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게 가장 즐겨 쓰는 애플의 기기를 물으면 단연코 아이패드를 꼽는다. 여전히 주변에서는 이해하기 어렵다는 반응도 있지만, 아이패드에 ‘프로’라는 이름을 붙이면서 아이패드를 더 많이 쓰게 됐다. 거의 하루 종일 끼고 있다는 말이 맞을 것 같다. 그 아이패드 프로가 더 나아진다는 것은 여간 반가운 일이 아니다. 그리고 지금 이 글의 원고를 ‘아이패드 프로 10.5’로 쓰고 있다.
● 아이패드에게 ‘화면 크기’란?
새 아이패드 프로 이야기를 하기 전에 기존 아이패드를 잠깐 돌아보자. 아이패드 프로 9.7인치를 원고 작업에 많이 쓰면서 내내 아쉬운 건 화면 크기였다. 간혹 12.9인치를 보면 확실히 업무에 쓰기 좋았다. 하지만 너무 크고 부담스러웠다. 맥북 대신 아이패드를 손에 쥐는 이유는 아무 때나 갖고 다니면서 원하는 대로 쓸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도 다음에는 12.9인치를 써보는 게 어떨까 하는 고민은 끊이지 않았다. 마치 ‘플러스’를 두고 고민하는 아이폰처럼 말이다.
하지만 아이패드 프로 9.7인치를 선뜻 포기하지 못했던 이유가 두 가지 더 있다. 하나는 ‘애플심’이다. 아이패드 프로 9.7에는 소프트웨어로 구현되는 심(SIM)이 들어 있다. 해외 출장에서 따로 심카드를 구입할 필요 없이 공항에서 간단하게, 그리고 아주 싸게 인터넷 서비스에 가입할 수 있다.
또 하나는 디스플레이다. 아이패드 프로 9.7인치는 DCI-P3 색을 표현한다. 주변 환경에 따라 화면의 톤을 미묘하게 바꾸는 ‘트루톤’ 기능도 있다. 내가 이 디스플레이를 최고로 꼽았던 이유다. 화려한 색을 표현해서가 아니라, 눈을 편안하게 하면서도 정확한 색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 애플은 아이패드의 상징 9.7인치를 왜 내려놓나
하지만 지금은 10.5인치에 만족하고 있다. 화면 크기는 묘하게도 숫자로 느껴지는 것과 다르다. 눈은 간사하다. 10.5인치는 9.7인치에서 답답하던 부분을 딱 적당히 채워준다. 화면 면적으로는 7% 정도 넓어졌다. 크기나 무게 등 손에 쥐었을 때의 느낌도 9.7인치와 크게 다르지 않다. 처음에는 큰 차이가 아니라고 생각했는데 쓸수록 다른 디스플레이라는 느낌이 확실히 든다. 사실 지금 아이패드 프로를 선택하면서 9.7인치와 10.5인치를 고민하는 경우는 없겠지만 제품 크기 때문에 9.7인치를 고집할 필요는 별로 없는 듯하다. iOS11에 화면을 나누어서 쓰거나 다른 앱을 작은 창으로 띄우는 기능이 더해지면서 그 차이는 더 커질 것으로 보인다.
어떻게 보면 애플이 상징적인 9.7인치를 내려놓는 것에 대한 서운함도 있긴 하다. 한결 존재감이 줄어든 7.9인치 아이패드 미니도 어딘가 아쉽다. 하지만 아이패드의 역할은 이제 스마트폰과 확실한 구분이 필요하고, 맥북을 비롯한 노트북과 차별도 필요하다. 시장의 요구에 따라 아이폰의 화면 크기가 달라진 것처럼 쓸모가 달라지고 있는 아이패드의 화면도 9.7인치에 갇힐 필요는 없다. 아니, 복잡한 셈법을 떠나 9.7인치와 10.5인치 아이패드는 기기 크기는 비슷하지만, 화면은 10.5인치 제품이 더 낫다.
사실 이번에 나온 아이패드 프로 10.5와 12.9 화면을 한 번 보면 다른 아이패드가 눈에 잘 들어오지 않는다. 시쳇말로 ‘눈 버린다’는 말이 딱 맞는 것 같다. 화면 주사율 때문이다. 아이패드 프로는 120㎐, 그러니까 1초에 화면을 120번 바꾸어 뿌릴 수 있다. 애플은 여기에 ‘프로모션(ProMotion)’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더 많은 픽셀을 심은 ‘레티나(Retina)’ 디스플레이와 비슷하다.
하지만 레티나 디스플레이가 그저 고해상도 디스플레이가 아니라 기존과 똑같은 화면을 더 높은 해상도로 보여주는 ‘스케일’로 차별화를 만들었듯이, 프로모션 역시 단순히 120㎐ 화면을 보여주는 게 전부는 아니다. 이 화면은 콘텐츠에 따라 24㎐, 30㎐, 60㎐ 등으로 주사율을 바꾼다. 24㎐로 만든 영화를 30㎐나 60㎐로 보면 TV 드라마를 보는 듯한 이질감이 느껴지는데, 그런 부분을 해소하는 것이다.
● 우리가 아이패드, 그리고 아이패드 프로에 원하는 건 뭘까?
프로세서에 대한 이야기는 상대적으로 밀리는 감이 있다. 아이패드 프로는 특별히 성능이 아쉽지는 않았기 때문에 더 빠른 프로세서에 대한 갈증이 크진 않았던 것 같다. 하지만 새 아이패드 프로는 A10X 퓨전 프로세서로 더 빨라졌다. 작동 속도는 2.38㎓로 높아졌고, 고성능 코어와 저전력 코어가 각각 3개가 섞인 빅리틀 구조다. 아이폰7의 것과 비슷하지만 코어 수가 더 늘어났고, 그래픽 성능도 높아졌다. 이 빠른 프로세서가 빨라진 화면과 만나 가장 돋보이는 건 애플 펜슬이다. 애플 펜슬과 디스플레이 사이의 시차는 거의 없다시피할 정도로 빨라졌다. 화면이 즉각적으로 반응하기 때문에 그래픽 작업에 유리하다.
동영상 편집도 기가 막힌다. 아이패드는 비슷한 작업을 했을 때 웬만한 맥북보다 빠르다. 이는 단순히 프로세서의 성능만으로 이야기할 수 있는 문제는 아닌 것 같은데, 대부분의 작업에서 기다리는 과정이 사라진다. 게다가 아이패드 프로의 등장 이후 아이패드로 뭔가를 만드는 게 말이 되는 일이 되면서 관련 앱도 부쩍 늘어났다. 맥에서 포토샵을 대신해 쓰던 사진 편집 도구 ‘어피니티 포토(Affinity Photo)’가 아이패드로 기능들을 고스란히 갖고 넘어온 것처럼 적지 않은 상황에서 맥을 켜지 않아도 아이패드로 대신할 수 있는 일이 늘어나고 있다.
아이패드는 한동안 꽤 고전했다. 아이패드의 문제가 아니라 시장이 PC와 스마트폰 사이의 간극을 태블릿 대신 커다란 스마트폰으로 채우는 게 흔해졌기 때문이다. 태블릿 수요는 급격히 줄어들었고, 최근에는 눈에 띄는 신제품도 흔치 않다. 아이패드에도 그 영향이 없진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이번 2분기 실적에서 아이패드는 따로 설명하지 않아도 될 만큼 좋은 성적을 냈다. 5세대 아이패드와 새 아이패드 프로 등 신제품 효과도 분명히 있었겠지만 새로운 아이패드를 기다리는 확실한 수요와 함께, 처음으로 아이패드를 구입한 이용자 숫자가 늘어났다는 점은 그 동안 지속적으로 불거져 온 ‘태블릿 무용론’에 찬물을 끼얹기에 충분하다. 태블릿은 스마트폰과 노트북처럼 모두가 써야 하는 필수 요소는 아니다. 급격한 성장이나 하락보다 이제 어느 정도 제 자리를 찾아가는 단계라고 볼 수 있다.
아이패드 프로에는 한 가지 약점이 있다. 바로 가격이다. 10.5인치에 256GB 저장공간을 가진 제품이 91만9000원이다. 이전보다 저장공간 용량이 2배로 늘어나면서 가격이 내린 효과가 있긴 하지만 망설여지는 가격이긴 하다. 물론 스마트폰과 비교하면 더 나은 성능과 생산성이라는 이점이 있긴 하지만 스마트 키보드 등을 더하면 맥북 가격에 근접하면서 고민을 낳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가격은 해석하기 나름인데, 그래픽 태블릿을 비롯해 화면에 직접 펜으로 작업할 수 있는 기기로는 또 그렇게 무리한 값은 아니다.
어쩌면 애플이 5세대 아이패드를 더 싼 값에 꺼내 놓은 가장 큰 이유가 바로 아이패드 프로가 아닌가 한다. 모두가 아이패드 프로를 써야 하는 것은 아니다. 중요한 건 각 기기로 그만큼의 가치를 뽑아낼 수 있느냐가 선택 기준이 되어야 한다는 점이다. 아이패드 안에서도 콘텐츠를 만드는 기기와 소비하는 기기 사이의 간극이 0.8인치 차이의 화면에 녹아 있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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