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년의 우울에 대하여 - 록키 발보아(Rocky Balboa, 2006)

노년의 우울에 대하여 - 록키 발보아(Rocky Balboa, 2006)


권순재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2017년 7월 28일



1970년대 미국에 사는 한 가난한 청년이 있었습니다. 그의 인생은 성공과는 거리가 먼 것이었습니다. 가난한 이민자 가정에서 태어난 그는 의료사고로 인해 태어날 때부터 안면신경마비와 구음장애를 앓게 되었으며, 그로인해 친구들로부터 놀림을 당하기 일쑤였습니다. 건강하게 태어난 그의 동생과 끊임없이 비교당하며 그는 집에서도 고독에 시달려야만 했습니다. 그렇게 자라 성인이 된 그에게 세상은 가혹했습니다. 연기에 꿈을 가졌던 그의 커리어는 결코 성공적이지 않았으며 생활고에 시달린 그는 각종 직업을 전전하였습니다.


어느날, 그는 전설적인 복서 무하마드 알리와 무명 복서 척 웨프너의 시합을 보고, 비록 패배하긴 하였지만 끝까지 투지를 잃지 않는 무명복서의 모습에 감동을 받아 권투를 주제로 한 영화의 시나리오를 쓰게 됩니다. 그리고 그가 직접 주연을 맡은 이 영화는 어마어마한 인기를 구가하게 되었으며 그는 일약 스타가 됩니다. 벌써 눈치채셨겠지만 이 이야기는 영화배우 ‘실베스터 스탤론’과 그의 영화 ‘록키’에 대한 이야기였습니다.


영화의 제목이기도 한 등장인물 ‘록키’는 실베스터 스탤론의 페르소나 그 자체입니다. 궁핍하고 미성숙한 29세의 아마추어 무명 복서가 세계 챔피언 앞에서 피투성이가 되가며 끝까지 버텨내는 불굴의 의지에, 그리고 퉁퉁 부은 얼굴로 상처 입은 짐승처럼 포효하면서도 자신의 연인의 이름을 어린 아이처럼 불러대는 그 내면의 나약함과 상처에, 사람들은 자신의 모습을 투영하며 열광하였습니다. 그렇게 실베스터와 록키는 남자의 상징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영광의 시간을 뒤로 하고 세월은 흘러갑니다.


• ‘록키 발보아’, 40년의 세월에 바치는 헌사


시대의 영웅이었던 록키는 이제 아내의 이름을 딴 작은 레스토랑을 경영하며 조용히 살아갑니다. 그가 링에서 애타게 불렀던 아내는 병으로 세상을 떠난지 오래며 평범한 회사원인 그의 아들은 아버지의 후광을 버거워하며 살아갑니다. 그저 평범한 노인이 된 그는 아침에 일어나 애완용 거북이의 밥을 주고 죽은 아내의 묘에 찾아가 우두커니 시간을 보냅니다. 변해버린 것은 록키만이 아닙니다. 사랑했던 아내와의 추억의 거리와 스케이트장은 철거를 앞두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의 친구이자 처남 폴리는 세상을 떠난 여동생에 대한 죄책감을 품고 힘겹게 살아갑

그가 젊은 시절 도와주었던 비행청소년 마리는 미혼모가 되어 홀로 살아갑니다.


이렇듯 변해버린 록키와 그 주변을 통해 영화는 옛날의 관객들을 다시 록키의 세상으로 불러옵니다. 미성숙한 복서의 세상을 향한 고군분투에 록키와 함께 울고 웃었던 관객들은 40년의 세월을 뛰어넘어 록키와 다시 만나게 됩니다. 팬과 영화주인공, 배우가 모두 40년의 나이를 먹어서 말이죠. 그렇기에 이 영화는 실베스터 스탤론이 록키에게, 그리고 자신과 함께 해준 팬들에게 바치는 나이듦에 대한 헌사입니다.


“링에서 내려온다는 것. 자네도 경험해보지 않았나? 그 마음 깊은 곳에서의 울림을.”


영화 록키 발보아 속 록키는 그가 운영하는 음식점에서 그를 찾아오는 손님과 팬들에게 무용담을 들려주며 살아갑니다. 그는 모두가 아는 영웅이며 영광스러운 과거의 추억도 가지고 있습니다. 겉으로는 전혀 부족함이 없지만, 때때로 가슴 속에 풀리지 않는 응어리를 가지고 살아갑니다. 그는 이러한 응어리를 ‘내 안의 괴물’이라 부릅니다. 그 자신조차도 무엇인지 알 수 없는 괴물은 그를 힘겹게 하고 절망스럽게 하고 종국에는 울음을 터뜨리게 만듭니다.


프로이트는 노인은 사고가 경직되었으며 학습 능력이 부족하여 정신분석에 적합하지 않다는 견해를 피력하였습니다(Freud 1953). 하지만 또 다른 정신분석가들은 이러한 주장에 반대하였습니다. 이중 에릭 에릭슨은 초기 성인기까지의 발달로 마무리되는 정신발달의 개념을 생애 전주기로 확장시켰습니다(Erikson 1959). 인생의 단계를 각 단계마다 거쳐야 할 과제에 따라 여덟 개로 나누고 각각의 단계가 단절된 것이 아닌 유기적인 관계라고 생각한 것입니다.(노인정신의학 제 2판, 대한노인정신의학회)


에릭슨은 인생의 마지막인 노년기의 과제를 자아통합성 대 절망감으로 보았습니다. 노년기에 사람의 관심은 미래에서 과거로 옮겨가게 됩니다. 그리고 자신의 생이 가치 있는 삶이었는지를 생각하게 됩니다. 확고한 자아통합을 이룬 사람은 자신의 삶의 가치를 확신하고 세상 속에서 자신의 위치를 인정하게 됩니다. 그렇지 못한 사람은 자신의 삶에 절망하고 스스로의 늙음을 혐오하게 됩니다.


“(록키) 과연 제가 뭘 하고 있는걸까요? 제가 정말로 정면에서 버틸 능력이 아직 있을지도 모르겠고.. 제 아들 또한 이걸 욕심이라고 생각할 것 같아요. 제가 원하는게 뭘까요.. 이런 오랜 술집을 마치 새로 페인트칠하는 그런 마음?”


“(마리) 당신은 원래 말이 별로 없는 분이죠. 항상.. 귀를 기울이거나 지켜보거나. 하지만 당신이 누구인지. 당신 삶을 채우고 있는게 무엇인지.. 우리는 누구나 열정이란 감정을 가지고 살아가지요. 하지만 그것을 쏟아부을 기회는 항상 오는게 아니죠. 이건 당신이 잡은 기회예요. 왜 안돼죠? 이건 당신이 누구인지, 당신의 삶이 어떤 것인지를 스스로 보여주는 것이잖아요. 다른 사람들이 당신을 어떻게 보는가는 중요하지 않아요. 그것이 당신에게 어떻게 보이는가가 문제일 뿐이지요.”


이처럼 노년기의 록키는 자아통합과 절망 사이에서 방황합니다. 마치 지난 세월을 아름답게 회상하다가도 문득 현재의 자신이 아름다웠던 지난날과 너무 동떨어진 것처럼 느껴져 좌절하는 우리들처럼 말입니다. 가슴이 떨려본지 너무 오래되었기에, 옛날의 영광스러운 시절과 현재의 자신이 너무 멀리 떨어진것처럼 느껴졌기에 록키는 두려워진 것일지 모릅니다. ‘어쩌면 나의 모든 인생이 무의미하지는 않았나’ 하고 말이죠. 그렇기에 그는 컴퓨터 시뮬레이션으로 재현된 자신과 세계 챔피언 딕슨의 모의경기를 보고 소년처럼 흥분합니다. 그리고 종국에는 늘 자신을 절망으로부터 구해주었던 권투를 통해 자신의 인생의 의미를 묻고자 합니다.


“제 요점은 전 무언가를 추구하려고 하는데 다들 그것을 탐탁치 않게 여긴단 말입니다.”

링으로 돌아가려는 록키에게 세상의 압박이 다시 시작됩니다. 권투 위원회는 적합한 자격을 가진 록키에게 단지 나이를 이유로 자격을 주기를 꺼려합니다. 그리고 그의 아들은 그를 나잇값을 못한다며 창피해합니다. 그리고 그와 승부를 펼칠 상대는 록키를 진지한 대전상대로 인정하지 않습니다. 어쩌면 영화 속 이 상황은 이미 생명이 끝난 록키 시리즈의 후속편을 만들겠다고 선언했을 때의 사람들이 보냈던 만류와 비웃음과도 닮아있습니다.


모두들 그에게 ‘노인다움’을 강요합니다. 일선에서 물러나 조용히 살아가는 그런 힘없는 노인 말입니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야말로 40년 동안 우리가 열광해오던 록키의 본질이 드러납니다. 바로 세상의 모든 압박에 대한 투쟁 말입니다. 사실 영화 록키는 권투 경기의 승패가 중요한 영화가 아니었습니다. 록키 1편에서 피칠갑을 하며 ‘에이드리언’을 부를 때에도 그는 경기의 승패는 안중에도 없었습니다. 그의 도전은 언제나 상대방보다는 세상의 편견과 모순을 향해 있었습니다.


그는 자신에게 정당한 권리를 주려하지 않는 위원회에게 나이와 상관 없이 자신의 본능에 귀 기울여야 하는 것이 인간의 당연한 권리임을 역설합니다. 그리고 자신의 후광에 짓눌린 아들에게 네가 너무나도 소중하기에, 남들의 목소리가 아닌 자기 자신의 내면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일 것을 충고합니다.


“넌 타인의 시선에 연연하지 않고 네가 되고 싶은 사람이 될 수 있어. 네 가치를 안다면 가서 너의 가치를 쟁취하거라. 하지만 맞을 각오를 해야 해.

그러니 다른 누구 때문에 네가 있고 싶은 데에 못 있게 되었다고 말하진 말거라. 넌 겁쟁이가 아니잖아! 넌 그보다 훨씬 나은 놈이니까!


무슨 일이 있어도 언제나 널 사랑한다. 너는 내 인생의 가장 큰 선물이란다. 하지만 너 자신을 믿지 않으면, 네 삶을 살지 못해.“


그리고 전설적인 배경음악인 <Gonna fly now>와 함께 록키의 도전이 시작됩니다. 비록 스피드는 떨어졌고, 무릎은 몸을 감당하지 못하고 관절염으로 신음하지만, 그는 트레이닝을 소화해 나갑니다. 비록 40년이 흘렀지만 그는 여전히 도전자입니다. 바로 이 시간, 끊임 없는 도전과 마주하는 우리들처럼 말이죠. 세월을 뛰어넘어 같은 장소, 같은 음악과 함께 하는 록키의 도전은 영화팬들에게 잊지 못할 명장면을 탄생시킵니다.


"아버지, 많은 사람들이 아버지를 보고 웃었지만 지금은 아무도 우릴 비웃지 않아요.“

시합 전의 기자회견에서 그의 상대인 세계 챔피언 딕슨은 시합 자체를 불쾌해하며 적당히 봐주면서 할테니 제대로 할 생각은 하지도 말라는 식으로 으름장을 놓습니다. 사실 딕슨에게도 나름의 고뇌가 있습니다. 비록 한번도 진적 없는 무적의 복서이지만 단 한번도 치열한 시합을 보여주지 못한 탓에 사람들은 그에게서 챔피언의 기상을 느끼지 못합니다. 승패보다 과정에 열광하는 사람들을 이해하지 못하는 딕슨은 시니컬하고 긍지없는 복서가 되어갔습니다. 딕슨 입장에서는 옛날 록키의 인기에 기댄 이런 이벤트성인 경기에 불만을 느낄 수밖에 없습니다.


“(딕슨) 시작부터가 끝난 시합 아뇨?”

“(록키) 끝날 때까진 아무것도 끝난게 아니지”

“(딕슨) 무슨 80년대 유행어입니까?”

“(록키) 아마 70년대일거야. 이봐, 챔피언. 자네도 떨리긴 하나?”

“(딕슨) 난 그럴 필요가 없지.”


공이 울리고 이제 록키의 어쩌면 마지막이 될 경기가 시작됩니다. 젊은 딕슨의 맹공격에 맥을 못추는 록키를 보며 다들 2라운드 KO패를 예상합니다. 어쩌면 이 시합에서 록키가 정말 승부를 펼칠거라 기대하는 사람은 별로 없을지도 모릅니다. 사람들은 옛날의 영웅인 록키가 링에 돌아온 것에만 집중합니다. 그들이 원하는건 ‘노인 치고는’ 선방한 록키의 모습이었습니다.

하지만 몇 번을 쓰러져도 다시 일어나는 록키는 마치 강철로 만든 기관차처럼 자신의 복싱을 계속해나갑니다. 점차 경기의 양상은 딕슨에게나, 록키에게나 서로의 펀치를 버텨내는 사람이 승리하는 대등한 난타전으로 바뀝니다. 그리고 나이를 넘어선 두 사람의 투쟁 그 자체에 사람들은 경외심을 느낍니다. 그제서야 사람들은 록키의 나이가 아닌, 록키의 투쟁을 바라보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오만했던 챔피언 딕슨마저도 록키의 투쟁심에 자극을 받습니다.


“(딕슨) 정말 미치게 하네요.”

“(록키) 자네도 마찬가지야.”


마지막 라운드까지 오기와 뚝심으로 버틴 두 사람은 결국, 마지막까지 승부를 내지 못하고 판정에 들어갑니다. 하지만, 록키는 40년전 첫 경기에서 그러하였듯이 판정에 귀 기울이지 않습니다. 그의 투쟁은 남들을 위한 투쟁이 아닌 자신을 위한 투쟁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바로 그 순간, 그는 자신을 그렇게나 괴롭혀오던 내면의 짐승이 사라졌음을 깨닫습니다. 모두가 반대하던 이 경기에서 그는 무엇을 확인하고 싶었을까요? 아마 그는 자신의 전 인생이 사실은 도전의 연속이었고, 그 도전이 지금도 계속되고 있음을 확인하고 싶었는지도 모릅니다. 경기 이전의 그가 자신의 늙음과 흘러버린 세월에 절망하였다면, 경기가 끝난 후의 그는 여전히 도전이 넘치는 자신의 인생에 무한한 감사를 느낍니다. 그렇게 록키는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링에서 내려옵니다.


40년 전 피투성이가 된 얼굴로 '에이드리언'을 불렀던 그 날 처럼, 이번에도 그는 퉁퉁 부은 얼굴을 하고 에이드리언의 무덤을 찾아갑니다. 사랑했던 부인의 무덤 앞에서의 록키의 담담하고 어눌한 고백은 어쩌면 자신의 인생과, 자신과 함께 해준 팬들에게 바치는 감사인사일지도 모릅니다.


“당신알지? 당신 없이는 난 아무것도 못 해냈을 거라는거...

이봐 에이드리언, 우리가 해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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