다고 한다. 비록 12세 관람가인 ‘옥자’ 속에선 그 모습이 비교적 순화되어 있지만 우리가 먹는 소고기, 돼지고기가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동물들을 대량 생산 시스템에서 제품으로 생산하는 것이 옳은 일인지 질문을 던지고 싶었다고 한다.

‘옥자’가 고발하는 공장식 축산업의 문제는 동물권(Animal rights)에 대한 현실적인 이슈이면서 다른 사안과 연결지어 해석할 수 있는 문제다. 현재 전국적으로 비상이 걸린 살충제 계란 파동이나, ‘용가리 과자’, 익히지 않은 햄버거 패티 문제 등 자본주의 시스템에서 생산⋅판매되는 식품의 안전성과 생산 과정의 윤리성이 계속해서 도마 위에 오르고 있다. 비단 식품만이 문제가 아니다. 비윤리적으로 사육⋅번식되어 애완견으로 판매되는 개 사육 농장의 끔찍한 실태나, 더 나아가 인간의 삶과 존엄성을 빼앗은 가습기 살균제 사건과 발암물질이 포함된 생리대도 자본주의 사회의 윤리성을 의심하게 만드는 심각한 문제다.

# 어린 아이의 시선


NETFLIX 제공

‘옥자’는 봉 감독이 처음으로 찍은 디지털 영화이자, (다른 작품에도 어린 아이들이 자주 등장하기는 하지만) 어린 아이의 시선으로 만든 첫 번째 영화이면서, 자칭 ‘사랑 영화’다. 할아버지 희봉을 비롯한 세상 사람들이 모두 ‘가축’으로 취급해도, 미자는 옥자라는 생물을 ‘가족’처럼 아끼고 사랑한다.

비록 미자가 밥상 위에 계란을 올려놓아도, 닭백숙을 좋아하더라도, 옥자는 미자에게 ‘황금돼지’와는 바꿀 수 없는 소중한 존재다. 앞서 말한 것처럼 산골 소녀 영자의 모티프 때문에 영화 속 미자를 소녀로 설정한 것도 있겠지만, 아이의 시선에서 현대 자본주의 사회의 비정함을 그려내 주제를 극대화시키려는 취지도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영화 말미에서 미자는 미란도 그룹의 도살장에서 옥자를 구출해 간신히 빠져 나온다. 미자와 옥자는 도살장 속에서 죽음을 기다리는 수천, 수만 마리의 슈퍼돼지를 구출할 수 있는 능력이 없다. 하지만 경비들 몰래 간신히 새끼 돼지 한 마리를 구해낸다.

영화 초반에도 주목할 만한 두 가지 장면이 나온다. 깊은 산골에서 감나무에 육중한 몸을 부딪혀 감을 떨어뜨리는 옥자 앞에서 미자는 아직 익지도 않은 감이 떨어졌다고 투덜거린다. 이어 매운탕을 먹고 싶다는 미자를 위해 옥자가 냇가에서 몇 마리의 생선을 잡아 올리자, 미자는 그 중 치어(稚魚)를 골라 다시 냇가에 풀어준다. 봉 감독은 이 지점에서 자본주의의 대안을 발견한다. 인간이 살기 위해 각종 생물을 먹더라도, 생물을 보존하고 존중하는 마음을 담아 딱 이만큼의 윤리적 태도는 지키면서 살자는 것이다.

살충제 계란과 발암물질이 검출된 생리대로 인해 국민들이 공황에 빠졌다. 우리가 정부와 기업들을 믿고 먹거나 사용해온 것이다. 안타깝게도 돌이키기엔 너무 늦어버렸다. 그러나 이때야말로, 그동안 우리들이 살아온 사회의 윤리를 다시금 돌아보는 기회로 삼아야 하지 않을까. 생산과 소비로 압축되는 것이 자본주의라고 해도, 인간성을 상실한 자본주의만큼 무용한(useless) 것은 없다.

관련 키워드 : #추천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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