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IB 제공
두 번째 소주잔이 채워지자 따끈한 소고기 수육과 문어숙회가 먼저 나왔다. 양지 살코기로만 삶은 수육은 두툼한 두부처럼 크게 썰려 있어서 한입에 먹기엔 부담스러웠고, 문어숙회 역시 얇게 저민 지름이 안경알만 했다. 공통점은 부드러움. 수육은 젓가락만 대어도 결 따라 찢어졌고 문어숙회는 날고기인 양 야들야들했다.
또 다른 공통점은 담백함. 둘 다 잡내가 전혀 없었다. 수육과 문어숙회를 절반쯤 비웠을 때, 오목한 일본식 사기그릇에 담겨 나온 칼국수 또한 일품이었다. 굵은 면발과 소고기 고명을 얹은 양념장이 전부인 칼국수의 육수는 고깃국과 문어 데친 국물을 섞은 듯 꽤 진하고도 개운했다. 당일 만든 반죽을 밀어 칼로 썬 면발은 굵기가 제각기여서 그야말로 ‘칼’국수였다. (기계로 뽑은 칼국수와 비교하려고 흔히 쓰는 ‘손칼국수’는 마치 ‘역전 앞’이나 ‘서해 바다’처럼 동어반복이다.)
GIB 제공
첫째, 맛집의 분위기는 간판에서부터 느껴진다. 맛집은 그 유명세가 보통 이삼십 년쯤 되었기에 상호를 써놓은 간판은 구식일뿐더러 낡았다. 간판 형식도 요란하거나 크지 않다. 애써 존재를 알릴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상호 또한 멋 부리거나 작위적이지 않다. 지역명을 접두어로 삼거나 대표 음식을 상호로 삼는 경우가 많다.
둘째, 차림표가 간단하다. 인기 있는 한두 가지 대표 음식이 그리워 입맛을 다시며 손님이 몰리기에 주인장이 준비할 음식 가짓수가 많을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보통은 각각의 메뉴판을 테이블에 내놓지 않고 벽면 한쪽에 메뉴를 몇 줄 써놓은 게 전부다.
셋째, 준비한 만큼만 손님을 받는다. 맛집은 식재료 구입부터 엄선하기 마련이다. 일관된 맛을 내려면 식재료의 품질이 한결같아야 할 것이고 조리 방법도 그럴 것이기에 식재료의 양도 늘 정해져 있을 것이다. 손님 수도 들쑥날쑥하지 않을 테니 하루에 준비할 양을 가늠하기 어렵지 않을 것이다. 당일 준비한 재료를 당일 소진하니 음식은 당연히 신선할 것이다. 식재료 품절과 함께 영업 종료하니 주인장은 일에 덜 지칠 것이다.
그러한 맛집은 그 위치가 외진 곳이어도 맛 자체에 이끌려 손님들은 기꺼이 찾아간다. 비유하자면 맛집은 벌 나비가 아니라 꽃이다. 멀리서도 손님이 맛집의 향기를 맡고 찾아오니 말이다. 그때, 손님의 입맛은 살맛 난다.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