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리야 길어 보여라

다리가 길어 보이는 하이웨이스트 스타일 청바지.

1990년대 패션에 향수(鄕愁)가 있는 사람 중엔 큰 키와 깊은 눈매를 가진 관능적인 외모의 수퍼모델 신디 크로퍼드를 기억하는 이가 꽤 많다. 그녀가 최근 미국 청바지 브랜드 리던(Re/Done)과 협업해 내놓은 작품이 화제다. 허리까지 올라오는 '하이웨이스트' 스타일에, 크루 넥 티셔츠(crew neck·깃이 없이 목둘레에 맞게 파인 목선) 등으로 구성된 제품으로 신디 크로퍼드가 가장 인기를 누렸던 90년대 패션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했다.

그녀를 선봉 삼아 '90년대 패션'이 돌아오고 있다. 특히 하이웨이스트 진은 각종 해외 컬렉션에서도 선보이며 큰 인기를 끌고 있다. 일명 '배 바지'로 불리는데, 다리를 길어 보이게 해 그 시절 젊은이들의 큰 사랑을 받았다. 당시 인기 미국 드라마 '비버리힐즈 아이들'의 여주인공 섀넌 도허티는 허리까지 올라오는 하이웨이스트 진과 워커 부츠를 매치한 스타일을 자주 입고 나와 유행시켰고, 이 트렌드를 빨리 반영한 캘빈 클라인과 게스 청바지 등이 폭발적으로 팔려나갔다.

90년대 하이웨이스트 진을 입을 때는 두 가지 공식이 있었다. 바로 과하다 싶을 정도로 허리선이 높게 올라 있거나 허리를 강조하는 벨트를 이용하는 것이다. 하지만 올가을 트렌드인 하이웨이스트 진은 당시 스타일과 비교할 때 몇 가지가 개선됐다. 과하게 강조됐던 허리선이 약간 더 밑으로 내려갔고, 90년대 스타일보다 좀 더 넉넉한 실루엣으로 디자인됐다.

패션은 끊임없이 변화하지만, 이 변화는 늘 혁신적이고 새로운 창조만으로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다. 매 시즌 트렌드가 바뀐다고는 하지만, 40~50대의 레트로(retro·복고풍) 스타일은 패션 디자이너들에게 영감의 샘물이 되어 주는 '스타일 클래식'이다. 

많은 디자이너가 80년대와 90년대 유행한 아이템들을 자신만의 코드로 재해석해 새로운 패션으로 거듭나게 한다. '유행이 10년마다 돌아온다'는 말은 바로 이를 두고 하는 말이다. 그러니 패션은 과거의 스타일을 현대적으로 끊임없이 재해석하고 재창조하는 과정이기도 하다.